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글] 스크루지 2.0




이 시리즈의 첫 장에서 나는 한 가지 양해를 구했다. “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수많은 삶의 층위 중 오직 ‘재무적 관점’이라는 좁은 렌즈로만 노후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냉정하게 재무적 논리만을 밀어붙이면, 오래 사는 것이 ‘위험’이 되고 사람의 생애가 ‘소비 기간’으로 환원되는 차가운 세계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장에 걸쳐 그 렌즈 안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뤘다. 소비를 통제하고, 자산을 담을 그릇을 마련하고, 현금과 채권과 주식과 금의 성격을 이해해 봤다.
이제 이 렌즈를 잠시 내려놓기 전에, 한 가지 되돌아볼 것이 있다. 우리가 다룬 것이 정말 ‘돈 이야기’뿐이었는지 하는 질문이다. 소비를 통제하는 법을 배웠지만, 그 본질은 자본주의의 욕망 속에서 ‘나다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인덱스 펀드를 배웠지만, 그 출발점은 소크라테스의 “나는 모른다”는 고백이었다. 돌이켜보면, 재무적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았으되 결국 이 시리즈이 전한 것은 숫자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이 드는 태도,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태도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이 마지막 이야기를 위해, 영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구두쇠 노인을 한 명 불러오려 한다.
찰스 디킨스가 1843년에 발표한 중편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출간 즉시 초판이 매진되었고, 이후 1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십 편의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각색되며 크리스마스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에비니저 스크루지라는 노인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구두쇠의 대명사로 쓰이는 ‘스크루지’라는 표현이 바로 이 인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런던에서 시작된다. 스크루지는 성공한 금융업자다. 그의 사무실은 런던 시내에 있고, 돈놀이 사업은 번창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크리스마스를 “헛소리!”라 일축하고, 자선 모금가에게는 “감옥과 구빈원이 있지 않은가?”라고 비아냥거리며, 유일한 혈육인 조카의 저녁 초대마저 거절한다. 유일한 부하 직원 밥 크래칫에게는 석탄 한 덩이 더 주는 것도 아까워하면서, 크리스마스 당일 하루 쉬는 것마저 ‘하루치 월급을 도둑맞는 것’이라 투덜댄다.
그날 밤, 스크루지의 침실에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7년 전 세상을 떠난 사업 동료 제이콥 말리의 유령이 무거운 쇠사슬을 질질 끌며 나타난 것이다. 말리는 경고한다. 이 쇠사슬은 자신이 살아생전 돈에만 매달리며 타인을 외면한 대가로 사후에 짊어지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스크루지에게도 이미 같은 사슬이 채워지고 있지만,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말리는 오늘 밤 세 명의 유령이 찾아올 것이라고 전한다.
첫 번째로 나타난 것은 과거의 유령이다. 이 유령은 스크루지를 그의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외로운 기숙학교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다시피 한 소년 스크루지가 보인다. 그 아이는 크리스마스에도 학교에 홀로 남아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유일하게 그를 사랑해준 누나 팬의 기억이 소환된다. 첫 직장에서 만난 다정한 사장 페지위그의 기억도 등장한다. 이제 스크루지의 얼굴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장면은 젊은 시절의 연인 벨과의 이별이다. 벨은 스크루지에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보다 돈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 더 늦었다면, 당신은 나를 선택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돈이 당신의 전부가 되었죠.”
스크루지는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아니, 붙잡지 않았다.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은 현재의 유령이다. 이 유령은 스크루지를 런던 곳곳으로 데려간다.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장소는 밥 크래칫의 집이다. 크래칫의 가족은 가난하다. 크리스마스 식탁 위의 거위 한 마리는 대가족에게 턱없이 부족하고, 후식으로 나온 푸딩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이 가족은 웃고, 노래하고, 서로에게 축복을 건넨다. 목발을 짚은 막내 꼬마 팀은 아픈 몸으로도 “신이여, 우리 모두를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아버지 크래칫은 건배를 제안한다.
“우리에게 이 자리를 마련해준 분, 스크루지 씨의 건강을 위해.”
자신에게 쥐꼬리만 한 월급을 주는 사장의 안녕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것이다. 그 순간 스크루지는 자신의 차가운 대저택에는 없는 무언가가 이 허름한 식탁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 번째로 나타난 것은 미래의 유령이다. 이 유령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다만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이다. 유령이 보여주는 것은 ‘어떤 남자’의 죽음 이후 벌어지는 일들이다. 사업가들이 그 남자의 죽음을 두고 이야기하지만, 누구 하나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

아 정말 좋은 글입니다. 제가 밸리에서 꼭 챙겨보는 몇 안되는 분 :-) 오늘도 배우고 갑니다.

화룡점정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

마론백님의 글 덕분에 부를 쌓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왔을지 모를 나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이제 그 부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생각하고 흘려보내면서 살아보겠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는 진실 혹은 명제도,이렇게 소설 영화를 통해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더욱 강렬하게 뇌리에 남네요. 인문학의 힘 인거 같아요. 크리스마스 캐롤도 원작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투자 이외의 삶에서 놓친 부분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요즘 제가 많이 하던 고민이었는데 이렇게 멋진 글로 풀어주셨네요.
'돈이 그렇게 차고 넘치게 많은 것도 아닌데 주제넘게 무슨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이 글을 읽고나니 응당 지금부터 해야 할 고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론백님은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너무 미래 지향적(금전 지향적)으로만 살다보니 뭐가 재미있고 뭐가 가치있는 일인지 고민해도 답이 안나오고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결국엔 일단 돈이나 더 모아보자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ㅎㅎ
'언젠가 올지도 모를 불행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확실하게 불행한 시간을 더 많이 보낸 셈이다.'
마음속에 새겨야겠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뻔한 말이지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는 걸 좋아합니다. 궁극적으로 그 사람과 제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것에만 돈을 쓰고, 그런 목적으로만 돈을 모읍니다. 저도 심각하게 미래 지향적이라... 죽는 날만 생각하면서 살거든요 ㅎㅎ
마지막 날을 생각해보면 답이 명확해지더라고요. 그 날 나는 '어떤 게 더 후회'라 말할까. 바보 같이 미래를 대비하지 못했던 순간을 후회할까, 아니면 지나간 날이 소중한 줄 모르고 흘려 보냈던 걸 후회할까.
제 상상 속에서는 후자였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많이 행복을느끼자는 목표로 살아가고요. 돈은 그 걸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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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우울한 말이었네요. 한국 분들이 특히 더 미래지향적인 경우가 많다고 해서, 현재를 너무 참으면서 살게 되죠. 저도 그랬어요. 근데 미래를 진짜 많이 생각하다보니 현재 만큼 소중한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저는.
정성스러운 댓글 감합니다!

최근들어 비슷한 결의 생각을 갖게되었는데..글을 읽으니 더욱 와닿네요
명작 시리즈였습니다..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