자본주의 리얼리즘 (2)

자본주의 리얼리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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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기계
2024.08.22조회수 3회

물론 새로운 것은 없다는 이러한 불안 그 자체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큰소리로 외쳤던 악명 높은 ‘역사의 종언’에 우리 자신이 처해 있음을 깨닫고 있다. 역사가 자본주의적 절정에 이르렀다는 후쿠야마의 테제는 널리 조소받아 왔다. 그러나 문화적 무의식의 층위에서는 이 테제가 수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후쿠야마가 그 테제를 내세웠던 때만 해도 역사가 ‘마지막 해변’에 다다랐다는 관념이 단순히 승리감에 가득 찬 도취가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후쿠야마는 자신의 찬란한 도시에 유령이 출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 유령이 마르크스적인 유령이 아니라 니체적인 유령일 것이라 생각했다.



탁월한 선견지명을 보이는 니체의 글들 중 일부는 ‘역사의 과잉’을 묘사하고 있다. <반시대적 고찰>에서 니체는 ‘역사의 과잉으로 인해 시대는 자신에 대한 아이러니라는 위험한 분위기로 빠지고, 거기서 더 위험한 냉소주의 분위기에 젖게 된다.’고 썼다.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최후의 인간이 처한 상태다. 이 최후의 인간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정확히 이러한 앎의 과잉 때문에 퇴폐적으로 쇠약해져 있다.



후쿠야마의 입장은 프레드릭 제임슨의 입장과 거울상을 이루고 있다. 제임슨은 미래의 실패가 포스트모던 문화 영역의 구성적 특징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영역은 그가 정확히 예견했듯 혼성 모방과 복고주의가 지배하게 될 것이었다.

 


1980년대에는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적 대안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것은 더 깊고 훨씬 더 만연한 고갈의 느낌,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불모의 느낌이다.



탄광 폐쇄는 정확히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지지되었고, 광원들에게는 운이 다한 프롤레타리아 로맨스의 마지막 배우라는 역할이 주어졌다. 80년대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위한 싸움이 벌어지면서 그것이 확립된 시기였으며,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간명한 슬로건이라 할 수 있을 “대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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