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라는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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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백
2025.12.16조회수 289회

예언자의 대한 갈망

얼마 전 아내가 영어 말하기 시험을 보고 왔다. 그날부터 아내는 매일같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지며 시험 난이도에 대한 남들의 평을 읽고, 자신의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 결과 발표가 왜 이렇게 늦냐며 답답해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내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전긍긍한다고 점수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그저 담담하게 기다리면 될 일 아닌가? 나는 짐짓 이성적인 척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니 편하게 마음 먹고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만약 이 자리에 부부 상담사가 있었다면 나를 이렇게 타박했을 것이다. "남편분, 지금 아내에게 필요한 건 차가운 사실이 아니라, 힘든 마음에 대한 공감입니다!"


그렇다. 상담사의 말이 맞다. 아내는 지금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현대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이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이 아니라, 바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을 때라고 한다. 차라리 확실하게 매를 맞는 게 낫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일이 못 된다.

굳이 뇌 사진이나 호르몬 수치를 들이밀지 않아도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 사실을 안다.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일주일의 시간을 떠올려보자. 차라리 "수술하면 낫는다"라는 확진을 받은 환자의 마음이, "도대체 무슨 병인지 아직 모른다"는 대기자의 마음보다 훨씬 평온하다. 공포 영화에서도 귀신이 화면에 등장해 주인공을 쫓아올 때보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고요한 정적의 시간이 관객의 심장을 더 옥죄는 법이다.


이처럼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없음’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확정 짓고 싶어 한다. 내일의 날씨를 알고 싶고, 게임의 승패를 미리 보고 싶으며, 자식의 미래를 점쳐보고 싶어 한다. 고대부터 사람들이 선각자나 예언자를 추앙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미래의 답안지는, 불확실성이라는 고통스러운 감옥에서 우리를 꺼내주는 유일한 해방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언자에 대한 갈망’은 자본주의의 정점인 투자 세계에서도 그대로 관찰된다. 주식 시장은 내일 오를지 내릴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우주’다. 이 곳에서 투자자들은 불안을 잠재워 줄 확실한 목소리를 찾아 헤맨다. 미디어에 나오는 수많은 경제 전문가와 차트 분석가들은 현대판 예언자들이다. 대중은 그들의 예측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하기보다, 확신에 찬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그들이 제공하는 전망치는 흔들리는 멘탈을 잡아주는 훌륭한 보호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믿음의 성전에 아주 독특한 이단아가 한 명 있다. 평생을 시장에 몸담았으면서도 "나는 시장을 예측할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 예언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대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껴안은 사람. 바로 워렌 버핏이다.

그는 마치 인간의 근원적 불안을 초월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려 애쓰는 대신, 눈에 보이는 확실한 생산물에 집중한다. 과거에 훌륭한 성과를 냈고 앞으로도 물건을 팔아 돈을 벌 기업에 투자하는 그의 전략은, 미래를 점치느라 바쁜 예언자들보다 늘 더 높은 성과를 냈다.


철저한 실용주의자인 그에게 '생산물'이 없는 자산은 가치가 없다. 그래서 그는 금이나 비트코인 같은 것에는 억만금을 줘도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들은 아무런 이자도, 배당도, 물건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정말 금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을까? 나는 이번 글에서 워렌 버핏이 간과한, 금이나 비트코인이 생산하는 ‘무형의 생산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불안을 잠재우는 ‘심리적 안정제’다. 인간에게 불안을 회피하려는 욕구가 식욕만큼이나 필수 불가결한 생존 본능임을 인정한다면, 그 불안을 해소해주는 자산 역시 분명한 가치를 지닌다. 이글에서는 먼저 불안을 회피하려는 근원적 욕망에 대해 깊이있게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금과 비트코인이라는 자산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불안 회피제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 검토하고, 동시에 그 믿음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금과 비트코인 같은 대체 자산을 맹신이나 배척이 아닌,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보고자 한다.



‘믿음의 집’을 짓는 인간

인간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큰 고통을 느낀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 고통을 어떻게 해결해 왔을까?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는 남태평양 원주민들을 관찰하며 아주 흥미로운 단서를 발견했다. 원주민들이 사는 섬에는 호수와 바다, 두 종류의 어장이 있었다. 원주민들은 호수에서 낚시할 때는 그저 편한 노동요를 부르며 낚싯대만 던졌다. 그곳은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뻔히 보이고 위험이 없는, ‘예측 가능한 세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어가 출몰하고 날씨가 급변하는 바다로 나갈 때는 달랐다. 그들은 출항 전부터 엄숙하게 온갖 주술과 기도를 올렸다. 즉, 믿음은 먼 바다에서 탄생한다. 내 힘과 기술로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영역, 그 검은 공포를 메우기 위해 인간은 ‘신’이라는 존재를, ‘운명’이라는 개념을, 그리고 ‘종교’라는 시스템을 발명해 낸 것이다. 다시말해, 종교나 미신은 인간이 나약하거나 무지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거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정신이 붕괴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작동시킨 ‘심리적 방어 기제’였다.


인간이 진정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은 파도나 상어 같은 물리적 고통 그 자체가 아니다. 이 고통이 아무런 이유도, 끝도, 의미도 없는 ‘무질서(Chaos)’라는 사실이다. 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그의 저서 <신성한 지붕>(The Sacred Canopy)에서 인간의 방어 기제가 쌓여 어떻게 무질서를 ‘관리 가능한 질서’로 바꾸는지 분석한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 차이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동물의 세계는 ‘본능’의 영역이다. 사자는 "나는 왜 사자로 태어났는가?", "어떻게 사냥해야 도덕적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유전자에 각인된 명령에 따라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본능이 고장 난 채’ 태어난 동물이다. 태어날 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계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맨몸으로 직면한다. 본능이 비어있는 그 자리에서, 인간은 무질서(아노미)라는 죽음과 같은 공포를 느낀다.


이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은 본능이 없는 자리를 대신할 ‘문화와 사회’라는 집을 짓기 시작한다. 피터 버거는 이 집짓기 과정을 세 단계로 설명한다.

첫번째는 외재화 (Externalization)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필요를 도구, 언어, 제도 같은 형태로 세상 밖으로 쏟아낸다. 예를 들어,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조개껍데기'를 화폐로 쓰자고 약속하는 단계다. 그 다음은 객관화(Objectivation) 과정이다. 내가 만든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객관적인 현실처럼 굳어진다. 이제 조개껍데기는 단순한 껍질이 아니라 '돈'이라는 객관적 실체가 되어 인간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만든 언어 규칙에 도리어 우리의 사고가 지배당하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내면화(Internalization)가 이어진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다. 인간은 사회적 약속을 다시 자신의 의식 깊숙이 받아들인다. "돈은 원래 소중한 거야", "법은 지켜야 해"라고 믿으며, 그것을 세상의 절대적인 진리로 인식하게 된다. 버거는 인간이 3단계의 과정을 통해 ‘노모스(Nomos)’, 즉 의미 있는 질서를 구축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 질서 안에서 비로소 안도감을 느낀다.

  • [무질서 : 아노미] → [외재화] → [객관화] → [내면화] → [질서 : 노모스]

하지만 인간의 불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회적 규칙이나 법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 살다 보면 문득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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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자이자 금융강사. 단순히 재무적 안정이나 부자되기를 넘어, 물질과 정신 모두 풍요로운 삶을 지향한다. 이를 '멋지게 나이들기'라는 철학으로 삼고, 이곳 <멋나들 연구소>에서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