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생존주의의 재구성 - 공, 케노시스, 인류세

21세기 생존주의의 재구성 - 공, 케노시스, 인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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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기계
2025.03.04조회수 3회

<쌀>과 같은 해에 상영된 김수용 감동의 <혈맥>에도 유사한 감격의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는 해방 이후 월남민들이 모여 사는 해방촌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그 마지막 장면에 감독은 1960년대 가난한 청년들에게 미래의 상징으로 여겨졌을 한 형상을 제시한다. 현대식 공장이다. 피난 와서 비참하게 산 부모 세대와 달리 당대 청년들의 꿈은 공장 굴뚝에서 시커멓게 솟아나는 연기로 형상화된다. <혈맥>의 감격은 '매연'에 녹아 있다.


검게 치솟으며 화면 왼쪽으로 길게 흐르는 문명의 연기, 산업화의 연기, 피난민촌의 지긋지긋한 빈곤을 일거에 부숴 버리며 미래를 약속하는 감격적인 물질, 검은 매연.




아마도 우리 시대의 관객들은 매연을 보면서 불쾌와 우려의 감정을 느낄 것이다. <혈맥>의 청년세대에게 미래 '생존'을 보장하는 징표였던 매연은 이제 그들의 손자 세대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위해 물질로 인지된다.




<쌀>에 나오는 무당은 산에 굴을 뚫으려 하는 청년들을 가로막고 그들의 시도가 산신령을 노하게 할 것이라고 일갈한다. 용과 청년들은 무당의 생각이 터무니없는 미신이라며 비판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단지 미신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된 무당의 산신령론은 사실 자연을 비활성적 사물로 보는 폭력적 태도의 대척에 서 있는 애니미즘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에서 무당은 (본의 아니게) 자연에 대한 폭력적 세계관의 해악을 '시대를 거슬러' 꿰뚫고 있는 반-생존주의자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한 시대가 어리석은 악인으로 그리는 자가 그 다음 시대의 대안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류세 개념의 중대한 함의는 이처럼 행성적 수준으로 신장된 인간 행위능력의 부정적 결과로, 머지않은 장래에 전대미문의 격변이 닥쳐오리라는 어두운 전망이다. 모턴은 이렇게 쓰고 있다.

세계의 종말은 이미 벌어졌다. 우리는 세게가 끝난 시점을 이상하리만치 정확히 알고 있다. 문명의 이기가 역사기록이나 지질 시대와 쉽사리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기이할 정도로 명확하다. 1784년 4월,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으로 특허를 획득하면서 지구 표층에 탄소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 즉 인류가 행성 규모로 지구물리학적 힘을 개시한 시점이다.



생명체들은 고작 몇 킬로미터 정보밖에 되지 않는 임계 영역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그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우리는 숨을 쉴 수 없다. 더 파고 내려가도 거주 가능 지대는 없다. 임계 영역이라는 이 희귀한 막은 화성에도, 금성에도, 목성에도 없다. 오직 지구에만 있다. 그것이 바로 가이아다. 지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지구에 임계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임계 영역은 수십억 년 동안 지구상에 출몰했던 수많은 생명체들의 활동을 통해서 만들어진 인위적 산물이다.



가이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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