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산책자는 시적 영감의 원천을 파리의 산책에서 얻은 샤를 보들레르다. 번역가로서 벤야민이 처음부터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보들레르는 낭만주의 시인 빅토르 위고와 달리 대도시 거리에서 “군중의 팔꿈치에 떠밀리는 경험”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체험에서 새로운 시적 영역을 개척한 산책자였다.
보들레르가 시를 쓰기 위해 파리의 거리로 나섰다면, 초현실주의자들은 현대의 신화를 쓰기 위해 파리의 산책자가 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거리에서 얻은 도취의 힘을 심미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 차원으로 옮길 수 있다고 믿은 반면, 벤야민은 초현실주의 선배들을 향해 산책자의 사유가 만들어놓은 꿈과 도취의 공간을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지각이론과 매체이론의 관점에서, 산책자의 사유는 카메라의 시선 경로를 닮고자 한다. 벤야민이 지각혁명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자아나 의미라는 틀에 가려져 있던 세계를 드러내고 ‘세계와 인간 사이의 유익한 소외’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산책자의 관찰방식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미완으로 끝난 <파사젠베르크>에서 역사가는 산책자이자 고고학자가 된다. 역사가는 과거를 증언하는 귀중품을 발굴하기 위해 문헌의 미로를 헤매는, 이른바 서지학적 의미의 산책자가 되어야 한다. 특정한 지점에 이르러 19세기라는 지층을 파헤치는 꼼꼼한 탐사로 이어지면 역사가는 고고학자가 된다. 발굴에서 귀중품이 발견되면 고고학자는 그것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서사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증언하도록 한다. 벤야민이 인용과 몽타주 서술을 의도한 것은 그 때문이다. <파사젠베르크>에서 역사가가 파사주라는 19세기의 특정 건축에 주목하는 이유는 물질문화의 외면에 각인된 내면, 즉 파사주에 각인된 집단무의식, 소망을 발굴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는 철학적 체계라는 집에 머물지 않는다. 개념을 도입하기는 하지만 개념은 “역사라는 바람을 맞도록” 하기 위한 돛일 뿐이다. 그러한 돛은 인식론, 매체이론, 언어철학, 역사철학, 미학, 정치학 등에서 빌려온다. 중요한 것은 돛을 세우는 기술이다. 돛을 세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