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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연재]트럼프가 부순 JCPOA로 트럼프가 향한다.
생각을 생각하기[2026 시리즈 연재]

[시리즈 연재]트럼프가 부순 JCPOA로 트럼프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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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2026.04.13조회수 6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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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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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POA_announcement_press_conference_(29).jpg

2015년 7월 14일 비엔나 JCPOA 발표 직후. 같은 합의, 다른 서사.

사진: Siamak Ebrahimi / Tasnim News Agency, CC BY 4.0

공식 연재 시리즈 배너.png




이슬라마바드가 결렬됐다.

결렬 이후 내 이전 글들을 다시 읽었다.

합의 구조는 맞췄는데 핵 서사의 무게를 충분히 안고 가지 못했다는 걸 확인했다.

협상이 결국 핵 공약에서 막혔다는 사실이 그걸 다시 확인해줬다.

내 실수의 방향은 이러하다.

서사와 플레이어 간의 인센티브 구조를 보는 데 집중하다 보니,

그 구조가 무엇을 둘러싸고 작동하는지를 충분히 무겁게 다루지 못했다.

질문이 부족했다.

오늘은 그 빈 자리를 채우려 한다.






1. 파트와의 진짜 의미

2003년, 하메네이는 핵무기 개발을 종교적으로 금지하는 파트와(Fatwa, 이슬람 율법 해석)를 발표했다.

많은 분석가들이 이것을 이란의 핵 자제 의지의 증거로 읽었다.

하지만 타이밍을 보면 그렇지 않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후세인은 WMD 보유 의혹으로 제거됐다.

하메네이는 그 장면을 똑똑히 봤다. 파트와는 신앙의 표현이 아니었다.

파트와가 공식 선언된 건 2003년 10월이다. 하메네이는 침공 다음날 연설에서 이미 핵무기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이를 종교적 칙령으로 공식화한 건 7개월 뒤였다.

"우리는 WMD를 만들지 않는다"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실제 행동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파트와 이후에도 이란은 핵농축을 계속했다.

브레이크아웃 D-10 상태.

즉 우라늄을 무기급(90%)으로 농축 완료하는 데 열흘이내에 충분한 수준을 수년째 유지했다.

2024~2025년 미 전략사령부 평가 기준으로는 이미 1주일 이하로 단축된 상태이다.

실제 핵무기 조립과 소형화에는 그 이후 수개월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가장 긴 단계인 농축만큼은 언제든 진입 가능한 상태였다. 핵무기를 못 만든 게 아니라 안 만들고 있었다.


D-10은 전략적 최적점이다. 억제력은 최대, 타격 명분은 최소.

핵을 완성하는 순간 이스라엘과 미국의 타격 명분이 생긴다. 포기하는 순간 후세인과 카다피의 길이 열린다.

D-10은 그 사이의 균형점이었다.

이 구조를 설계한 사람들이 지금 이란의 실권을 쥐고 있다. 바히디는 쿠드스군을 9년 지휘했다.

레자에이는 이란-이라크 전쟁 내내 IRGC를 이끌며 조직을 민병대에서 군사력으로 키웠다.

갈리바프는 90년대 후반 IRGC 공군 사령관을 지냈다.

하급이 아니다. 이 구조를 만든 당사자들이다.

하메네이가 지킨 건 신앙이 아니라 균형이었다.




2. 균형이 사라졌다

2월 28일, 하메네이가 죽었다.

핵 완성을 원하는 세력이 집권한 게 아니다.

핵 완성을 막던 균형이 사라진 것이다.


하메네이는 두 가지 도구를 동시에 가진 유일한 인물이었다.

하나는 파트와라는 종교적 제도화 장치.

"신의 이름으로 금지한다"는 선언은 IRGC 중간 지휘관들이 독자적으로 핵 추진 논의를 꺼낼 수 없게 만드는 내부 억제선이었다. 다른 하나는 수십 년간 쌓은 개인 네트워크.

혁명수비대 지상군, 쿠드스군, 바시지, 성직자 계층을 동시에 장악한 권위였다.

모즈타바에게 그 도구가 없다. 종교적 권위가 없다. IRGC가 밀어 올린 사람이다.

