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예측대회
투자분석
아카데미
커뮤니티
Valley AI 시작하기시작하기
Valley Space인기
[시리즈 연재] 서사는 열렸다, 해협은 아직이다 : 이슬라마바드 전야
생각을 생각하기[2026 시리즈 연재]

[시리즈 연재] 서사는 열렸다, 해협은 아직이다 : 이슬라마바드 전야

avatar
전상돈
2026.04.09조회수 741회
avatar
전상돈
구독자 1,214명구독중 90명
차곡차곡
Qeshm Island, Iran ESA23301816.PNG

케슘 섬과 호르무즈 해협. 오른쪽 밑의 섬이 라락 섬이다.

출처: ESA, Copernicus Sentinel-2, 2021 (CC BY-SA 3.0 IGO)

공식 연재 시리즈 배너.png




1. 휴전


나는 지난 글 플레이어들의 지도 : 세 곡선이 수렴하는 지점 의 6장에서 합의 가능한 구조를 이렇게 썼다.

"IRGC는 '우리가 선택해서 호르무즈를 단계적으로 연다'고 하고, 트럼프는 '이란이 요청해서 내가 조건부로 받아줬다'고 한다. 같은 사건을 두 개의 다른 서사로 포장하는 것이다."

4월 8일 실제로 그렇게 됐다. 트럼프는 "총체적이고 완전한 승리"를 선언했고,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는 "우리 손이 방아쇠 위에 있다"면서 동시에 휴전을 수락했다. 파키스탄이 중재자였고, 호르무즈 재개통이 핵심 조건이었다.

이번엔 핵심 구조가 맞았다.

하지만 첫날부터 균열이 왔다.



2. 첫날의 파열 :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친 이유


합의 발표 몇 시간 만에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쳤다. 10분 안에 100개 타깃. 사망자 최소 182명.

이란은 호르무즈를 다시 닫았다. 휴전 첫날이었다.


이스라엘은 왜 쳤는가?

네타냐후는 정치적으로 세속 유대인과 종교 유대인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세속 유대인은 이란 전선이 멈추길 원한다. 예비군이 소진됐고, 경제 타격이 쌓이고 있고, 전쟁 피로가 임계점에 가깝다. 이들에게 이란 휴전은 환영할 만한 결과다.

종교 유대인은 반대다. 이란 수뇌부를 제거한 지금이 오히려 더 밀어야 할 때라고 본다. 멈추는 것 자체가 배신이다.

레바논은 이 둘이 동시에 허용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세속 유대인 입장에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직접 쐈다.

이란과 다르다.

레바논 전선을 유지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 종교 세력 입장에서는 일단 어디든 계속 싸우는 것이 맞다.

이란처럼 크진 않지만 레바논은 그 욕구를 채워주는 대안이다.


네타냐후에게 레바논은 연립을 유지하면서 트럼프와의 관계도 지키는 유일한 해법이었다.

이란을 더 치면 트럼프 협상이 막힌다. 멈추면 종교 세력과의 연정이 흔들린다.

레바논은 그 사이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3. 이스라엘의 위치 변화


지금의 상황은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스라엘은 이 게임에서 한 발 물러섰다. Epic Fury 이전에는 이스라엘이 공격의 주체였다.

2월 28일 공습도 이스라엘이 설계하고 주도했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이 휴전을 선언했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주어가 바뀌었다.

이스라엘은 이제 미국이 만든 협상 구조 안에서 레바논이라는 별도 전선을 유지하는 포지션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다시 직접 공습하는 시나리오는 구조적으로 닫혔다.

트럼프의 2주 휴전을 이스라엘이 혼자 깨면 협상 파탄의 책임이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는 서사가 만들어진다.

트럼프가 그 서사를 채택하는 순간,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미국의 이탈이 현실이 된다.

군사적으로도 이미 한계다. 참모총장이 각료회의에서 "붕괴"라는 단어를 썼고, 예비군은 소진됐다.

이란 본토를 다시 직접 치려면 대규모 자산이 필요한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그리고 이란 수뇌부 제거라는 역사적 성과는 이미 초과달성했다.

추가 이란 직접 타격의 한계 수익이 급격히 떨어졌다.


네타냐후가 트럼프의 협상 타임라인을 읽고 있었다는 증거가 이미 있었다.

3월 25일, 협상 가능성이 부상하자 IDF에 48시간 최대 타격을 명령했다. 독자 행동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시간표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패턴이다. 미국이 멈출 때를 감지하고 그 전에 최대한 치는 것.


이스라엘은 전쟁의 설계자에서 협상의 방해 변수로 역할이 격하됐다.

레바논을 치면서 이란이 협상 조건을 높이게 만들고, 그것이 밴스를 압박하고, 트럼프가 이스라엘에 자제를 요청하는 구도가 된다. 네타냐후는 그 압박이 오기 전까지 레바논을 친다. 압박이 오면 자제하는 척하며 10월 총선까지 버틴다.

문제는 이 줄타기의 선이 얼마나 좁은가이다. 이란이 "레바논 공격이 계속되면 호르무즈를 닫는다"고 했고 실제로 닫았다. 네타냐후의 내부 정치 해법이 이슬라마바드 협상을 흔드는 외부 변수가 되는 구조다.

그 선을 넘는 순간이 언제 오느냐가 지금 이 게임의 가장 불안정한 변수다.

네타냐후는 그 좁은 지점을 끊임없이 계산해야하는 위치가 됐다.







4. 기뢰 : 이슬라마바드 협상의 물리적 담보물

해도.PNG

호르무즈 해협 항해 차트. 원 안이 IRGC가 표시한 위험 구역(محدوده خطر), 북쪽 화살표가 우회 항로.

출처: ISNA, 2026. 4. 9

4월 9일, 이란 반관영 통신사 ISNA와 타스님이 해도를 공개했다.

IRGC가 호르무즈 기존 항로인 Traffic Separation Scheme 위에 "위험 구역"을 표시했다.

선박들을 라락 섬 근처 이란 본토 쪽 북쪽 항로로 우회시키는 내용이다.

