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투자학




재테크 강의나 자기계발서는 직접 경험의 가치를 강조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MBA에서 경영학을 배워도, 직접 사업에 뛰어들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고 말이다. 100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고, 100번 보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게 낫다. 나도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간접경험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글을 읽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는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했었다. 마음 편히 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여행도 다녔다. 그런데 친구들이 대학 등록과 기숙사 배정 이야기를 할 때 뭔가 이상했다. 나는 그런 절차를 밟지 않았던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때 핸드폰을 없애놔서 학교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부랴부랴 과사무실에 전화했더니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예치금을 기한 내에 내지 않아 합격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수시 합격자는 정시에 지원할 수도 없어서, 그해 대학 입학은 불가능해졌다. 꼼꼼하지 못한 대가로 1년의 재수생활을 하게 됐다.
그렇게 뼈아픈 실수를 겪었지만, 덜렁거리는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매번 학사등록 날짜를 헷갈려하고, 세금 신고에서 영수증을 빠뜨렸다. 직접 경험한다고 반드시 성장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간접경험은 달랐다. 친구들이 나보다 1년 먼저 대학을 가는 바람에, 나는 새내기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미리 목격할 수 있었다. 술자리에서 흐트러져 사고 당하는 일, 선배와의 갈등, 교수와의 마찰 등. 이런 것들을 간접경험으로 익히면서 20살의 흑역사를 만들지 않았다.
간접경험의 효과는 명확하다.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해내는 법을 배우긴 어렵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우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위험 상황의 시나리오를 빠르고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겁쟁이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에서는 다행히도 겁쟁이가 유리하다. 투자 영역에선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서 얻는 것보다, 소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우리 안의 심리적 편향, 본능적 판단, 즉각적 반응은 대부분 손실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이런 것들을 억제하고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상위 10%에 들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내가 뭔가 알고 있다는 착각이다. 이걸 내려놓기는 어렵다. 대부분 시장이 좋고 주변의 관심이 쏠리는 상승장에 투자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수익이 난다. 그래서 착각한다. 오를 종목을 고를 수 있고, 오를 시점을 맞출 수 있다고. 하지만 결말은 한결같다. 거품이 빠지고 하락장이 오면 그동안의 수익을 모두 토해내고, 계속된 실패에 빠진다. 전에 통했던 성공 방정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타이밍도, 종목 선택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손실이라는 수업료를 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아,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패배의 언어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것이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걸 깨달았을 때부터 진짜 투자가 시작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뼈아픈 직접경험 대신, 안전한 간접경험을 통해 이 진실을 전하고 싶어서다. 물론 이 글 한 번으로 깨닫긴 어렵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새겨진다. 누군가는 이미 직접 경험으로, 혹은 다른 책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처음 듣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미 아는 사람에게는 더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고, 처음 듣는 이에게는 쌓여갈 간접경험의 첫 장이 될 것이다. 이제 투자의 단순한 진실,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간접경험을 시작해보자.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는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고, 책도 쓰지 않았다. 대신 시장통과 체육관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 "정의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당신은 정말 그것을 알고 있는가?"
그런데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레폰이 일을 저지른다. 그는 그리스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델포이 신전에 가서 신탁에게 이렇게 물었다.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까?"
아폴론 신의 여사제는 단호하게 답했다.
"없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소크라테스는 기뻐하기는커녕 당혹스러워했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신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평판이 자자한 사람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자신 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한 명만 찾으면, 신탁을 반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정치가들이었다.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뭔가 알고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눠보니 실상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왜 그것이 옳은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허둥댔다. 모르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년 연초가 되면 증권사와 경제 연구소들은 앞다투어 시장 전망을 내놓는다. "올해 코스피는 5,000을 돌파할 것이다", "하반기에 반등이 온다", "금리 인하 시점은 3분기다."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고 도표는 정교하다. 하지만 그 예측들을 차곡차곡 모아 사후에 검증해보면, 적중률은 동전 던지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장에서 살펴봤듯이, 사람들이 전문가의 예측을 따르는 건 그것이 맞아서가 아니다. 불확실성을 견딜 수 없어서, 누군가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필요한 것이다. 정치가들이 모르면서 아는 척했듯, 시장의 전문가들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안다고 착각하거나, 안다고 말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가 다음으로 찾아간 것은 시인들이었다. 비극을 쓰고 서사시를 읊는 예술가들이니,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실제로 그들의 작품은 훌륭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당신의 이 구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묻자, 시인들은 자신의 작품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재능은 있었지만, 그 연감이 어디서 오는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투자 세계에도 이런 시인들이 있다. 한두 번의 대박으로 이름을 날린 투자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구체적인 근거 없이 '감'이나 '촉'으로 설명한다. "가상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체할 것이다", "차트의 흐름을 읽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성공담에 매혹되어 따라 투자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내가 좋은 종목, 좋은 자산을 고를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하지만 여기에 불편한 통계가 있다. 금융학자 핸드릭 베셈바인더가 1926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주식 시장을 분석한 결과, 전체 상장 기업 약 26,000개 중 주식 시장 전체의 부를 창출해낸 것은 상위 약 4%의 기업뿐이었다. 나머지 96%는 장기적으로 단기 국채 수익률에도 못 미쳤다. 100개 중 4개다. 이런 대박 종목을 골라내는 것이 쉬운 일일까? 누군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지혜로운 것인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행선지는 장인들이었다. 목수, 대장장이, 도공 같은 기술자들이다.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그들은 정말로 자기 분야를 알고 있었다. 훌륭한 가구를 만들 줄 알았고, 단단한 칼을 벼릴 줄 알았다. 소크라테스도 이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장인들은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과신한 나머지, 자신이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까지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목수와 의사가 정치를 논하고, 대장장이가 철학을 단정했다. 전문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오만이었다.
이건 펀드매니저의 상황과 닮았다. 펀드매니저들은 분명 뛰어난 ...

Just Keep Going~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크...

훌륭한 인사이트 감사합니다!

얼마전 월가아재님 영상에 나온 세이렌을 여기서 또 보는군요 ㅎㅎㅎㅎ

글을 어쩜 이렇게 잘 쓰시나요.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글 정말 잘 쓰시네요~

불가지론,복리의 마법 다시 한번되새기네요 항상 인문학적비유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휴가때 일전 칼럼에서 언급해주신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가끔은.. 투자라는걸 몰랐을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하지만 투자라는걸 알게 된 후로
과거의 투자를 모르던 단기적 행복에 취해 있던 저는 장기적으로 고통의 길을 행복하게 걸어가는 멍청이였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이놈의 투자는 저에게 단기적고통을 견디면 장기적행복을 얻을 수 있을꺼라고 하는군요...
어떤 길을 가던 고통스럽네요.
어쩌면 지수추종 패시브 투자가 무지로인한 장기적 고통과 앎으로 인한 단기적 고통에 중도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일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