4인방이 D-10 구조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걸 31개 IRGC 지방사령부에 강제할 제도적 수단이 없다.

여기서 자연선택이 작동한다. 온건파는 죽었다. 라리자니는 협상 채널을 운용하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제거됐다.

카라지는 파키스탄 채널을 조율하다 공습을 당해 부인을 잃고 중상을 입었다.

살아남은 건 더 강경하고, 더 지하로 숨고, 더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억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였다. 그 구조가 2월 28일에 죽었다.

그리고 이란 내부 담론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란 핵시설 보호사령관 하크탈라브는 2024년부터 "핵 교리 전환은 가능하고 예상 가능하다"고 공개 발언했다.

퀸시 연구소의 트리타 파르시는

"핵 파트와는 이미 죽었다. 핵 협상 중에 핵보유국 두 곳에 두 차례나 폭격당한 이후 이란의 엘리트 여론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봤다. 침식은 합의 이후에 시작되는 게 아니다. 이미 시작됐다.




3. 트럼프가 탈퇴한 합의가 트럼프를 부른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출구는 JCPOA 구조의 재현이다.


2015년 합의는 두 서사가 동시에 작동한 실제 사례다.

오바마는 "이란의 핵 위협을 봉쇄했다"고 팔았다. 이란은 농축 우라늄을 97% 감축하고 원심분리기를 제한했지만,

테헤란은 이것을 "우리가 농축권을 협상으로 지켜냈다"고 팔았다.

같은 합의를 두 개의 서사로 포장했고, 그 포장이 각자 국내에서 실제로 먹혔다.

이것이 가능했던 구조적 이유가 있다. 합의의 실질과 합의의 선언이 분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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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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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홀릭
2026.04.1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서비스·안전운행 명목의 ‘관리 수수료’ 같은 틀로 이란 서사를 일정 부분 인정해주고, 대신 핵 완성으로 가는 징후가 보일 때마다 그 수수료와 제재 수준을 함께 조절·재강화하는 식으로 국제사회가 관리하는 그림을 상상해보게 되네요.

이런 식의 ‘수익·제재 연동 구조’가 D-10 균형을 연장하는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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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6.04.13

좋은 생각입니다. 경제 인센티브로 핵 억제를 보조하려는 방향 자체는 맞고, 하메네이 없는 이란에서 제도적 억제가 사라진 자리를 뭔가로 채워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정확합니다.

다만 구조적 허점이 하나 있습니다. 호르무즈 통행료는 즉각 검증됩니다. 유조선이 지나가면 열린 거고 안 지나가면 안 열린 거니까요. 근데 핵 징후는 IAEA 보고서를 기다려야 합니다.

수수료와 제재를 연동한다고 해도, 징후가 가시화되는 시점과 실제로 조정이 이루어지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생깁니다. 그 시차가 이 구조의 가장 큰 허점입니다. 글에서 쓴 것처럼 침식은 극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리가 공개 폐기되는 게 아니라 재해석되면서 천천히 움직입니다. 수익·제재 연동 구조가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지금으로선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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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K
2026.04.13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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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6.04.1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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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과 사색
2026.04.13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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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6.04.13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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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GO
2026.04.13

와 좋은 점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단어 선택이 정말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혹시 시인이시거나 작가님이신가요?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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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6.04.13

벨리 시리즈연재 작가입니다 ㅎㅎ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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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뿌리
2026.04.1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첨언하자면 사람들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왜 이란이 강하게 요구하는지 잘 모르는 점을 부연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게 핵문제 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핵문제는 전쟁 전 협상타결까지 갔을 정도로 생각보다 이란이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물론 하메네이 죽고 변했겠지만) 하지만 호르무즈 통제권은 핵 보다 좋습니다 국제적 비난은 덜 한데 즉각적으로 효과를 발훠하고 가장 핵심은 중동패권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사우디의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석유 흐름을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르무즈를 쥐는 순간 이란이 중동 석유 패권을 쥐게 됩니다 지금 시장은 이란이 전쟁을 멈추고 싶어 사실은 안달났다라는 서사로 움직이는데 절반만 동의합니다 그들은 미국이스라엘이 다시는 이란을 재침 못하게 막는 게 더 중요합니다 어설프게 합의해봤자 어기고 폭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불신이 큽니다 그걸 방지해주는세 호르무즈 통제권이죠 협상 생각보다 둘의 간극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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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6.04.13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저는 호르무즈를 줄곧 경제 레버와 서사 도구로 읽어왔는데, 재침 억제 수단이라는 안보차원은 이번 글에서도, 이전 글에서도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설프게 합의해봤자 어기고 폭격하면 그만이라는 이란의 불신 구조는 협상 간극을 설명하는 데 실제로 중요한 변수였는데 빠뜨렸습니다.