날짜는 2월 28일부터 4월 9일 오늘까지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슬라마바드 협상 개시 이틀 전, 이란이 처음으로 기뢰 부설을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이것은 추가 부설 발표가 아니다. 이미 깔려있다는 것을 협상 직전에 공개한 것이다.

메시지는 하나다.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가 포기할 것이 있다. 그 대가를 알고 와라."

구조적 문제가 있다.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기뢰 제거에 최소 2~4주가 걸린다. 보험시장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

2주 휴전 기간 안에 호르무즈가 실질적으로 열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트럼프가 "열렸다"고 선언하는 것과 선박들이 실제로 지나가는 것은 다른 시간표다.

기뢰는 협상 이행의 속도를 이란이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물리적 레버다.




5. 호르무즈가 바브 알 만데브를 지킨다


호르무즈가 막히면서 역설이 하나 완성됐다.

바브 알 만데브의 전략적 가치가 올라갔다.

얀부 수출이 4배 뛰었고, 전 세계가 이 경로의 의존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바브 알 만데브가 글로벌 에너지의 마지막 밸브가 된 거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이걸 봉쇄하는 비용이 너무 커졌다.


플레이어별로 하나씩 보면 선명해진다.


후티 입장에서, 지금 바브 알 만데브를 전면 봉쇄하면 사우디와 미국은 확실히 적이 된다.

중국은 후티와 이미 암묵적 딜이 있다. 후티는 미사일·드론 부품을 중국 기업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해왔고, 그 대가로 중국 선박은 건드리지 않았다. 봉쇄해도 중국 배는 지나간다. 중국은 압박할 이유가 없다.

인도는 직접 채널 자체가 없다.

실질적으로 후티를 압박할 수 있는 외부 행위자는 사우디와 미국뿐인데, 이 둘은 이미 적이다. 새로 잃을 관계가 없다.

카드의 가치는 쓰는 순간 사라진다. 지금 그 가치가 역사상 최고점이라는 걸 후티도 안다.

억제가 외부 압박에서 오는 게 아니라 후티 내부 생존 계산에서 온다는 뜻이다.


이란 입장에서, 호르무즈로 이미 글로벌 압박을 만들어냈다.

이란이 추가로 바브 알 만데브까지 건드리면 중국과의 관계에서 명분을 잃는다


사우디는 더 명확하다. 얀부가 살아있는 한 이 전쟁에서 수혜자다.

바브 알 만데브가 막히는 순간 사우디도 피해자가 된다.

후티를 억제할 인센티브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후티가 사우디 항구를 치지 않겠다고 명시한 것도 이 맥락이다.

사우디를 자극하는 순간 예멘 내전과 홍해 두 개의 ...

회원가입만 해도
이 글을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Basic 7일 무료 체험 시작하기
이미 계정이 있으신가요?로그인하기
댓글 35개
[2026 시리즈 연재] 카테고리의 다른글

