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은 평화나 행복이 아니다. 그저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할 때마다 우리 모두의 내면도 조금씩 죽기만을 빈다.
조상들은 한때 변덕스럽고 틀리기 쉬운 신들에게 기도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자 엄혹하고 무시무시한 심판을 내리는 하나의 신에게 기도했다. 그다음에는 사랑과 용서의 신에게 기도했고, 마지막으로 아무 이름이 없는 신에게 기도했다.
순수함은 우리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실수들의 희생자가 되어, 우리 손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때 우리를 키운 천진한 경이를 매장하고, 우리가 결코 말하지 않는 흉터들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자연은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자동적인 사형선고라고 여겼고, 지독히도 한결같이 죽음을 가져왔다.
죽음이 법칙이 아니라 예외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감정 나노기는 우리가 그렇게 깊이 떨어지게 두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의 감정 나노기를 끌 수 있는 자들만이 존재의 막다를 골목에 이를 수 있다.
어떤 질문이든 해도 돼. 다만 어떤 질문은 침묵으로 답해야겠지.
살인을 즐기는 사람이 수확자가 되어선 안 된다. 이것은 설립자들이 원했던 모든 이상에 반하는 사태다.
나쁜 수확자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나쁜 수확자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진복적'인 수확자라고 불렸다.
이제까지는 없었지만, 언제나 처음이라는 게 있는 법.
하인에서 아첨꾼으로 진화한 모양이다. 아주 먼 도약은 아니다.
가족을 살해하는 행위. 수확자가 되는 것의 대가를 영영 잊을 수 없도록 영혼의 핵심까지 찌르는 것이다.
간단하다. 그저 양심의 다이얼을 0으로 돌려 두면 그만이다.
헛소리의 자기 부상 열차가 출발했다.
종말에 맞서서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수확자로서 믿는 모든 것의 미래가 위태롭다.
모래 위에 선을 그어서 나쁠 게 뭐 있나.
익명으로 녹아들려고 1백 년을 노력했다.
차가운 물에 뛰어드는 것과 비슷해. 예상이 실제보다 훨씬 나쁘지.
이 훈련은 치열하고 육체적이며, 모든 면에서 실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나라는 무기를 매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