다만 사우디 비교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사우디 힘은 호르무즈 통제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파는 석유에서 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통행세를 받는다고 중동 석유 패권이 넘어오지는 않아요. 통행세와 패권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재침 억제 각도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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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yru
2026.04.13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매크로를 보다보면 항상 걸리는게 시간축인 것 같습니다. 이벤트의 선후에 따라 바뀌는게 참 많은 것 같은데 요즘 사람들의 분석을 접할 때마다 시간축을 분석에서 무조건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체감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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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6.04.13

맞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전쟁도 시간축이 빠지면 구조가 절반밖에 안 보이는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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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창이
2026.04.13

항상 좋은 인사이트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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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6.04.13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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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이
2026.04.13

이란에 대한 내용 업데이트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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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6.04.1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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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로잉
2026.04.14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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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6.04.1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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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
2026.04.15

시간 축을 이 일련의 사건에 대입해 놓고 보니 트럼프가 무대에서 퇴장한 이후까지도 염두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생각을 이어가는 연습을 덕분에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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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작성자
2026.04.16

읽고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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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연재] 서사는 열렸다, 해협은 아직이다 : 이슬라마바드 전야

[시리즈 연재] 에너지 전환의 역설: 트라우마는 방향을 보장하지 않는다

1974년 4월, 포틀랜드의 아버지와 아들. 손에는 총, 옆에는 팻말. "가스 도둑 조심해. 우린 준비됐어." 석유 한 방울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 사막에서 내린 결정이, 이 가족의 차고까지 전쟁이 번져왔다. 50년이 지났지만, 전쟁은 여전히 다른 길로 전해진다. 출처: David Falconer / U.S. National Archives (Public Domain) 종량제봉투가 없다. 전국 마트와 편의점에서 종량제봉투가 사라지고 있다. 나프타 수급이 막혔다. 나프타가 없으면 폴리에틸렌이 없고, 폴리에틸렌이 없으면 봉투가 없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오늘 내 쓰레기봉투 문제가 됐다. 추상적 지정학이 생활 트라우마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 순간이 쌓일수록 사람들의 행동이 바뀐다. 행동이 바뀌면 정치적 합의가 바뀐다. 정치적 합의가 바뀌면 인프라가 바뀐다. 인프라가 바뀌면 돌아갈 수 없다. 직관적으로는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근데 정말 그럴까. 트라우마는 정말 에너지 전환을 가속하는가. 아니면 가장 빠른 해결책으로 달려가는가. 그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1. 우리는 어디에 있나 ​ 2024년 기준, 전 세계 전력 생산의 구조는 여전히 화석연료가 지배하고 있다. 석탄 35%, 천연가스 22%, 석유 2%로 화석연료 합계가 약 59%다. 재생에너지는 수력 14%, 풍력 8%, 태양광 7%, 바이오에너지 3%로 합계 32%, 원자력 9%를 더한 클린에너지 전체가 41%에 달한다. ​수치만 보면 전환이 한창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인다. 2024년은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였다. 태양광과 풍력의 합산 발전량이 처음으로 수력을 추월했고, 클린에너지 전체가 전력 믹스의 40%를 넘은 건 1940년대 이후 처음이었다. ​ 그러나 비중이 아닌 절대량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 세계 전력 수요는 매년 4% 안팎으로 증가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히트펌프가 수요를 끌어올리고,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경제 성장이 이를 더욱 가파르게 만들고 있다. 파이가 커지는 속도가 클린에너지 성장 속도를 따라잡고 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비중은 오르고 있지만 화석연료의 절대 발전량은 줄지 않고 있다. 이것이 에너지 전환의 본질적인 역설이다. 