[시리즈 연재] 에너지 전환의 역설: 트라우마는 방향을 보장하지 않는다

1974년 4월, 포틀랜드의 아버지와 아들. 손에는 총, 옆에는 팻말. "가스 도둑 조심해. 우린 준비됐어." 석유 한 방울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 사막에서 내린 결정이, 이 가족의 차고까지 전쟁이 번져왔다. 50년이 지났지만, 전쟁은 여전히 다른 길로 전해진다. 출처: David Falconer / U.S. National Archives (Public Domain) 종량제봉투가 없다. 전국 마트와 편의점에서 종량제봉투가 사라지고 있다. 나프타 수급이 막혔다. 나프타가 없으면 폴리에틸렌이 없고, 폴리에틸렌이 없으면 봉투가 없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오늘 내 쓰레기봉투 문제가 됐다. 추상적 지정학이 생활 트라우마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 순간이 쌓일수록 사람들의 행동이 바뀐다. 행동이 바뀌면 정치적 합의가 바뀐다. 정치적 합의가 바뀌면 인프라가 바뀐다. 인프라가 바뀌면 돌아갈 수 없다. 직관적으로는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근데 정말 그럴까. 트라우마는 정말 에너지 전환을 가속하는가. 아니면 가장 빠른 해결책으로 달려가는가. 그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1. 우리는 어디에 있나 ​ 2024년 기준, 전 세계 전력 생산의 구조는 여전히 화석연료가 지배하고 있다. 석탄 35%, 천연가스 22%, 석유 2%로 화석연료 합계가 약 59%다. 재생에너지는 수력 14%, 풍력 8%, 태양광 7%, 바이오에너지 3%로 합계 32%, 원자력 9%를 더한 클린에너지 전체가 41%에 달한다. ​수치만 보면 전환이 한창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인다. 2024년은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였다. 태양광과 풍력의 합산 발전량이 처음으로 수력을 추월했고, 클린에너지 전체가 전력 믹스의 40%를 넘은 건 1940년대 이후 처음이었다. ​ 그러나 비중이 아닌 절대량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 세계 전력 수요는 매년 4% 안팎으로 증가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히트펌프가 수요를 끌어올리고,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경제 성장이 이를 더욱 가파르게 만들고 있다. 파이가 커지는 속도가 클린에너지 성장 속도를 따라잡고 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비중은 오르고 있지만 화석연료의 절대 발전량은 줄지 않고 있다. 이것이 에너지 전환의 본질적인 역설이다. 비중의 전쟁에서는 이기고 있지만, 절대량의 전쟁에서는 아직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 단순히 화석연료 비중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절대 배출량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2. 트라우마가 전환을 가속한다 ​ 에너지 전환, 공급망 지역화, 에너지 안보 내재화. 이번 위기 이전에도 다 가고 있던 방향이다. 이번이 그 방향을 꺾은 게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논리는 이렇다. 공급 충격으로 생긴 트라우마는 인프라 투자로 이어진다. 인프라는 사라지지 않는다. 봉투가 없고, 나프타가 없고, LNG가 없는 경험이 쌓이면, 정치인들의 선택이 바뀌고, 기업들의 투자 기준이 바뀌고, 소비자들의 행동이 바뀐다. 그리고 데이터는 이 논리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2022년 러시아 침공 직후, EU는 REPowerEU를 발표하고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기존 40%에서 45%로 상향했다. 같은 해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키며 클린에너지에 역대 최대 규모인 약 3,69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안보 위기가 양대 경제권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동시에 끌어올린 것이다.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 출처: Purina employee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시장은 정책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2023년 전 세계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전년 대비 약 87% 급증했고, 2024년에도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풍력도 함께 올랐다. 2024년 태양광·풍력 합산 발전량이 처음으로 수력을 추월한 건 앞에서 말한 대로다. 게다가 기술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태양광 발전 단가는 2010년 이후 약 90% 하락했다. 학습 곡선이라고 불리는 자기강화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보급량이 늘면 생산 단가가 떨어지고, 단가가 떨어지면 보급이 더 늘고, 그러면 단가가 또 떨어진다. 역사상 에너지 전환은 항상 더 싸고 더 강한 것이 이겼다. ​ 거기에 수요 측에서도 낙관론의 근거가 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같은 개도국이 석탄·석유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재생에너지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유선전화 없이 바로 스마트폰으로 넘어간 것처럼. ​ 지금 트라우마가 이미 기울어진 판을 더 빠르게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 자본, 기술, 설치량. 네 방향에서 동시에 가속이 확인된다. 데이터만 보면 테제가 맞는 것 같다. 근데 세 가지 반론이 있다. 3. 트라우마는 가장 빠른 해결책으로 달려간다 ​ 1973년 10월, OPEC이 원유 수출을 금지했다. 배럴당 3달러였던 유가가 석 달 만에 12달러가 됐다. 선진국 전체가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세 나라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국은 공급을 잡으려 했다. 1975년 전략비축유(SPR) 시스템을 만들었다. 에너지를 비축하면 다음번 충격을 버틸 수 있다는 논리였다. 에너지원을 바꾸는 게 아니라 기존 에너지원을 더 안전하게 확보하는 방향이었다. 프랑스는 에너지원 자체를 바꿨다. 1974년 메스메르 플랜을 발표하고 원전 대규모 건설에 착수했다. 1973년 2% 미만이었던 원자력 비중이 1984년 55%가 됐다. 11년 만에 구조가 바뀐 것이다. 단 그 방향이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원자력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본은 수요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 에너지를 어디서 가져오느냐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에 집중했다. 1973년부터 1985년 사이 일본의 GDP는 50% 성장했지만 에너지 소비는 거의 늘지 않았다. 에너지 집약도가 선진국 최저 수준이 된 것이 이 시기다. 같은 충격이었다. 같은 해에 왔다. 결과는 세 갈래였다. 트라우마는 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방향만 만들었다. 그 방향을 실현하는 수단은 각자가 달랐다. 그리고 그 수단의 선택은 그 이후 수십 년의 에너지 구조를 고정시켰다. 프랑스가 오늘날까지 원전 중심 구조를 유지하는 것, 일본이 에너지 효율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는 것, 미국이 비축유를 전략 무기로 쓰는 것 모두 1973년의 선택이 만든 결과다. ​ ​ 2022년 독일이 LNG를 택한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공포가 지배하는 순간 민주주의 정부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구조적 경로였다. 1973년에도 그랬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독일은 전체 에너지의 약 4분의 1을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고 있었다. 공급이 끊겼다. 트라우마가 왔다. 그리고 독일이 선택한 건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이 아니었다. 2023년 11월, 독일 빌헬름스하펜 앞바다. 두 번째 LNG 터미널 공사가 한창이다. 출처: Ein Dahmer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녹색당 소속 경제·기후부장관 로베르트 하벡이 LNG 터미널 건설을 밀어붙였다. 기후정당 대표가 화석연료 인프라를 건설한 것이다. 그의 논리는 이러했다. "우크라이나 공격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바꿨다. 독일이 러시아 에너지에서 독립해야 한다." LNG는 재생에너지로 가는 과도기적 브릿지 연료라는 것이었다. 속도는 전례 없었다. 첫 번째 LNG 터미널은 계약 체결 후 7개월 만에 완공됐다. 보통 5년 걸리는 인프라를 안보 공포가 7개월로 압축했다. 재정 보수파인 재무장관조차 즉시 30억 유로를 배정했다. 기후냐 안보냐 논쟁이 없었다. "러시아에 대한 공포" 하나로 연립정부가 합의를 만들었다.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겼다. 독일은 카타르, 미국과 최소 15년짜리 장기 공급 계약이 체결했다. 2022년부터 2038년까지 LNG 인프라에 투자하는 비용은 약 98억 유로. 이미 연방의회가 예산을 확정했다. 환경단체 분석에 따르면 독일이 계획한 LNG 터미널 총 용량은 실제 필요량의 50% 이상을 초과한 수준이다. 기후 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독일의 가스 소비는 줄어야 ...
[2026 시리즈 연재]
2026. 04. 07
65
36
652
[시리즈 연재] 에너지 전환의 역설: 트라우마는 방향을 보장하지 않는다

