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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문법: 실리와 의전 사이- 트럼프 한일방문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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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문법: 실리와 의전 사이- 트럼프 한일방문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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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2025.11.04조회수 1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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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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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처갓집에서 동서를 만났다. 동서는 경찰이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걸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APEC 때문에 서울 경찰들도 바쁘지 않았냐고 내가 물었다. 그러니 동서는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에 경주 안 가게 돼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육아휴직 써서."

동서의 동료들은 서울에서 경주로 이동하여 현장에 투입됐다고 했다. 동서의 말에 따르면,

국빈 방문이 있으면 그 지역 일대를 일반 차량 하나 없는 "진공 상태"로 만들어야 한단다고 한다.

그 순간, 살짝 기시감이 들었다.

요즘 별생각 없이 인터넷에서 유튜브나 포털 뉴스를 볼땐,

"트럼프, 일본에서는 무례하게 굴고 한국에서는 예의 바르게",

"일장기는 무시하고 태극기 앞에서는 제대로 경례",

"한국이 일본보다 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 이런 뉘앙스의 내용들이 많았던 생각이 났다.

댓글들은 환호했고, 일본 네티즌들이 불만을 표출했다는 기사까지 나왔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숫자들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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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찾아봤다. 트럼프는 일본에 2박 3일 머물렀다. 한국엔 1박 2일이었다. 일본에서 하루를 더 있었다는 얘기다.

더 흥미로운 건 방문의 격식이었다. 일본은 국빈 방문이 아니었다.

일본 외무성 발표를 보니 "공식실무방문빈객(公式実務訪問賓客)"이라는 표현을 썼다.

공식방문과 실무방문을 합친 형태. 국빈 바로 아래 등급이다. 반면 한국은 정식 국빈 방문이었다.

1박 2일에 국빈, 2박 3일에 공식실무방문. 보통은 국빈 방문이 길고 실무 방문이 짧을텐데.. 뜯어보니 이상한 조합이다.

일본에서 트럼프는 무엇을 했나. 다카이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5500억 달러 투자 이행을 확인했다.

희토류와 핵심광물 공급 협정을 체결했다. 소형 원자로(SMR), AI 인프라, 반도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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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가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 왜 대중의 실수는 사라질 수 없는가?