비중의 전쟁에서는 이기고 있지만, 절대량의 전쟁에서는 아직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 단순히 화석연료 비중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절대 배출량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2. 트라우마가 전환을 가속한다 ​ 에너지 전환, 공급망 지역화, 에너지 안보 내재화. 이번 위기 이전에도 다 가고 있던 방향이다. 이번이 그 방향을 꺾은 게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논리는 이렇다. 공급 충격으로 생긴 트라우마는 인프라 투자로 이어진다. 인프라는 사라지지 않는다. 봉투가 없고, 나프타가 없고, LNG가 없는 경험이 쌓이면, 정치인들의 선택이 바뀌고, 기업들의 투자 기준이 바뀌고, 소비자들의 행동이 바뀐다. 그리고 데이터는 이 논리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2022년 러시아 침공 직후, EU는 REPowerEU를 발표하고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기존 40%에서 45%로 상향했다. 같은 해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키며 클린에너지에 역대 최대 규모인 약 3,69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안보 위기가 양대 경제권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동시에 끌어올린 것이다.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 출처: Purina employee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시장은 정책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2023년 전 세계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전년 대비 약 87% 급증했고, 2024년에도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풍력도 함께 올랐다. 2024년 태양광·풍력 합산 발전량이 처음으로 수력을 추월한 건 앞에서 말한 대로다. 게다가 기술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태양광 발전 단가는 2010년 이후 약 90% 하락했다. 학습 곡선이라고 불리는 자기강화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보급량이 늘면 생산 단가가 떨어지고, 단가가 떨어지면 보급이 더 늘고, 그러면 단가가 또 떨어진다. 역사상 에너지 전환은 항상 더 싸고 더 강한 것이 이겼다. ​ 거기에 수요 측에서도 낙관론의 근거가 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같은 개도국이 석탄·석유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재생에너지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유선전화 없이 바로 스마트폰으로 넘어간 것처럼. ​ 지금 트라우마가 이미 기울어진 판을 더 빠르게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 자본, 기술, 설치량. 네 방향에서 동시에 가속이 확인된다. 데이터만 보면 테제가 맞는 것 같다. 근데 세 가지 반론이 있다. 3. 트라우마는 가장 빠른 해결책으로 달려간다 ​ 1973년 10월, OPEC이 원유 수출을 금지했다. 배럴당 3달러였던 유가가 석 달 만에 12달러가 됐다. 선진국 전체가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세 나라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국은 공급을 잡으려 했다. 1975년 전략비축유(SPR) 시스템을 만들었다. 에너지를 비축하면 다음번 충격을 버틸 수 있다는 논리였다. 에너지원을 바꾸는 게 아니라 기존 에너지원을 더 안전하게 확보하는 방향이었다. 프랑스는 에너지원 자체를 바꿨다. 1974년 메스메르 플랜을 발표하고 원전 대규모 건설에 착수했다. 1973년 2% 미만이었던 원자력 비중이 1984년 55%가 됐다. 11년 만에 구조가 바뀐 것이다. 단 그 방향이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원자력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본은 수요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 에너지를 어디서 가져오느냐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에 집중했다. 1973년부터 1985년 사이 일본의 GDP는 50% 성장했지만 에너지 소비는 거의 늘지 않았다. 에너지 집약도가 선진국 최저 수준이 된 것이 이 시기다. 같은 충격이었다. 같은 해에 왔다. 결과는 세 갈래였다. 트라우마는 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방향만 만들었다. 그 방향을 실현하는 수단은 각자가 달랐다. 그리고 그 수단의 선택은 그 이후 수십 년의 에너지 구조를 고정시켰다. 프랑스가 오늘날까지 원전 중심 구조를 유지하는 것, 일본이 에너지 효율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는 것, 미국이 비축유를 전략 무기로 쓰는 것 모두 1973년의 선택이 만든 결과다. ​ ​ 2022년 독일이 LNG를 택한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공포가 지배하는 순간 민주주의 정부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구조적 경로였다. 1973년에도 그랬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독일은 전체 에너지의 약 4분의 1을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고 있었다. 공급이 끊겼다. 트라우마가 왔다. 그리고 독일이 선택한 건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이 아니었다. 2023년 11월, 독일 빌헬름스하펜 앞바다. 두 번째 LNG 터미널 공사가 한창이다. 출처: Ein Dahmer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녹색당 소속 경제·기후부장관 로베르트 하벡이 LNG 터미널 건설을 밀어붙였다. 기후정당 대표가 화석연료 인프라를 건설한 것이다. 그의 논리는 이러했다. "우크라이나 공격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바꿨다. 독일이 러시아 에너지에서 독립해야 한다." LNG는 재생에너지로 가는 과도기적 브릿지 연료라는 것이었다. 속도는 전례 없었다. 첫 번째 LNG 터미널은 계약 체결 후 7개월 만에 완공됐다. 보통 5년 걸리는 인프라를 안보 공포가 7개월로 압축했다. 재정 보수파인 재무장관조차 즉시 30억 유로를 배정했다. 기후냐 안보냐 논쟁이 없었다. "러시아에 대한 공포" 하나로 연립정부가 합의를 만들었다.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겼다. 독일은 카타르, 미국과 최소 15년짜리 장기 공급 계약이 체결했다. 2022년부터 2038년까지 LNG 인프라에 투자하는 비용은 약 98억 유로. 이미 연방의회가 예산을 확정했다. 환경단체 분석에 따르면 독일이 계획한 LNG 터미널 총 용량은 실제 필요량의 50% 이상을 초과한 수준이다. 기후 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독일의 가스 소비는 줄어야 ...