[시리즈 연재] 플레이어들의 지도 : 세 곡선이 수렴하는 지점

Epic Fury가 터지기 2일전부터 지금까지 틀린 지점을 복기했고, 새로운 변수를 추가했고, 프레임을 바꿨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을 하나씩 다뤘는데, 한 번도 전체를 한 자리에 놓고 본 적이 없었다. 전쟁 35일째. 지금이 그 지도를 그릴 때다. 1. 플레이어 지도 이 전쟁의 행위자들은 세 층위로 나뉜다. ​ 결정권을 가진 층이 있다. 미국의 트럼프,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와 카츠, 그리고 이란의 IRGC 강경파 4인방이다. 이 셋이 전쟁의 방향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삼각축이다. ​ 이란 내부 변수들이 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형식적 최고지도자지만 35일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정보장관 임명조차 막혀 있다. IRGC 해군 현장 지휘부는 호르무즈를 실질적으로 통제하지만 사령관 탄그시리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제거된 이후 후임 구조가 불명확하다. 하층부와 국내 민심은 탈영과 명령 불복종 신호가 축적되고 있지만 아직 조직화된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았다. ​ 외부 레버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있다. 중국은 이란·미국·걸프 국가 세 방향에 동시에 레버를 가진 유일한 행위자다. 이란에게는 원유 80% 구매자이자 25년 전략협력 협정의 파트너다. 미국에게는 무역 전쟁이 병행되는 상황에서 이란 협력을 무역 카드로 연결할 수 있는 상대다. 걸프 국가들에게는 최대 투자 파트너이자 원유 수입국이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이 레버를 쓰지 않고 있다. 중국은 타이밍을 재야할 입장이다. 너무 일찍 개입하면 레버가 싸게 소진된다. 미국이 충분히 지쳐야 중국의 중재 가치가 올라간다. 5월 트럼프의 방중이 그 타이밍의 후보다. 거기에 이란이 중국 국영 선박 두 척을 호르무즈에서 돌려보냈다. 중국의 중재 제안도 이란이 거부했다. 이란 레버가 생각보다 약하다는 게 드러났다. 중국은 미국 방향 채널은 갖고 있지만, 이란을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단이 제한된다. 이것이 "유일한 다방향 레버 보유자"가 아직 결정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진짜 이유다. 왜 안 꺼내느냐? 서사의 문제다. 트럼프는 '내가 중국을 압박했더니 중국이 움직였다'는 구조가 필요하고, 시진핑은 '중국이 먼저 양보했다'는 서사를 피해야 한다. 두 사람의 서사 욕구가 딜 구조 자체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란이 중국 선박을 호르무즈에서 돌려보낸 것도 변수다. 중국의 경제 레버가 IRGC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게 이미 확인됐다. 사우디와 UAE는 트럼프에게 전쟁 지속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카타르와 오만은 이란이 신뢰하는 중재 채널이었지만 이란의 공격을 받으면서 손상됐다. 파키스탄은 현재 유일하게 활성화된 미국-이란 간 메시지 전달 채널이지만, 이란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단이 없다. 이 지도에서 하나의 구조적 사실이 드러난다. 외부 플레이어들이 이 전쟁을 끝내려면 "이란 채널"과 "트럼프 채널"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정렬해야 한다. 카타르·오만·파키스탄은 이란 쪽에 있고, 중국·사우디는 미국 쪽에 있다. 양측이 지금 조율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외부 플레이어들이 아무리 움직여도 핵심 삼각축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2. IRGC 내부 구조 : 군사평의회가 권력을 흡수했다 2019년 4월 9일, 이란 국회의원들이 IRGC 군복을 입고 의회에 등원했다. 미국이 IRGC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민간 기구와 군사 조직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출처: Mehdi Bolourian / Fars Media Corporation, CC BY 4.0 라리자니가 죽으면서 SNSC가 사실상 기능을 잃었다. SNSC는 하메네이가 형식적으로 승인하고, 라리자니가 실질적으로 군·정보부·외무부·대통령실을 조율하는 기구였다. 라리자니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군과 민간 양쪽에 신뢰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IRGC에도, 성직자 계층에도, 외교 채널에도 동시에 걸쳐 있었다. 그 자리를 지금 IRGC 군사평의회가 흡수했다. 그런데 군사평의회는 SNSC가 아니다. SNSC는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기구였고, 군사평의회는 IRGC의 의지를 집행하는 기구다. 기능이 다르다. 협상 채널로서의 SNSC는 라리자니와 함께 죽었다. 지금 이란의 권력 구조는 이렇다. IRGC 군사평의회가 모즈타바 주변에 보안 경계선을 치고 있다. 페제시키안이 모즈타바와의 면담을 반복 요청했지만 모두 묵살됐다. 정부 보고서조차 최고지도자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이란인터내셔널이 보도했다. IRGC 사령관 바히디는 페제시키안이 제안한 정보장관 후보 전원을 거부하면서 "전시 상황에서 핵심 자리는 IRGC가 관리한다"고 선언했다. 모즈타바는 이 구조에서 형식적 권위의 껍데기로 존재한다. 그의 권위는 IRGC가 그 존재를 시뮬레이션해줄 의향에 달려 있다. 알리 하메네이가 35년간 쌓은 개인 네트워크로 IRGC·성직자·민간을 균형잡았던 것과 달리, 모즈타바에게는 그 네트워크가 없다. 외부 압박이 강해질수록 IRGC 강경파의 내부 권력이 강화된다. 폭격이 계속될수록 "우리가 없으면 이란이 무너진다"는 서사가 강해지고, 민간 기구를 압박할 명분이 생기고, 강경파의 결집이 유지된다. 이것이 군사적 압박이 협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다. 3. 두 임계점 곡선 2025년 6월 14일, 미네소타 주 의사당 앞 'No Kings' 집회. 트럼프의 선형 압박 곡선은 유가만이 아니다. 거리로 나온 유권자들도 그 곡선 위에 있다. 출처: Myotus / Wikimedia Commons (CC BY 4.0) 트럼프의 압박 곡선과 IRGC의 압박 곡선은 성격이 다르다. 트럼프의 곡선은 선형이다. 유가 압박, 선거 시계, 공화당 이탈이 시간이 지날수록 선형으로 누적된다. 휘발유 가격이 4달러를 넘었고, 59%의 미국인이 전쟁이 과도하다고 응답했다. 2000억 달러 이상의 전쟁 보충 예산 요청이 의회에 제출됐다. IEA는 "4월이 3월보다 더 심각하다"고 했다. 전쟁 전에 선적된 물량이 소진되면 실물 경제 타격이 본격화된다. IRGC의 곡선은 비선형이다. 어느 선까지는 버티는데, 특정 임계점에서 한꺼번에 무너지는 구조다. 재보급선이 끊겼고, 하층부 탈영이 축적되고 있고, 경제는 붕괴 직전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상층부의 결정권이 유지된다. 두 곡선이 아직 교차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선형 비용이 계속 쌓이고 있고, IRGC의 비선형 곡선이 아직 임계점 전이다. 이 교차가 수 주안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IEA는 '4월이 3월보다 더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봉쇄 전에 선적된 물량이 소진되는 시점이 4월 중순이다. 실물 경제 타격이 그때 본격화된다. 트럼프의 선형 비용이 가장 가파르게 쌓이는 구간이기도 하다. 동시에 IRGC 입장에서는 봉쇄 효과가 글로벌 시장에 가시화되는 첫 시점이라 '우리가 싸웠다'는 내부 서사를 세울 수 있는 최초의 구간이기도 하다. 4. 상호 억제의 구조 지금 이 판에는 세 개의 상호 억제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입장에서, IRGC 강경파를 살려두는 인센티브가 있다. 지금 4인방은 예측 가능하다. 호르무즈를 완전 봉쇄하지 않고 선택적 통과로 관리하는 것도, IRGC 해군이 완전 난사가 아니라 계산된 위협을 하는 것도, 이들이 비용을 이성적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들을 제거하면 지지 기반이 더 약하고, 네트워크가 더 얕고, 공포가 더 큰 세력이 호르무즈 통제권을 가져간다. 예측 불가능성이 폭증하고, 우발적 사고 가능성이 올라가고, 새로운 세력이 내부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전쟁이 연장된다. 즉, IRGC 강경파가 쥔 보호막은 "우리를 죽이면 더 예측 불가능한 세력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론이 있다. 협상 의사가 이들에게 없다는 게 명확해지면 살려둘 인센티브가 사라진다. 협상 거부가 명확해질수록, 미국과 이스라엘 입장에서 현 지도부는 "예측 가능하지만 협상 불가"한 존재가 된다. 그 순간 "예측 불가능하지만 협박에 굴복할 수 있는" 후임자가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계산이 생긴다. IRGC 강경파도 이 논리를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두 가지를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 "협상 의사 없다"는 공개 선언을 유지해야 내부 결집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완전한 채널 단절은 안 된다. 완전 단절은 "이들을 죽여도 손해가 없다"는 계산을 미국에게 줘버리기 때문이다. 카라지 전 외무장관 자택 공습이 이 구조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파키스탄 채널을 통해 밴스와의 접촉을 조율하던 사람이었다. 협상 채널 담당자가 제거됐다. 이란은 "외교를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채널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IRGC가 완전한 단절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결국 이 판은 이렇게 구조화돼 있다. 미국은 죽일 수 있지만 죽이면 더 혼란스러운 세력이 온다. IRGC는 협상을 공개적으로 거부하지만 채널을 완전히 닫지는 않는다. 그리고 둘 다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호르무즈에서 우발적 사고가 나면 이 계산 전체가 날아간다는 것. 5. 불확실성의 이동 : 누가 진짜 변수였나 ​이 분석은 IRGC가 합리적 행위자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런데 35일을 돌아보면 역설적인 사실이...

