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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1)
은둔지Memo

인생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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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기계
2024.09.02조회수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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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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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지

체호프는 입센의 작품을 보며 '인생은 저렇지 않아'라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 입센의 세계는 아무리 복잡한 비밀도 결국은 풀리면서 끝나는, 그런 의미에서 너무 '문학적인' 세계라는 것.


인생은 이해할 수 없어서 불쌍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 사람 자신이 문제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 수가 없는 데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풀어야 하니까 더 불쌍한 것이다.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담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내가 조금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 그랬던 시들 중 일부를 여기 모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책의 가장 심오한 페이지들에는 내 문장이 아니라 시만 적혀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에서 산발적으로 쓰인, 인생 그 자체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친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상호의존적인 약점이 있을 때 사랑은 성립된다.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과 상대가 필요한 사람은 대등하게 약하지 않다. 전자는 내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지만, 후자는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할 것이다.


후반부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부에 상처받는 독법이다. 그것은 '당신을 사랑해요'와 '당신이 필요해요'가 다르다는 진실이 주는 상처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45년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홉 달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아홉 달 만에 둘의 차이를 깨달았다. 너로 인해 그것을 알게 됐으니, 그것으로 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을 끝났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공무도하가

백수광부의 아내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물에 뛰어든 백수광부를 무당이나 주신으로 보는 연구들에는 합당한 논거가 있겠으나, 그렇게 보면 이 작품은 문헌이 될지언정 시가 되지는 않는다. 광부, 즉 미친 사람이라 했으니, 그렇게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그를 상상한다. 삶이 힘들어 자주 강가에 서 있고는 했을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으므로 미쳐서라도 견뎠을 것이다.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날, 그가 술기운을 빌려 투신하던 그 순간에도, 그는 자기를 말려달라고 속으로 외쳤을지 모른다.




욥의 마지막 말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어도,

주님께서는 내게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주님께 기도해도,

주님게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너무 잔인하십니다.

힘이 세신 주님께서, 힘이 업는 나를 핍박하십니다.

나를 들어올려서 바람에 불려가게 하시며,

태풍에 휩쓸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십니다.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계십니다.

끝내 나를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만나는

그 죽음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이 몸을 치십니까?

기껏 하나님의 자비나 빌어야 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잘것없는 이 몸을,

어찌하여 그렇게 세게 치십니까?


고난받는 사람을 보면, 함께 울었다.

궁핍한 사람을 보면, 나도 함께 마음 아파하였다.

내가 바라던 행복은 오지 않고 화가 들이닥쳤구나.

빛을 바랐더니 어둠이 밀어닥쳤구나.


근심과 고통으로 마음이 갈기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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