[시리즈 연재] 플레이어들의 지도 : 세 곡선이 수렴하는 지점

Epic Fury가 터지기 2일전부터 지금까지 틀린 지점을 복기했고, 새로운 변수를 추가했고, 프레임을 바꿨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을 하나씩 다뤘는데, 한 번도 전체를 한 자리에 놓고 본 적이 없었다. 전쟁 35일째. 지금이 그 지도를 그릴 때다. 1. 플레이어 지도 이 전쟁의 행위자들은 세 층위로 나뉜다. ​ 결정권을 가진 층이 있다. 미국의 트럼프,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와 카츠, 그리고 이란의 IRGC 강경파 4인방이다. 이 셋이 전쟁의 방향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삼각축이다. ​ 이란 내부 변수들이 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형식적 최고지도자지만 35일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정보장관 임명조차 막혀 있다. IRGC 해군 현장 지휘부는 호르무즈를 실질적으로 통제하지만 사령관 탄그시리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제거된 이후 후임 구조가 불명확하다. 하층부와 국내 민심은 탈영과 명령 불복종 신호가 축적되고 있지만 아직 조직화된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았다. ​ 외부 레버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있다. 중국은 이란·미국·걸프 국가 세 방향에 동시에 레버를 가진 유일한 행위자다. 이란에게는 원유 80% 구매자이자 25년 전략협력 협정의 파트너다. 미국에게는 무역 전쟁이 병행되는 상황에서 이란 협력을 무역 카드로 연결할 수 있는 상대다. 걸프 국가들에게는 최대 투자 파트너이자 원유 수입국이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이 레버를 쓰지 않고 있다. 중국은 타이밍을 재야할 입장이다. 너무 일찍 개입하면 레버가 싸게 소진된다. 미국이 충분히 지쳐야 중국의 중재 가치가 올라간다. 5월 트럼프의 방중이 그 타이밍의 후보다. 거기에 이란이 중국 국영 선박 두 척을 호르무즈에서 돌려보냈다. 중국의 중재 제안도 이란이 거부했다. 이란 레버가 생각보다 약하다는 게 드러났다. 중국은 미국 방향 채널은 갖고 있지만, 이란을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단이 제한된다. 이것이 "유일한 다방향 레버 보유자"가 아직 결정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진짜 이유다. 왜 안 꺼내느냐? 서사의 문제다. 트럼프는 '내가 중국을 압박했더니 중국이 움직였다'는 구조가 필요하고, 시진핑은 '중국이 먼저 양보했다'는 서사를 피해야 한다. 두 사람의 서사 욕구가 딜 구조 자체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란이 중국 선박을 호르무즈에서 돌려보낸 것도 변수다. 중국의 경제 레버가 IRGC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게 이미 확인됐다. 사우디와 UAE는 트럼프에게 전쟁 지속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카타르와 오만은 이란이 신뢰하는 중재 채널이었지만 이란의 공격을 받으면서 손상됐다. 파키스탄은 현재 유일하게 활성화된 미국-이란 간 메시지 전달 채널이지만, 이란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단이 없다. 이 지도에서 하나의 구조적 사실이 드러난다. 외부 플레이어들이 이 전쟁을 끝내려면 "이란 채널"과 "트럼프 채널"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정렬해야 한다. 