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 통제력 : 이 전쟁에서 모두가 원하는 것

[시리즈 연재] 통제력 : 이 전쟁에서 모두가 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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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2026.04.01조회수 6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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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오르고프, 구소련 ROT-54 심우주 전파망원경 통제실. 1986년 가동,1990년 중단. 현재 방치 상태.

Photo: Yuri Krupenin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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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딜이었다. 파크푸르 같은 실용주의적 인물과 뒷채널을 열고,

양쪽이 각자 이겼다고 하는 구조로 봉합하는 것.

내가 "설계된 게임 : 트럼프, 이란, 그리고 IRGC 붕괴 시나리오"편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제시했던 경로다.

다른 하나는 레짐 체인지였다.

딜은 객관적으로 더 안전한 선택이었다.

유가를 흔들지 않고, 동맹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주식시장을 방어할 수 있는 경로였다.

대부분의 분석가가 그렇게 봤다.

2월 26일, Operation Epic Fury 이틀 전, 폴리마켓에서 공습에 베팅하지 않은 비율이 77%였다.

딜이 컨센서스였다.

그 컨센서스가 레짐 체인지에 최대 서프라이즈 가치를 부여했다. 모두가 예측하는 수는 힘이 빠진다.

예측하지 못한 수는 상대방의 계산 전체를 무너뜨린다.

Operation Epic Fury 자체가 분석 컨센서스의 반대를 친 행동이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 효과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게 있다.

서프라이즈는 이유가 아니라 결과다. 왜 하필 그 수가 서프라이즈 수이면서 동시에 트럼프가 선택한 수였는가?

트럼프 입장에서,

딜은 상대방이 수락해야 완성된다.

파크푸르가 응해야 하고, IRGC 강경파가 묵인해야 하고, 하메네이가 승인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마지막 키는 상대방 손에 있다. 통제권이 내게 온전히 없다.

레짐 체인지는 (적어도 군사 타격 단계까지는) 일방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버튼을 누르는 건 나다.

결과를 전부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최적의 수를 고른 게 아니다. 자기 통제력이 최대인 수를 골랐다.

그 수가 마침 서프라이즈 가치도 최대인 수였다.

두 조건이 같은 선택에서 만났다.




1. 플레이어들은 최적의 수가 아니라 통제 가능한 수를 고른다

네타냐후가 3월 18일 사우스 파르스를 타격하고 "단독 행동"이라고 주장한 것을 보자.

Axios는 "미국의 조율과 승인 하에"라고 보도했고, NBC도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트럼프는 "몰랐다"고 했다.

사실관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근데 네타냐후가 왜 "단독"이라고 말해야 했는지는 분명하다.

"미국의 승인 하에 행동했다"고 인정하면, 통제권이 워싱턴에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네타냐후는 실행자이지 결정자가 아니다.

10월 총선을 앞둔 네타냐후에게 "미국의 허락을 받고 쳤다"는 서사는 국내 정치적으로 가치가 없다.

"내가 결정했다"여야 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통제권의 귀속을 바꾸는 행위다.

트럼프도 "몰랐다"고 말해야 했다.

"알고 승인했다"면, 그 타격으로 인한 유가 폭등과 카타르 LNG 시설 피해의 책임이 자기한테 온다.

"몰랐다"면 이스라엘의 독주이고, 트럼프는 자제를 요청한 합리적 지도자가 된다.

통제 가능한 서사를 선택한 것이다.

둘 다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서사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사실이 그걸 뒷받침하는지는 부차적이었다.

이란의 호르무즈 통제도 같은 구조다.

IRGC는 드론 몇 발로 해협을 사실상 닫았고,

그 위에 선박의 국적·화물·승무원을 심사해서 통과 코드를 발급하는 선택적 통과 체제를 만들었다.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에는 열고 , 미국과 동맹국에는 닫는 구조다.

완전 봉쇄는 "닫았다"는 한 마디로 끝나고 다음 수는 미국의 것이 된다.

선택적 통과는 누구를 통과시킬지, 얼마를 받을지, 언제 죌지의 결정이 매 순간 이란 손에 있다.

모즈타바가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같은 구조로 읽을 수 있다.

전쟁 개시 한 달이 넘도록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고 , 성명은 전부 서면으로, 국영 TV 앵커가 대독하는 형식이다. 나타나면 두 가지 통제를 잃는다.

하나, 건강 상태가 공개돼서 약점이 확정된다. 둘, 공개 발언이 기록돼서 향후 협상의 자유도가 줄어든다.

서면 성명은 대독자의 해석 여지가 있고, 시점도 조절 가능하다. 부재 자체가 통제 가능한 상태의 유지다.

모든 플레이어가 같은 걸 하고 있다.

최적의 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자기 통제력이 최대한 보존되는 수를 고르고 있다.

상황이 더 힘들어지더라도 통제 가능한 경로를 선호한다.

결과가 더 좋을 수 있는 경로라도 통제권이 상대방에게 넘어가면 피한다.

이건 비합리성이 아니다. 불확실성 아래에서 인간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2. 설계된 모호성과 실제 균열은 구별 가능한가


여기서 한 가지 반례를 검토해 본다.

토머스 셸링은 "갈등의 전략"에서 통제를 포기하는 것 자체가 더 큰 레버리지가 된다고 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흐루쇼프가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그 사례다.

실제로 핵전쟁을 원한 게 아니었다. 통제를 잃은 척함으로써 케네디의 계산을 무너뜨린 것이다.

셸링은 이걸 "비합리성의 합리성"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이스라엘에 포괄적 자율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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