1. 인덱스 펀드​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왜 여전히 기회가 존재할까?” 지난 50년간 인덱스 펀드는 ‘합리성의 승리’로 불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합리성 덕분에 시장은 다시 비효율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덱스가 팽창하고 레버리지 ETF가 부활하는 사이, 시장은 다시 ‘실수하는 대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1976년, 존 보글이 세계 최초의 인덱스 펀드를 출시했다. 그는 “시장을 이기려 하기보다, 시장의 일부가 되라”고 주장했다. 당시 월스트리트는 그를 비웃었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의 아이디어는 시장의 중심이 되었다. 현재 미국 주식형 펀드 자산의 약 60%가 패시브 전략을 따른다. 이는 시장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1970년대에는 대부분의 자금이 액티브 펀드에 머물러 있었고, 투자자들은 개별 종목을 연구하며 ‘알파’를 추구했다. 2020년대의 투자자 중 상당수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지수를 추종하는 전략을 택한다. 이 변화는 효율적 시장 가설의 완전한 승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가설이 작동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여전히 누군가는 시장의 비효율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모두가 “시장은 효율적이니 인덱스만 사면 된다”고 믿는다면 어떨까? 누가 과대평가된 주식을 팔고, 과소평가된 주식을 살 것인가? 누가 개별 기업의 적정 가치를 따져볼 것인가? 모두가 합리적으로 행동할수록, 시장은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변한다. S&P 500 지수에 편입되는 순간 주가가 상승하고, 편출되는 순간 하락하는 현상은 이미 여러 차례 관찰되어 왔다. 이는 기업의 펀더멘털보다 지수의 매수·매도 흐름이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적 신호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시장 참여자들은 이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거래량은 늘었지만, 개별 종목에 대한 분석은 줄었다. 변동성은 낮아졌지만, 시장은 묘하게 경직된 느낌이었다. 마치 거대한 호수의 표면은 잔잔한데, 물속의 흐름은 멈춰 있는 것처럼. 그리고 2020년대, 그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 다시 움직임이 시작됐다. 2. 새로운 균형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고 몇 달 후, 시장은 새로운 활기를 얻었다. 로빈후드 계좌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GameStop 같은 사양 산업의 주식이 20달러에서 400달러를 넘기며 광기를 보여줬다. TQQQ, SOXL, SQQQ — 이런 3배 레버리지 ETF들이 거래량 상위권을 휩쓸었다. ‘패시브의 시대’ 한가운데서, 역설적으로 가장 투기적인 자산이 부활한 순간이었다. 레버리지 ETF는 원래 단기 트레이더를 위한 도구였다. 하루 보유 이상은 위험하다는 경고가 붙어 있다. ‘변동성 드래그’ 때문에 장기 보유 시 가치가 점점 줄어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 이후, 수많은 개인 투자자가 이 상품에 뛰어들었다. 2024년 기준, 레버리지 ETF 운용자산은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TQQQ 하나만 22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이들의 평균 보유 기간은 3일, 회전율은 연 100회 이상이다. 옵션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개인 투자자의 거래 비중은 2019년 15%에서 2024년 45%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그중 절반 이상이 당일 만료(0DTE) 옵션이었다. 맞으면 10배, 틀리면 0원. 거의 로또 티켓에 가깝다. 이런 모습은 1960~70년대에도 있었다. 당시에도 고위험 뮤추얼 펀드들이 레버리지를 활용하며 단기 투기에 나섰다. 투자자들이 몰려들었고, 변동성이 폭발했다. 결국 규제가 생기면서 시장은 잠시 고요해졌다.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기회’가 사라졌다고 느낄 정도였다. 지금의 레버리지 ETF는 그 시절의 부활처럼 보인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규모의 민주화. 그땐 부자와 기관만 할 수 있던 투기가,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3초 만에 할 수 있다. 둘째, 투명성의 향상. 과거 펀드들은 레버리지 구조를 숨겼지만, ETF는 3배면 3배라고 명확히 표시한다. 셋째, 일일 리밸런싱 구조. 매일 포지션을 초기화하기 때문에 시스템 리스크는 축적되지 않는다. 개인은 손실을 볼 수 있어도, 시스템이 폭발하진 않는다. 그래서 규제는 여전히 느슨하고, 시장은 계속 팽창 중이다. 3. 숫자로 보는 진실 ...
생각
2025.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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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우위 시대의 금: 장기채가 잃은 것을 금이 가져간다

