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스스로 말하게 하라 - 지아장커

리얼 스스로 말하게 하라 - 지아장커

avatar
은둔기계
2025.03.29조회수 2회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인민에게 호소하지 않는 예술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영화가 인민을 집중적으로 표상하기 시작한 것은 제5세대 감독인 천카이거, 텐좡좡, 장이머우부터다. 대개 베이징 영화학교 78학번인 이들은 0년대 초에 대거 등장, 90년대 중반까지 중국 영화의 세계적 선풍을 주도했다. 특히, 천카이거가 감독하고 장이머우가 촬영한 <황토지>는 이들의 영화적 이념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대표작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선명하다. 사회주의적 근대와 낙후된 봉건 세계가 직각으로 대립하고 있다. 희망은 남쪽에 있고, 농민들은 폐습에서 구제되어야 한다. 양자를 매개하는 것은 팔로군 병사다.




그런데, 이런 사상적 자명성을 교란하는 한 요소가 시종일관 스크린을 지배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황무, 황토의 풍경이다. 장이머우의 카메라는 척박한 북방 고원을 원경에서 집요하게 비춘다. 거기 펼쳐지는 것은 인간 생존을 가능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저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 보이는 누런 불모의 땅이다. 융기해 있는 자갈밭, 탁류로 흐르는 거친 황하, 침식되어 깎여나간 비탈들, 파도치듯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 구릉들, 외롭게 서 있는 나무.




단순한 배경이라기에는 너무나 압도적으로 이 풍경들은 화면에 군림한다. 영화가 밀고 가는 계몽 서사는 이 풍경의 압력에 의해 배반되고, 비틀리고, 굴절된다. 자연은 역사의 파란만장한 변화(봉건제, 사회주의, 자본주의)에도 꿋꿋이 버티는 장기 지속의 시간을 웅변한다. 계몽의 이야기를 크게 외치는 저 영화는 마치 복화술로 말하듯이 은밀하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다.

중국이란 무엇인가? 인민이다.

인민이란 무엇인가? 황토다. 대지다.


자연과 동맹을 맺고 역사를 우회하는 장구한 리듬이다.

무참하게 긴 시간이다.

우리는 여기서 <황토지>의 분열선을 발견한다. 몽매한 인습의 담지자로 인민을 보는 시각은 그들의 얼굴을 응시하는 카메라에 의해 부정된다. 내가 보기에 승리하는 것은 카메라다. 세파에 찌들고 노동에 조로한 인민의 얼굴은 누추하지만, 동시에 거센 자연을 닮은 완강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인민과 자연은 닮아 있다.


'사회-역사적' 주체를 넘어서는 '생태-지질학적' 주체로서의 인민. 타자의 얼굴을 보면서 그를 죽일 수 없다는 레비나스처럼 말해보자면, 인민의 얼굴을 보면서 그를 계몽할 수는 없다. 인민의 얼굴은 계몽자를 도리어 계몽하기 때문이다. 인민의 얼굴에는 누대에 걸쳐 축적된 고난과 고초와 비굴과 분노와 야합과 저항이 퇴적층처럼 켜켜이 집적되어 있다. 그것은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는 착잡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황토지>의 마지막 장면은 이런 점에서 자못 징후적이다. 이야기인즉, 옌안으로 떠났던 팔로군 병사는 마을로 돌아온다. 자신이 기거하던 집을 찾아가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다. 기우제가 시작된 것이다.


용머리 성물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 엎드린 주민들은 모두 웃통을 벗은 채, 머리에 풀을 엮어 만든 관을 쓰고 의례를 행한다. 인민은 개체가 아니라 집단적 신체를 이루고 있다. 종동의 흐름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트랜스에 가까운 열광 상태에 빠진 이들은 필사적으로 기도하고, 울부짖고, 탄원한다. 맑은 하늘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 말라가는 못에서 기포가 솟아오른다. 좌절이 이들을 짓누른다. 그런데 이때,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돌발적 상황이 발생한다.




침묵 속에서 무언가 기다리던 군중이 갑자기 성물을 뽑아 들고 고함을 지르며 어디론가 몰려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화는 별다른 해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저것은 의례의 한 절차인가? 기도에 미동조차 않는 하늘에 대한 분노의 폭발인가? 우발적 히스테리인가? 사제 권력을 부정하는 봉기인가? 관객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힌트는 팔로군 병사의 등장이다.


기우제 군중이 질주하는 것과 동시에 팔로군 병사가 언던을 넘어온다. 그러다면 군중은 마을로 돌아온 계몽적 주체와 사회주의 이념을 향해 열광적으로 달려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군중은 병사의 출현을 인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에게 등을 보이며, 그와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오직 한 사람만이 그의 귀환을 알아보고 병사를 향해 방향을 바꾼다. 마을을 떠난 소녀의 동생 한한이다.


소년은 군중의 흐름을 거슬러, 그들을 헤쳐 가며, 그들과 부딪치며 병사 쪽으로 간신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런 카오스 속에서 ...

회원가입만 해도
이 글을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이미 계정이 있으신가요?로그인하기
댓글 0
avatar
은둔기계
구독자 112명구독중 61명
은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