[시리즈 연재] 통제력 : 이 전쟁에서 모두가 원하는 것

아르메니아 오르고프, 구소련 ROT-54 심우주 전파망원경 통제실. 1986년 가동,1990년 중단. 현재 방치 상태. Photo: Yuri Krupenin / Unsplash 트럼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딜이었다. 파크푸르 같은 실용주의적 인물과 뒷채널을 열고, 양쪽이 각자 이겼다고 하는 구조로 봉합하는 것. 내가 "설계된 게임 : 트럼프, 이란, 그리고 IRGC 붕괴 시나리오"편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제시했던 경로다. 다른 하나는 레짐 체인지였다. 딜은 객관적으로 더 안전한 선택이었다. 유가를 흔들지 않고, 동맹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주식시장을 방어할 수 있는 경로였다. 대부분의 분석가가 그렇게 봤다. 2월 26일, Operation Epic Fury 이틀 전, 폴리마켓에서 공습에 베팅하지 않은 비율이 77%였다. 딜이 컨센서스였다. 그 컨센서스가 레짐 체인지에 최대 서프라이즈 가치를 부여했다. 모두가 예측하는 수는 힘이 빠진다. 예측하지 못한 수는 상대방의 계산 전체를 무너뜨린다. Operation Epic Fury 자체가 분석 컨센서스의 반대를 친 행동이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 효과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게 있다. 서프라이즈는 이유가 아니라 결과다. 왜 하필 그 수가 서프라이즈 수이면서 동시에 트럼프가 선택한 수였는가? ​ 트럼프 입장에서, 딜은 상대방이 수락해야 완성된다. 파크푸르가 응해야 하고, IRGC 강경파가 묵인해야 하고, 하메네이가 승인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마지막 키는 상대방 손에 있다. 통제권이 내게 온전히 없다. ​ 레짐 체인지는 (적어도 군사 타격 단계까지는) 일방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버튼을 누르는 건 나다. 결과를 전부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최적의 수를 고른 게 아니다. 자기 통제력이 최대인 수를 골랐다. 그 수가 마침 서프라이즈 가치도 최대인 수였다. 두 조건이 같은 선택에서 만났다. 1. 플레이어들은 최적의 수가 아니라 통제 가능한 수를 고른다 ​ 네타냐후가 3월 18일 사우스 파르스를 타격하고 "단독 행동"이라고 주장한 것을 보자. Axios는 "미국의 조율과 승인 하에"라고 보도했고, NBC도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트럼프는 "몰랐다"고 했다. 사실관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근데 네타냐후가 왜 "단독"이라고 말해야 했는지는 분명하다. "미국의 승인 하에 행동했다"고 인정하면, 통제권이 워싱턴에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네타냐후는 실행자이지 결정자가 아니다. 10월 총선을 앞둔 네타냐후에게 "미국의 허락을 받고 쳤다"는 서사는 국내 정치적으로 가치가 없다. "내가 결정했다"여야 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통제권의 귀속을 바꾸는 행위다. ​ 트럼프도 "몰랐다"고 말해야 했다. "알고 승인했다"면, 그 타격으로 인한 유가 폭등과 카타르 LNG 시설 피해의 책임이 자기한테 온다. "몰랐다"면 이스라엘의 독주이고, 트럼프는 자제를 요청한 합리적 지도자가 된다. 통제 가능한 서사를 선택한 것이다. 둘 다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서사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사실이 그걸 뒷받침하는지는 부차적이었다. ​ 이란의 호르무즈 통제도 같은 구조다. IRGC는 드론 몇 발로 해협을 사실상 닫았고, 그 위에 선박의 국적·화물·승무원을 심사해서 통과 코드를 발급하는 선택적 통과 체제를 만들었다.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에는 열고 , 미국과 동맹국에는 닫는 구조다. 완전 봉쇄는 "닫았다"는 한 마디로 끝나고 다음 수는 미국의 것이 된다. 선택적 통과는 누구를 통과시킬지, 얼마를 받을지, 언제 죌지의 결정이 매 순간 이란 손에 있다. 모즈타바가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같은 구조로 읽을 수 있다. 전쟁 개시 한 달이 넘도록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고 , 성명은 전부 서면으로, 국영 TV 앵커가 대독하는 형식이다. 나타나면 두 가지 통제를 잃는다. 하나, 건강 상태가 공개돼서 약점이 확정된다. 둘, 공개 발언이 기록돼서 향후 협상의 자유도가 줄어든다. 서면 성명은 대독자의 해석 여지가 있고, 시점도 조절 가능하다. 부재 자체가 통제 가능한 상태의 유지다. ​ 모든 플레이어가 같은 걸 하고 있다. 최적의 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자기 통제력이 최대한 보존되는 수를 고르고 있다. 상황이 더 힘들어지더라도 통제 가능한 경로를 선호한다. 결과가 더 좋을 수 있는 경로라도 통제권이 상대방에게 넘어가면 피한다. 이건 비합리성이 아니다. 불확실성 아래에서 인간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2. 설계된 모호성과 실제 균열은 구별 가능한가 여기서 한 가지 반례를 검토해 본다. 토머스 셸링은 "갈등의 전략"에서 통제를 포기하는 것 자체가 더 큰 레버리지가 된다고 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흐루쇼프가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그 사례다. 실제로 핵전쟁을 원한 게 아니었다. 통제를 잃은 척함으로써 케네디의 계산을 무너뜨린 것이다. 셸링은 이걸 "비합리성의 합리성"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