얼마전에 비슷한 글을 올렸는데 레오성님의 글들과 저의 또 다른 생각을 좀 보충해서 다시 올려봅니다. 특히 레오성님의 "재정 우위의 시대 — 중앙은행이 사라진 세계 에 대해 생각해보면," https://blog.valley.town/@fed_insight/post/68e7a82c6a484db27fc0c00f 을 참고했습니다. 항상 좋은 글 올려주시는 레오성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1. 40년 채권 강세장의 종말 TLT를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들에게 최근 5년은 악몽이었다. 34~38%의 손실. 연평균으로 따지면 -8-9.6%다. 2024년 한 해만으로도 8%가 날아갔다. 하지만 이건 "요즘 채권이 안 좋네"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건 40년간 작동해온 시스템의 붕괴다. 1981년부터 2020년까지, 채권 시장은 거의 완벽한 상승 궤도를 그렸다. 금리가 15%대에서 0%대로 내려가는 동안 채권 가격은 꾸준히 올랐다. 투자자들은 간단한 공식 하나를 믿었다: "금리는 계속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40년 동안. 그 시절 TLT는 완벽한 안전자산이었다. 주식이 폭락할 때? TLT는 올랐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2020년 코로나 때도 마찬가지였다. 변동성은 낮았고, 수익은 안정적이었다. 연 7~8%의 수익에 주식 헤지 기능까지. 60/40 포트폴리오가 "마법의 공식"처럼 작동했던 이유다. 그냥 사서 들고만 있어도 됐다. 그런데 2021년 이후 모든 게 망가졌다. TLT는 더 이상 "사서 묻어두는" 자산이 아니게 됐다. 타이밍을 맞춰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그러니까 주식처럼 트레이딩해야 하는 자산이 돼버렸다. 40년 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게임의 룰을 배워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2. 2022년 이후: 장기채가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 주식은 돌아왔는데, 채권은? 2023년부터 지금까지 주식 시장은 V자 반등했다. AI 붐에 힘입어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완전히 회복한 거다. 그런데 TLT는? 약하게 반등하긴 했지만 2020년 수준에서 여전히 40% 아래에 있다. 같은 시장을 보면서 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네 가지 구조적 헤드윈드 첫째, 재정적자가 폭발하고 있다. 재정적자는 GDP 대비 6~7%다. 국가부채는 35조 달러를 돌파했다. 정부는 계속 국채를 찍어내야 하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떨어진다.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는 오른다. 장기채를 보유하는 위험 프리미엄(Term Premium)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미국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둘째, 인플레이션이 구조화됐다. 큰정부 시대가 왔다. 재정은 계속 확대되고, 탈세계화로 비용은 올라간다. 3~4%가 뉴노멀이 됐다. 과거처럼 인플레이션이 2% 아래로 안정화되면서 장기금리가 하락하는 시나리오는 이제 비현실적이다. 셋째, "침체 방지" 체제가 확립됐다. 정부의 새로운 전략은 명확하다. 시장이 조금만 흔들려도 즉시 유동성을 공급한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해서 경착륙을 막는다. 일종의 "Put Protection" 체제다. 그 결과? 경기 침체가 오지 않는다. 침체가 없으면 금리를 대폭 인하할 이유가 사라진다. TLT가 회복할 시나리오 자체가 봉쇄된 셈이다. 넷째, 금리가 내려가지 않는다. 연준은 정책금리를 일부 인하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10년물 금리는 4%대에 고착됐다. 과거에는 경기가 회복되면 금리가 자연스럽게 하락했다. 지금은 다르다. 장기채가 살아나려면 금리가 내려가야 하는데, 그게 안 일어나고 있다. 미국 국채 신뢰도의 균열 TLT가 부진하다는 건 결국 미국 장기 국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사들이 경고를 내놓고, 의회는 해마다 채무한도를 두고 드라마를 만든다. Term Premium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돌아섰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미국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기가 과거보다 리스크가 있다는 시장의 판단이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 국채가 "망한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위기 시 달러와 미국 국채로 도피하는 현상은 계속된다. 다만 "예전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거다. 주식 시장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최강이지만, 채권 시장에서는 "미국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TLT 회복 시나리오의 부재 이론적으로 TLT가 다시 살아날 조건을 생각해보면: 경기 침체가 와서 금리가 대폭 인하된다? 정부가 침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Put Protection 체제가 선제적으로 막는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장기 인플레 기대가 하락한다? 큰정부 시대에 재정 확대는 고착됐다. 3~4%가 뉴노멀이다. 재정이 건전화되고 Term Premium이 하락한다? 역사적으로 이건 위기 이후에나 일어난다. 기축통화국은 달러를 찍어내면서 버틴다. 글로벌 위기가 와서 안전자산 수요가 폭증한다? 가능하긴 한데, 일시적이다. 위기가 지나면 다시 원위치다. 결론은 하나다. TLT는 구조적으로 죽은 자산이다. 전략적 자산 배분(SAA)에서 장기채의 시대는 끝났다. 남은 건 트레이딩 기회뿐이다. 3. 재정 우위의 시대: Put Protection 체제의 확립 (이부분은 특히 레오성님의 "재정 우위의 시대 — ...

