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전태일의 분신은 신학계에도 적잖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민중신학의 탄생이 그 대표적 실례다.
가령, 독일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며 실존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던 안병무는 전태일 사건을 목도한 후 민중사건을 증언하는 새로운 신학적 사명을 발견한다.
세계 신학계의 동향을 충실히 소개하며 "현대 신학의 안테나"라 불리던 서남동 역시 전태일 사건 이후 민중신학으로 방향을 튼다.
이들은 마가복음에서 하층민을 지칭하는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된 '오클로스'를 정치신학적 주체로 끌어내 이를 당대 한국사회의 피억압자들과 연결시키며 '민중(Minjung)' 형상을 분절해 낸다.
김홍중은 민중신학이 탐색, 즈언, 형상화한 저 민중을 '페이션시'의 관점으로 조망한다.
페이션시는 행위자의 존재와 능력을 가리키는 에이전시(agency)와 대비되는 개념으롯, 감수자(patient)의 실존, 체험, 힘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페이션시의 관점을 취한다는 것은 행위자 중심의 세계에서 제대로 의미 부여된 적 없는 수동성의 가치를 복원하고, 지배적 언어의 표상권 외부로 밀려난 감수자의 세계를 가시화하고, 감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들과 역량들을 적극적으로 서사하고 평가하려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안병무는 "민중신학의 동기는 한마디로 말하면 수난"이며, 민중신학은 "민중 편에서", 즉 "모든 것을 당하는 자의 편에서" 성서를 읽는다고 단언하고 있다. 서남동에게도 민중신학의 초점은 "고난받는 민중" 또는 "민중이 겪고 있는 고난 자체"에 놓여 있다.
이들은 민중의 행위보다 겪음에 우선적 관심을 기울인다. 민중은 역사의 행위자이기 이전에 정치경제적 파괴기계의 작용하에서 부서져가는 감수자로 인지된다.
그럼 어떻게 이런 수동적 감수자들이 집합 행위자로 변신할 수 있는가?
이들이 본 민중은 역사의 특정 시점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집합적 행위자로 솟구치는데, 이 봉기는 예수사건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민중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면서 가장 깊은 수동성에서 가장 격렬한 능동성까지 횡단하는 존재다. '민중이 메시아'라는 민중신학 특유의 명제 역시 민중의 강력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미약함에 방점이 두어진 거으로 이해된다.
에수처럼, 민중도 파괴된 감수자들이며, 감수 속에서 생성된 역설적 힘을 발휘하여 부활하는 행위자다.
안병무가 화산맥에 비유한 민중사건의 급작성, 격렬성, 반복성은 분화가 일어나기까지 축적되었어야 하는 압력, 긴 견딤과 고통의 시간을 전제한다.
안병무는 민중 개념을 학술적으로 정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밝힌다.
민중이 무엇이냐?하고 누가 물어올 때, 저는 민중을 한마디로 말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어요. 서구의 학문은 모든 것을 개념화해서 파악합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민중을 설명하면 개념이 되고, 개념이 일단 성립하면 그 개념은 실체와 유리된 것이 되어버려요.
민중이란 생명을 갖고 있는 "산 실체"이자 "운동하는 실체"이기 때문에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체험의 대상이며, 따라서 증언되어야 하는 존재지 정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중신학이 오클로스를 발견하는 것은 당시 한국사회에서 민중이 부상하던 현상과 동시성을 갖는다. 현실의 변화가 성서를 읽는 방식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처럼 리얼리티와 성서가 시공을 넘어 공명하는 양상을 서남동은 '합류'라는 탁월한 비유로 포착했다. 두 물줄기가 섞여 하나의 소용돌이가 되듯, 두 초점이 모여 새로운 의미맥락이 창조된다는 것이다.
이때 오클로스는 신과 민중이 '수난'을 통해 서로 합류하는 해방의 창조적 교점으로 나타나게 된다.
민중신학의 민중은 정치 공동체에 소속된 '라오스'나 민주주의의 주체인 '데모스'가 아니며, 그렇다고 빈민을 의미하는 '프토코이'도 아니다. 오클로스는 당대 사회의 표상과 대의 바깥에 있는 존재들, 따라서 그 주체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못한 채 시스템 바깥에서 머무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상실한, "실어증"을 앓고 있는 자들이다.
강조하는 것은 예수가 민중을 위해 있다는 사고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는 민중과 더불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