[시리즈 연재] 가장 많이 분석된 전쟁, 가장 예측 불가능한 전쟁

2015년 6월, 시카고. 안개속의 트럼프 타워. 11년 뒤, 이 건물의 주인도 안개 속에 있다. 출처: Giuseppe Milo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전쟁이 시작된지 24일이 지났다. 지난글에서 나는 세 개의 분기점을 설정했다. 노루즈에 모즈타바가 나타나느냐. 유가가 어떤 원인으로 움직이느냐. 왕이-루비오 전화가 나오느냐. 노루즈는 대독으로 끝났다. 모즈타바는 나타나지 않았고, 미국 정보기관은 "큰 적신호"라고 했다.​ 3월 23일, 트럼프가 "매우 좋고 생산적인 대화"를 했다고 발표하자 유가는 즉각 폭락했다. 이란은 같은 날 "협상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유가는 협상 기대가 아니라 트럼프 발언 하나로 떨어졌다. 출구가 열린 게 아니라 시간을 산 것이다.​ 왕이-루비오 전화는 안나왔다. 대신 베센트-허리펑 채널이 작동한다. 분기점들은 작동했다. 근데 그 분기점들이 작동하는 동안에도, 이 전쟁이 어디로 가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NBC가 확인했다. 트럼프는 매일 출구 옵션을 받고 있지만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 ​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분석의 양과 속도는 전례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민간 OSINT의 폭발이 있었지만, AI가 분석 도구로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이 전쟁이 처음이다.​ CTP-ISW가 하루 두 번 업데이트를 내고, CFR이 매일 Daily Brief를 쓰고, Chatham House가 주 단위로 전문가 분석을 쏟아내고, ACLED가 실시간 충돌 데이터를 공개한다. WEF가 글로벌 공급망 충격을 수치화하고, Atlantic Council이 대만 에너지 위기를 분석하고, 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가 이란전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미치는 파급을 계산한다. ​ 동시에 다른 세계가 돌아가고 있다. 민간인이 89개 소스를 11개 언어로 5분마다 업데이트하는 OSINT 대시보드를 만들고 있다. 위성 이미지, 항공기 transponder 추적, 실시간 유가, 폴리마켓 예측시장. 과거에는 정보기관과 싱크탱크가 독점했던 데이터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기관과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데이터가 누구에게나 열렸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든 사람들의 분석 수준이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다. ​ 그런데 이 전쟁의 결말은 아직 모호하다. 당연히 언젠가 끝날 전쟁이다. 언젠가는. 하지만 그 끝이 어떤식으로, 어떻게, 어떤 명분 구조로, 어떤 출구 전략으로 끝날지가 모호하다. NBC가 확인했다. 트럼프는 매일 출구 옵션을 받고 있지만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 "타임라인은 매일 바뀔 수 있다." Reuters-Ipsos에 따르면 미국인 64%가 "트럼프가 목표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CFR이 이렇게 정리했다. "좁은 전술적 군사 관점에서 보면 전쟁은 매우 성공적이다. 문제는 그 좁은 전술적 성과를 더 큰 전략적 결과로 전환하는 로드맵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싱크탱크도 모르고, 정보기관도 모르고, 트럼프 본인도 모른다. 가장 많이 분석된 전쟁이 가장 예측 불가능한 전쟁이다. 이 역설의 구조를 뜯어보려 한다. 1. 안개의 성격이 바뀌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의 안개(fog of war)"는 정보가 없어서 판단을 못 하는 상태를 말했다. 지금 이 전쟁에서는 정보가 없어서 모르는 게 아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판단이 어렵다. 같은 사건에서 정반대 결론이 나온다. ​ IRGC 미사일 능력에 대해. Al Jazeera에 실린 카타르 거주 분석가의 기고문은 "이란 탄도미사일 발사가 2월 28일 350발에서 3월 14일 약 25발로 90% 이상 감소했고, 이스라엘 타격 능력의 80%가 제거됐다"며 "미국-이스라엘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같은 시기에 이란 IRGC는 "전쟁 시작 이후 가장 강력한 작전을 수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나의 직전 글에서 들뢰즈뿌리 님은 "최고위층이 폭사당하고 가스전이 폭격당했음에도 걸프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이란의 공격은 더 정교하고 날카로웠다"고 반박했다. 세 분석 모두 근거가 있다. 어떤 데이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갈라진다. ​ "시간이 누구 편인가"에 대해. 나는 "[시리즈 연재]트럼프는 왜 협상 대신 체제 전복을 택했나" 라는 글에서 "구조적으로 시간은 트럼프 편"이라고 썼다. CFR은 3월 18일 분석에서 "여러 아시아 국가들이 한 달 안에 원유가 고갈될 수 있다"고 썼다. Chatham House는 "이란의 전략은 단순하다. 확전 비용을 올려서 디에스컬레이션 압력을 만드는 것"이라고 봤다. 같은 데이터셋에서 출발했는데 결론이 갈라진다. ​ 안개가 사라진 게 아니다. 안개의 재료가 바뀌었다. 정보 부족의 안개에서, 정보 과잉의 안개로. 과거 전쟁에서 분석의 병목은 데이터 접근이었다. 위성 사진을 볼 수 있느냐, 통신을 감청할 수 있느냐, 현장에 사람이 있느냐. 지금은 그 데이터가 열려 있다. 병목이 데이터에서 판단으로 이동했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분석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이고, 그 판단은 어떤 변수에 더 무게를 두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AI가 "그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AI는 인간이 한 "그 선택"을 더 강화해주고 정교하게 만들어준다. 2. 관찰이 플레이어를 옥죈다 분석의 폭발이 단순히 관찰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이 전쟁 자체의 변수가 되고 있다. 세 가지 경로로 작동한다. ​ 서사 통제의 붕괴. 3월 18일, 이스라엘이 세계 최대 가스전 사우스 파르스를 타격했다. 트럼프는 Truth Social에 "미국은 이 공격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썼다. 같은 날 Axios가 이스라엘 관리를 인용해 "미국의 조율과 승인 하에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NBC도 "미국 관계자와 카타르 고위 관계자가 트럼프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확인했다. 두 진술이 동시에 사실일 수 없다. 그리고 그 모순이 드러나는 데 몇 시간밖에 안 걸렸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서사가 며칠은 버텼다. 미디어 사이클이 그만큼 느렸고, 교차 검증이 그만큼 어려웠다. 지금은 수만 명이 동시에 다른 소스를 대조한다. 플레이어의 서사 통제력이 ...