장기채 부진과 금의 부상: 안전자산 재편 가설

최근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고민하면서, 특히 금 비중을 늘릴지 말지 고민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장기채와 금의 역할 변화에 대해 분석해봤고 이를 정리해보려 한다.​ ​ ​ ​​ 장기채는 왜 부진할까?​ TLT는 지난 5년간 연평균 -8~9.6%의 손실을 기록했다. 1981년부터 2020년까지 40년간 이어진 채권 강세장을 고려하면 역사적 반전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팬데믹 때도 주식 폭락 시 급등하며, 포트폴리오 보험 역할을 했던 장기채가 2021년 이후에는 그렇지 못했다.​ 구조가 변했다.​ 재정적자는 GDP 대비 6~7%로 전시 수준이고, 국가부채는 35조 달러를 돌파했다. 문제는 이게 위기 대응이 아니라 만성화됐다는 점이다. 고령화로 지출은 늘고 법인세 인하로 세수는 줄었으며, 이자 부담만 연 1조 달러다. 시장도 이를 감지해서 장기채에 요구하는 금리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시장이 미국 재정을 과거만큼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다. AI 붐으로 빅테크가 폭발적 성장을 하는 동안 채권은 그런 모멘텀이 없었다. ​ ​ ​ 금이 뜨는 이유​ 2025년 10월 현재 금은 온스당 4,000달러를 ...
생각
2025.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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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의 역설: 왜 모두가 손해인가- 불완전한 통합의 대가