카타르·오만·파키스탄은 이란 쪽에 있고, 중국·사우디는 미국 쪽에 있다. 양측이 지금 조율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외부 플레이어들이 아무리 움직여도 핵심 삼각축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2. IRGC 내부 구조 : 군사평의회가 권력을 흡수했다 2019년 4월 9일, 이란 국회의원들이 IRGC 군복을 입고 의회에 등원했다. 미국이 IRGC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민간 기구와 군사 조직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출처: Mehdi Bolourian / Fars Media Corporation, CC BY 4.0 라리자니가 죽으면서 SNSC가 사실상 기능을 잃었다. SNSC는 하메네이가 형식적으로 승인하고, 라리자니가 실질적으로 군·정보부·외무부·대통령실을 조율하는 기구였다. 라리자니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군과 민간 양쪽에 신뢰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IRGC에도, 성직자 계층에도, 외교 채널에도 동시에 걸쳐 있었다. 그 자리를 지금 IRGC 군사평의회가 흡수했다. 그런데 군사평의회는 SNSC가 아니다. SNSC는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기구였고, 군사평의회는 IRGC의 의지를 집행하는 기구다. 기능이 다르다. 협상 채널로서의 SNSC는 라리자니와 함께 죽었다. 지금 이란의 권력 구조는 이렇다. IRGC 군사평의회가 모즈타바 주변에 보안 경계선을 치고 있다. 페제시키안이 모즈타바와의 면담을 반복 요청했지만 모두 묵살됐다. 정부 보고서조차 최고지도자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이란인터내셔널이 보도했다. IRGC 사령관 바히디는 페제시키안이 제안한 정보장관 후보 전원을 거부하면서 "전시 상황에서 핵심 자리는 IRGC가 관리한다"고 선언했다. 모즈타바는 이 구조에서 형식적 권위의 껍데기로 존재한다. 그의 권위는 IRGC가 그 존재를 시뮬레이션해줄 의향에 달려 있다. 알리 하메네이가 35년간 쌓은 개인 네트워크로 IRGC·성직자·민간을 균형잡았던 것과 달리, 모즈타바에게는 그 네트워크가 없다. 외부 압박이 강해질수록 IRGC 강경파의 내부 권력이 강화된다. 폭격이 계속될수록 "우리가 없으면 이란이 무너진다"는 서사가 강해지고, 민간 기구를 압박할 명분이 생기고, 강경파의 결집이 유지된다. 이것이 군사적 압박이 협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다. 3. 두 임계점 곡선 2025년 6월 14일, 미네소타 주 의사당 앞 'No Kings' 집회. 트럼프의 선형 압박 곡선은 유가만이 아니다. 거리로 나온 유권자들도 그 곡선 위에 있다. 출처: Myotus / Wikimedia Commons (CC BY 4.0) 트럼프의 압박 곡선과 IRGC의 압박 곡선은 성격이 다르다. 트럼프의 곡선은 선형이다. 유가 압박, 선거 시계, 공화당 이탈이 시간이 지날수록 선형으로 누적된다. 휘발유 가격이 4달러를 넘었고, 59%의 미국인이 전쟁이 과도하다고 응답했다. 2000억 달러 이상의 전쟁 보충 예산 요청이 의회에 제출됐다. IEA는 "4월이 3월보다 더 심각하다"고 했다. 전쟁 전에 선적된 물량이 소진되면 실물 경제 타격이 본격화된다. IRGC의 곡선은 비선형이다. 어느 선까지는 버티는데, 특정 임계점에서 한꺼번에 무너지는 구조다. 재보급선이 끊겼고, 하층부 탈영이 축적되고 있고, 경제는 붕괴 직전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상층부의 결정권이 유지된다. 