[시리즈 연재] 워싱턴과 텔아비브,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3월 17일 밤, 이란 전역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차하르샨베 수리. 조로아스터교에 뿌리를 둔 페르시아의 불 축제. 이슬람 공화국이 47년간 "이교도의 잔재"라며 탄압해온 날. 올해는 달랐다. 레짐은 "불꽃 하나도 국가안보 위반"이라고 했고, 동시에 국영 TV는 "트럼프와 네타냐후 인형을 만들어 광장에서 태워라"고 했다. 미사일이 떨어지는 도시에서 불꽃놀이를 금지하면서, 동시에 다른 불을 피우라고 명령하는 정권. 이 모순 자체가 지금 이란 레짐이 서 있는 자리다. 1. 라리자니 이후 판이 바뀌었다 ​ 지난글에서 나는 라리자니를 1988년 라프산자니 역할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인물로 지목했다.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는다. 이 상태 자체가 협상 테이블이다." 그리고 지난 17일 라리자니가 죽었다. 단순한 예측 실패가 아니다. 구조가 바뀌었다. ​ 트럼프가 이스라엘에게 포괄적 자율권을 줬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협상 설계자 포함 전체 제거로 해석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이 관계는 명시적 사전 승인이 아니다. 구조적 사전 승인이다. Time of Israel 은 라리자니 사망 당일 핵심 내용을 보도했다. "네타냐후와 카츠(이스라엘 국방장관)가 IDF(이스라엘 방위군)에 이란·헤즈볼라 고위 인사들을 통상적인 사전 승인 없이 제거할 권한을 부여했다." 트럼프가 라리자니를 콕 집어서 "죽여라"고 한 게 아니다. 이스라엘이 고위 인사 제거에 대한 포괄적 자율권을 미리 받아놓은 것이다. 트럼프의 반응은 사후 묵시적 동의였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어제 실제 최고위급이 죽었다고 한다"고 했다. 칭찬도 비판도 아닌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를 "nods"라고 표현했다. nods : 무언의 긍정. 압묵적 인정. ​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트럼프가 라리자니를 딜 상대로 남겨두고 싶었는지 아닌지를, 포괄적 자율권을 주면서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명시되지 않은 공백을 자기 방식으로 채웠다. 트럼프는 그 결과를 사후에 받아들였다. 이탈이 아니라 공백의 채움이다. 그리고 그 공백이 트럼프의 딜 가능성을 줄여놨다. ​ 트럼프 본인이 말했다. "점찍어놓은 사람들이 다 죽었다."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를 제거하면 로드리게스가 나왔다. 이란에서 하메네이를 제거했는데 협상 가능한 누군가가 나와야 했다. 근데 그 누군가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다. 설계가 작동하지 않는 게 아니라, 설계의 방향이 처음부터 달랐을 수 있다. 트럼프는 딜을 원했고, 이스라엘은 레짐 해체를 원했다. 두 개의 목표가 같은 군사 작전을 공유하면서, 지금 갈라지고 있다. ​ 그리고 그 공백은 이제 공식화됐다. 라리자니 사망 다음날, 이스라엘이 이란 정보장관 에스마일 하티브를 추가 제거했다. 24시간 동안 최고위급 두 명 제거. 이스라엘 국방장관 카츠는 이번엔 명시적으로 선언했다. "이란 고위 인사를 제거할 기회가 생기면 추가 승인 없이 즉시 행동하라고 IDF에 지시했다." 구조적 승인이 이제 공개 정책이 됐다. 2. IRGC의 두 층: 위에서 굳고 아래에서 녹는다 지금 IRGC에서 상충하는 두 신호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 위에서는 강경화되고 있다. CTP-ISW가 3월 16일 보고서에서 명확히 했다. 모즈타바를 최고지도자로 추대한 핵심 4인방은 후세인 타에브, 아흐마드 바히디, 알리 자파리, 갈리바프다. 전부 하메네이 시절부터 수십 년간 함께한 IRGC 강경파다. 이들이 지금 모즈타바 뒤에서 실질 결정권을 쥐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를 전했다. "레짐은 지금 당장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경해지고 IRGC가 더 강하게 장악한다." ​ 아래에서는 균열되고 있다. 플래시포인트 인텔리전스의 3월 6일 보고에 따르면, 이란군은 현재 고위 장교들의 이탈과 병사들의 탈영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군사적 결속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또 3월 12일 이란인터내셔널이 보도한 정규군(Artesh)과 혁명수비대(IRGC) 간의 갈등은 파멸적인 수준이라고 전했다. IRGC가 부상당한 정규군 이송을 거부하는 등 고질적인 내분이 극에 달했고, 병사 2명당 탄약 20발에 불과한 최악의 보급난과 식수 부족은 군 체계의 실질적인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 ​바시지 지휘관이 직접 인정했다. 많은 대원들이 폭격 건물 잔해에 핸드폰을 버리고 도망갔다. 레짐이 전사한 줄 알게 하려고. ​ ​ 이 두 층이 같은 조직 안에 공존하고 있다. 위는 굳고, 아래는 녹고 있다. 그리고 이게 지금 가장 위험한 구조다. 위가 굳을수록 아래에 더 강한 명령을 내린다. 아래가 녹을수록 그 명령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는다. ​ 이 괴리가 커지는 속도가 임계점을 결정한다. ​ 3. 트럼프의 헷지가 소진되는 구조 ​ 트럼프는 지금 매일 출구 옵션을 받고 있다. 지금 트럼프가 받고 있는 출구 옵션의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NBC가 6명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했다. 매일 군사 작전 계획 안에 출구 옵션이 포함돼 있다. 카네기, CFR, 채텀하우스 같은 싱크탱크들도 각자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나보다 훨씬 좋은 정보력과 분석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의 엔드게임에 대해 답이 없다. Reuters-Ipsos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67%가 트럼프가 목표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 국민들도 모른다. 싱크탱크도 모른다. 그리고 NBC 소식통들은 이렇게 말했다. "타임라인은 매일 바뀔 수 있다." 트럼프 본인도 확정된 답을 갖고 있지 않을 수 있다. 매일 출구 옵션을 받으면서도 안 고르는 건, 아직 베네수엘라 모델이 작동하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그 기다림의 비용이 누적되고 있다. 유가는 브렌트 기준 100달러 위에서 고착됐다. IEA가 4억 배럴 비축유를 방출했지만 시장은 안정되지 않았다. CNBC가 핵심을 짚었다. "이건 경제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군사 문제다. 호르무즈가 열리지 않는 한 유가는 내려가지 않는다." ​ 트럼프의 헷지 카드들, - 비축유, 사우디 증산 압박, 러시아 원유 제재 완화, 유동성 조절 - 전부 시간을 사는 수단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공화당 하원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가솔린 가격 ...
[2026 시리즈 연재]
2026. 04. 03
74
28
709
[시리즈 연재] 플레이어들의 지도 : 세 곡선이 수렴하는 지점
[2026 시리즈 연재]
2026. 04. 01
71
38
660
[시리즈 연재] 통제력 : 이 전쟁에서 모두가 원하는 것
[2026 시리즈 연재]
2026. 03. 24
122
14
1,155
[시리즈 연재] 가장 많이 분석된 전쟁, 가장 예측 불가능한 전쟁
[2026 시리즈 연재]
2026. 03. 19
140
45
1,164
[시리즈 연재] 워싱턴과 텔아비브,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avatar
ILGO
2026.04.09

