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악착스레 정신 건강을 날씨 같은 자연적 사실인 양 취급한다. 1960년대에 급진 정치 및 이론은 정신 분열증 같은 극단적인 정신 질환에 주목하면서 가령 광기가 자연적 범주가 아니라 정치적 범주라고 주장했다.
심리적 고통을 해결하는 문제를 개인들 스스로가 책임지도록 하는 대신, 다시 말해 지난 30년간 진행된 광범위한 스트레스의 개인화를 수용하는 대신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을 필요가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 특히 그토록 많은 청년이 아프다는 사실을 어떻게 용인할 수 있게 되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 건강 질환’이 유행한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내재적으로 고장 나 있으며, 그것이 잘 작동하듯이 보이도록 만드는 비용이 아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은 사회주의에 반대하면서 종종 하향식 관료주의가 계획 경제에서나 볼 수 있는 제도적 경화증과 비효율성을 야기한다며 맹비난했다. 신자유주의의 승리와 더불어 관료주의는 한물간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는 후기 자본주의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의 경험과 상충한다. 관료주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가 변했으며, 이 새롭고 탈중심화된 형태를 통해 오히려 증식했다.
상명하복식의 중앙 집권적 통제를 종식시켰다는 신자유주의의 수사가 기세를 떨치던 그 순간에도 새로운 종류의 관료주의, 가령 ‘목표와 목적’, ‘성과’, ‘임무 진술’ 등의 담론은 증식해 왔다.
스탈린주의의 본질적 차원은 사회주의 같은 사회적 프로젝트와 연계되었기에 억제되어 있었고, 이미지들이 자율적 힘을 획득하는 후기 자본주의 문화에 이르러 비로소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레니주의자들보다 더한 레니주의자인바, 이들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번성하도록 이데올로기적 분위기를 창출하는 짓기인 전위 부대로 싱크 탱크를 운용한다.
오늘날 영국의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10대가 되는 것은 어떤 질병으로 재분류되는 것에 가깝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러한 병리화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