외환 시장에서 통화를 표기할 때는 일정한 우선순위가 있다. EUR/USD, GBP/USD처럼 말이다. 이 순서는 EUR > GBP > AUD > NZD > USD > CAD > CHF > JPY로 정해져 있다. 단순한 관례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 있다. 호주 달러(AUD)와 뉴질랜드 달러(NZD)가 미국 달러보다 앞서는 이유는 이들이 과거 영국 파운드 기반 통화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 호주와 뉴질랜드는 "파운드"를 사용했고, 이 역사적 연결성이 현대 외환 시장의 표기 우선순위에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가장 흥미로운 건 유로(EUR)가 모든 통화 중 최우선 순위라는 점이다. 수백 년간 국제 금융의 중심이었던 영국 파운드조차 제치고 말이다. 어떻게 1999년에 탄생한 통화가 단숨에 정상에 올랐을까? 1. 1999년, 유로가 파운드를 제친 순간 역사적으로 영국 파운드(GBP)는 항상 기준통화로 표기되었다. GBP/USD, GBP/DEM(독일 마르크) 등, 파운드가 다른 주요 통화보다 단위 가치가 높았고 수백 년간 국제 금융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8년, 유럽중앙은행(ECB)이 폭탄선언을 했다. "유로는 모든 통화에 대해 항상 기준통화(CCY1)가 된다. 영국 파운드에 대해서도." 런던의 은행들은 반발했다. 수백 년 관행을 깨는 것이었으니까. 1999년 1월 4일 유로 거래가 시작될 때, EBS와 Reuters 시스템은 EUR/GBP와 GBP/EUR을 둘 다 지원했다. 시장이 선택하게 한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시장은 빠르게 EUR/GBP를 표준으로 받아들였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유로 뒤에는 독일 마르크의 막강한 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서독 마르크: 유로의 진짜 정체 1948년 통화개혁으로 탄생한 서독 마르크(Deutsche Mark, DEM)는 전후 유럽 경제의 기준이 되었다. 분데스방크(Bundesbank)는 세계에서 가장 독립적이고 긴축적인 중앙은행이었다. 인플레이션이 1%만 높아져도 금리를 올릴 정도로 안정성에 집착했다. 1970-80년대, 유럽 각국은 자국 통화를 사실상 마르크에 페그시켜 운영했다. 덴마크 크로네, 오스트리아 실링, 네덜란드 길더, 프랑스 프랑까지. 마르크가 기준이고 다른 통화는 주변부라는 구조가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와 독일이 역사적 라이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프랑이 독일 마르크에 페그되어 있었다는 건, 경제적으로 프랑스가 독일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프랑스가 유로 통합을 주도한 이유도 여기 있다. 정치적으로는 "통일 독일이 너무 강해지니, 유럽 시스템 안에 묶어두자"는 것이었고, 경제적으로는 "어차피 마르크 따라가는 거, 차라리 같이 통화 만들어서 발언권 나누자"는 계산이었다. 독일의 계산도 명확했다. 유로존에서 마르크 단독일 때보다 약한 환율을 유지할 수 있어 수출에 유리했고, 유럽 시장 통합으로 독일 제조업이 최대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분데스방크 철학을 유럽 전체에 강제할 수 있었다. 결국 유로 도입 시점에 많은 경제학자들이 말했다. "유로는 사실상 마르크의 확장판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독일 분데스방크의 독립성과 물가 안정 우선 원칙을 바탕으로 설계되었으며,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유로 도입 당시 독일 마르크화와의 환율은 1유로 = 1.95583마르크로 고정되었다. 독일 혼자였다면? 그런데 독일에게는 약점이 있었다. 패전국 출신이고, 미국 점령지 출신이며, 마셜플랜 수혜국이었다. "너희가 감히 USD보다 우선?"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하지만 "유럽"이라는 프레임을 쓰자 상황이 달라졌다. 로마 제국 이후의 유럽 문명, 대항해시대부터의 금융 전통, 영국 파운드의 역사적 위상, 프랑스 프랑의 정치적 상징성. 이 모든 것을 독일 마르크의 경제력과 결합해 포장한 것이다. 특히 프랑스가 "우리도 유로 한다"고 하니까, 이게 단지 "독일 돈"이 아니라 "유럽의 통화"로 정당성을 얻었다. 결국 분데스방크가 ECB 탈을 쓰고, 독일이 유럽 탈을 쓴 게 성공 비결이었다. 3. 지리가 만든 독일 경제권: Mitteleuropa 2.0 1999년의 유럽은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 엔진(Franco-German engine)'으로 균형을 이루었다. 프랑스가 정치적 리더십을, 독일이 경제적 신뢰를 제공하는 협치 모델이었다. 하지만 2025년 현재는? 구도가 완전히 기울었다. 경제력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었다. 1999년 독일 GDP는 약 2.2조 달러, 프랑스는 약 1.6조 달러였다. 2025년에는 독일이 약 4.5조 달러, 프랑스는 약 3.1조 달러다. 통화정책은 완전히 독일화되었다. ECB의 설계 자체가 분데스방크 모델이었고, 2010년대 유로존 위기 때도 ECB가 양적완화를 하려면 독일의 동의가 필요했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ECB의 조치를 "위헌 소지"라며 제동을 걸 정도였다. 정치적으로도 프랑스는 국내 정치 불안으로 리더십이 약화된 반면, 독일은 메르켈 집권기(2005-2021) 동안 유럽의 실질적 리더로 부상했다. 2010년대 중반 유럽 언론들의 공통된 평가는 이랬다. "EU의 중심은 브뤼셀이 아니라 베를린이다." 천혜의 지리적 조건 독일 중심 경제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데는 지리적 이유가 크다. 라인강(Rhine River)은 스위스 알프스에서 발원해 독일을 관통하고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흐른다. 독일 루르(Ruhr) 공업지대, 쾰른,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등 핵심 산업도시가 이 강 유역에 집중되어 있다. 로테르담 항은 유럽 최대 무역항으로 독일의 물류 통로다. 도나우강(Danube River)은 독일 남부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로 이어진다. 빈, 브라티슬라바, 부다페스트가 모두 도나우강변에 있다. 중부 유럽을 잇는 수로이자 물류 루트다. 1992년 완공된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는 북해에서 흑해까지 수로로 연결한다. 컨테이너선이 로테르담에서 부다페스트까지 직통으로 갈 수 있다. 이 운하가 완공되면서 동유럽이 완전히 독일 물류망에 편입되었다. 북유럽 평야(North European Plain)는 프랑스 북부부터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를 거쳐 러시아로 이어지는 거대한 평야다. 알프스 없는 평지 고속도로다. 군사적으로는 침공 통로였지만, 경제적으로는 물류 천국이다. 독일 경제권의 구조 현재 독일 경제권은 이렇게 구성된다. 핵심(Core Zone)은 독일 본국으로 기술, 금융, 정책, 수출 엔진의 역할을 한다. 서부 확장권(Western Satellites)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로 "라인강 경제권"을 형성하며 독일 제조업 수출항 역할을 한다. 로테르담은 유럽 최대 항구로 독일 수출입의 60%를 담당한다. 남부 ...