두 곡선이 아직 교차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선형 비용이 계속 쌓이고 있고, IRGC의 비선형 곡선이 아직 임계점 전이다. 이 교차가 수 주안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IEA는 '4월이 3월보다 더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봉쇄 전에 선적된 물량이 소진되는 시점이 4월 중순이다. 실물 경제 타격이 그때 본격화된다. 트럼프의 선형 비용이 가장 가파르게 쌓이는 구간이기도 하다. 동시에 IRGC 입장에서는 봉쇄 효과가 글로벌 시장에 가시화되는 첫 시점이라 '우리가 싸웠다'는 내부 서사를 세울 수 있는 최초의 구간이기도 하다. 4. 상호 억제의 구조 지금 이 판에는 세 개의 상호 억제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입장에서, IRGC 강경파를 살려두는 인센티브가 있다. 지금 4인방은 예측 가능하다. 호르무즈를 완전 봉쇄하지 않고 선택적 통과로 관리하는 것도, IRGC 해군이 완전 난사가 아니라 계산된 위협을 하는 것도, 이들이 비용을 이성적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들을 제거하면 지지 기반이 더 약하고, 네트워크가 더 얕고, 공포가 더 큰 세력이 호르무즈 통제권을 가져간다. 예측 불가능성이 폭증하고, 우발적 사고 가능성이 올라가고, 새로운 세력이 내부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전쟁이 연장된다. 즉, IRGC 강경파가 쥔 보호막은 "우리를 죽이면 더 예측 불가능한 세력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론이 있다. 협상 의사가 이들에게 없다는 게 명확해지면 살려둘 인센티브가 사라진다. 협상 거부가 명확해질수록, 미국과 이스라엘 입장에서 현 지도부는 "예측 가능하지만 협상 불가"한 존재가 된다. 그 순간 "예측 불가능하지만 협박에 굴복할 수 있는" 후임자가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계산이 생긴다. IRGC 강경파도 이 논리를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두 가지를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 "협상 의사 없다"는 공개 선언을 유지해야 내부 결집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완전한 채널 단절은 안 된다. 완전 단절은 "이들을 죽여도 손해가 없다"는 계산을 미국에게 줘버리기 때문이다. 카라지 전 외무장관 자택 공습이 이 구조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파키스탄 채널을 통해 밴스와의 접촉을 조율하던 사람이었다. 협상 채널 담당자가 제거됐다. 이란은 "외교를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채널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IRGC가 완전한 단절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결국 이 판은 이렇게 구조화돼 있다. 미국은 죽일 수 있지만 죽이면 더 혼란스러운 세력이 온다. IRGC는 협상을 공개적으로 거부하지만 채널을 완전히 닫지는 않는다. 그리고 둘 다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호르무즈에서 우발적 사고가 나면 이 계산 전체가 날아간다는 것. 5. 불확실성의 이동 : 누가 진짜 변수였나 ​이 분석은 IRGC가 합리적 행위자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런데 35일을 돌아보면 역설적인 사실이...