감사합니다!

avatar
전상돈
작성자
2026.04.1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avatar
데드캣
2026.04.09

크.. 협상의 길을 다차원에서 분석하는게 대단하십니다!

avatar
전상돈
작성자
2026.04.10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avatar
우고
2026.04.10

밴스의 침묵이 자산이 될 줄이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수정됨)
avatar
전상돈
작성자
2026.04.10

침묵이 금이 됐습니다 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avatar
투자홀릭
2026.04.10

좋은 인사이트 감사합니다!

avatar
전상돈
작성자
2026.04.10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avatar
근거핑
2026.04.10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avatar
전상돈
작성자
2026.04.1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거핑님!

avatar
무당개미
2026.04.10

밴스가 똑똑해 보였는데 제갈량급이었네요..

avatar
전상돈
작성자
2026.04.10

밴스가 이 협상에 적임자인것은 능력보다 포지션이라고 봅니다. 전쟁에 거리를 뒀던게 결과적으로 '아직 깨끗한 카드'가 됐거든요. 미국 입장에서 쿠샨·위트코프가 강경 압박하는 동안 밴스라는 트랙을 보존한 구조가 된 건데, 처음부터 의도했든 안했든 결과적으로 자산이 된 케이스예요. 밴스가 처음부터 여기까지 바라보고 이런 포지션을 유지했다면.... 재갈밴스... 인정합니다 ㅎㅎ

avatar
JKK
2026.04.10

좋은글 감사합니다

avatar
전상돈
작성자
2026.04.10

읽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avatar
워런런핏
2026.04.10

새로운 견해를 많이 알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avatar
전상돈
작성자
2026.04.1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avatar
창창이
2026.04.10

오늘도 잘읽었습니다. 항상 다각도로 지정학이슈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avatar
전상돈
작성자
2026.04.10

오늘도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avatar
방글투
2026.04.10

항상 좋은 인사이트 받고 갑니다.

avatar
전상돈
작성자
2026.04.10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