한국 퇴직연금을 401(k)처럼 쓰는 법: 파편을 시스템으로 만드는 통합 설계

몇 개월 전 나는 "복리에는 기억이 필요하다"라는 글을 썼었다. 한국에는 복리를 체험한 집단 기억이 없고, 그래서 퇴직연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때 이미 후속 내용도 머릿속에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에 대한 답. 내가 실제로 어떻게 한국 제도를 조립해서 쓰고 있는지. 하지만 쓰다 보니 자꾸 "나는 이렇게 한다"는 식의 글이 되었다. 잘난 것도 없고, 혹시 내가 틀릴 수도 있고, 그냥 나 혼자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미뤄뒀다. 그런데 이후에도 몇 번을 다시 쓸까 말까 고민했다. 그리고 지금 쓰기로 했다. 내 생각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누군가는 먼저 해보고 그 경험을 나눠야 다음 사람이 시작할 수 있으니까. 나도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으면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거고.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쓴다. 1. 미국 401(k)가 작동하는 방식 ​ 미국의 401(k)는 단순하다. 개인이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퇴직연금 계좌에 넣는다. 그러면 회사가 그 금액의 일부를 매칭해준다. 예를 들어 내가 연봉의 6%를 넣으면, 회사가 3~6%를 추가로 넣어준다. 그럼 나는 '내가 6% 넣었는데 회사가 더 얹어줬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돈이라는 감각이 더 강해진다. 그리고 401(k) 계좌 안에서는 개별 주식 같은 고위험 투자는 할 수 없다. 주로 뮤추얼펀드나 인덱스펀드, TDF 같은 것들만 선택할 수 있다. S&P500이나 VTI 같은 안정적인 지수 추종 상품에 돈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당장의 수익률보다는 장기 복리를 체험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하나의 계좌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401(k)라는 단일한 프레임 안에 개인 기여, 회사 매칭, 세제 혜택, 투자 선택이 모두 통합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 하나의 계좌를 '내 노후 자산'으로 인식한다. 2. 한국은 왜 다를까: 파편화된 구조 ​ 한국의 퇴직연금 제도는 파편적이다. 퇴직연금에는 DB형과 DC형이 있고, 개인이 별도로 만들 수 있는 IRP 계좌가 있고, 연금저축 계좌가 있고, ISA 계좌도 있다. 각각의 계좌는 세제 혜택도 다르고, 납입 한도도 다르고, 관리하는 부처도 다르다. 퇴직연금은 고용노동부, IRP는 고용노동부와 금융위원회, 연금저축과 ISA는 금융위원회. 세제는 또 기획재정부가 관여한다. 미국이 단일한 ERISA 법체계 아래서 retirement account를 통합 관리한다면, 한국은 부처별로, 정책별로 만들어진 제도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난립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게 뭐가 다른지도 모르고, 왜 여러 개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결국 이 모든 것을 '귀찮은 절세 상품' 정도로만 인식한다. '내 노후 자산'이라는 통합된 감각이 생길 수가 없다....
생각
2025.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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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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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우위 시대의 금: 장기채가 잃은 것을 금이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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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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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의 역설: 왜 모두가 손해인가- 불완전한 통합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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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중년
2025.11.04

냉철하고 좋은 분석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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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5.11.04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