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자는 미래를 꿈꿈으로써 미래에 대비하고, 미래를 초청하고, 미래를 창출한다. 예컨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를 낳고 나서 시작되는 사건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잉태되기 오래전부터 이미 자신의 상상 속에서 부모의 위치를 점유하고 아이를 꿈꾼다.
21세기 저성장 시대에 돌입한 한국 사회는 "미래의 빈곤"을 겪고 있다. TV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이 빈곤은 두 가지 대표적 유형의 광고에서 확인된다. 하나는 암보험 광고이며 다른 하나는 대출 광고이다. 우리 시대 한국인들에게 미래는 이제 더 나은 진보의 이미지와 결합하지 못하고, 부채로 계산되거나 신체에 찾아들 암의 고통으로 표상되고 있다. 중산층의 신화는 붕괴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폐기되었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장기적 전망이 소멸하면서 긴 미래에 대한 서사적 운동을 통해 연속적인 시간 감각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계급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전통적 빈곤층과 다른 의미를 갖는 "형성 중인 계급"인 "프레카리아트"가 겪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고통이 문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현재의 빈곤이 아니라, 평생직장이나 사회안전망과 같은 장기적 전망의 결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부르디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취약성이 도처에 있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취약성은 그것을 겪는 자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즉, 모든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듦으로써, 합리적 기대와 특히 가장 가혹한 현재에 대해서 집합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필요한,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과 희망을 금지시키는 것이다."
"프레카트리아"에게 박탈된 것은 부가 아니라 부의 가능성이다. 부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다. 이런 점에서 프레카트리아는 단순한 무산자가 아니라 "미래 없는 인간" 혹은 "희망 없는 인간"이다.
꿈-자본은 공평하게, 평등하게, 절대 그렇게 분배되지 않는다. 꿈조차 자본이 된 세상에서 빈민은 미래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부르되외 사회학에서 자본은 사회공간을 구성하는 기본적 에너지인 동시에, 행위자들이 추구하는 내기물이다. 그것은 사회관계 속에서 "추구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모든 재화로 정의되며,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으로 구별된다.
한 알의 씨앗처럼 그것은 그 자체로는 아직 실체적 자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씨앗은 시간 속에서 실천으로 발아하고 화폐로, 관계로, 교양으로 개화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런 점에서 꿈-자본은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이다. 그러나 그것의 작용으로 가시적 성과와 물질적 결과가 생산된다.
꿈-자본의 분석적 개념지도
미래를 상상을 통해 구성하는 힘인 상상력
미래에 대한 긍정적 인지능력인 낙관
꿈꾸는 것이 달성되리라는 감정능력인 희망
좌절이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외부의 교란들을 흡수해낼 수 있는 힘인 회복력
중화민국의 부흥에 초점이 맞춰진 중국몽 이념은 시진핑의 여러 담화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확장되며 활용된다. 중국몽은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지도체제가 중국 인민에게 제공하는 자신들의 정치적 핵심 메시지이자 하나의 "메타서사" 로 기능해 왔다.
서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