[시리즈 연재] 통제력 : 이 전쟁에서 모두가 원하는 것

아르메니아 오르고프, 구소련 ROT-54 심우주 전파망원경 통제실. 1986년 가동,1990년 중단. 현재 방치 상태. Photo: Yuri Krupenin / Unsplash 트럼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딜이었다. 파크푸르 같은 실용주의적 인물과 뒷채널을 열고, 양쪽이 각자 이겼다고 하는 구조로 봉합하는 것. 내가 "설계된 게임 : 트럼프, 이란, 그리고 IRGC 붕괴 시나리오"편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제시했던 경로다. 다른 하나는 레짐 체인지였다. 딜은 객관적으로 더 안전한 선택이었다. 유가를 흔들지 않고, 동맹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주식시장을 방어할 수 있는 경로였다. 대부분의 분석가가 그렇게 봤다. 2월 26일, Operation Epic Fury 이틀 전, 폴리마켓에서 공습에 베팅하지 않은 비율이 77%였다. 딜이 컨센서스였다. 그 컨센서스가 레짐 체인지에 최대 서프라이즈 가치를 부여했다. 모두가 예측하는 수는 힘이 빠진다. 예측하지 못한 수는 상대방의 계산 전체를 무너뜨린다. Operation Epic Fury 자체가 분석 컨센서스의 반대를 친 행동이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 효과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게 있다. 서프라이즈는 이유가 아니라 결과다. 왜 하필 그 수가 서프라이즈 수이면서 동시에 트럼프가 선택한 수였는가? ​ 트럼프 입장에서, 딜은 상대방이 수락해야 완성된다. 파크푸르가 응해야 하고, IRGC 강경파가 묵인해야 하고, 하메네이가 승인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마지막 키는 상대방 손에 있다. 통제권이 내게 온전히 없다. ​ 레짐 체인지는 (적어도 군사 타격 단계까지는) 일방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버튼을 누르는 건 나다. 결과를 전부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최적의 수를 고른 게 아니다. 자기 통제력이 최대인 수를 골랐다. 그 수가 마침 서프라이즈 가치도 최대인 수였다. 두 조건이 같은 선택에서 만났다. 1. 플레이어들은 최적의 수가 아니라 통제 가능한 수를 고른다 ​ 네타냐후가 3월 18일 사우스 파르스를 타격하고 "단독 행동"이라고 주장한 것을 보자. Axios는 "미국의 조율과 승인 하에"라고 보도했고, NBC도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트럼프는 "몰랐다"고 했다. 사실관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근데 네타냐후가 왜 "단독"이라고 말해야 했는지는 분명하다. "미국의 승인 하에 행동했다"고 인정하면, 통제권이 워싱턴에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네타냐후는 실행자이지 결정자가 아니다. 10월 총선을 앞둔 네타냐후에게 "미국의 허락을 받고 쳤다"는 서사는 국내 정치적으로 가치가 없다. "내가 결정했다"여야 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통제권의 귀속을 바꾸는 행위다. ​ 트럼프도 "몰랐다"고 말해야 했다. "알고 승인했다"면, 그 타격으로 인한 유가 폭등과 카타르 LNG 시설 피해의 책임이 자기한테 온다. "몰랐다"면 이스라엘의 독주이고, 트럼프는 자제를 요청한 합리적 지도자가 된다. 통제 가능한 서사를 선택한 것이다. 둘 다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서사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사실이 그걸 뒷받침하는지는 부차적이었다. ​ 이란의 호르무즈 통제도 같은 구조다. IRGC는 드론 몇 발로 해협을 사실상 닫았고, 그 위에 선박의 국적·화물·승무원을 심사해서 통과 코드를 발급하는 선택적 통과 체제를 만들었다.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에는 열고 , 미국과 동맹국에는 닫는 구조다. 완전 봉쇄는 "닫았다"는 한 마디로 끝나고 다음 수는 미국의 것이 된다. 선택적 통과는 누구를 통과시킬지, 얼마를 받을지, 언제 죌지의 결정이 매 순간 이란 손에 있다. 모즈타바가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같은 구조로 읽을 수 있다. 전쟁 개시 한 달이 넘도록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고 , 성명은 전부 서면으로, 국영 TV 앵커가 대독하는 형식이다. 나타나면 두 가지 통제를 잃는다. 하나, 건강 상태가 공개돼서 약점이 확정된다. 둘, 공개 발언이 기록돼서 향후 협상의 자유도가 줄어든다. 서면 성명은 대독자의 해석 여지가 있고, 시점도 조절 가능하다. 부재 자체가 통제 가능한 상태의 유지다. ​ 모든 플레이어가 같은 걸 하고 있다. 최적의 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자기 통제력이 최대한 보존되는 수를 고르고 있다. 상황이 더 힘들어지더라도 통제 가능한 경로를 선호한다. 결과가 더 좋을 수 있는 경로라도 통제권이 상대방에게 넘어가면 피한다. 이건 비합리성이 아니다. 불확실성 아래에서 인간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2. 설계된 모호성과 실제 균열은 구별 가능한가 여기서 한 가지 반례를 검토해 본다. 토머스 셸링은 "갈등의 전략"에서 통제를 포기하는 것 자체가 더 큰 레버리지가 된다고 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흐루쇼프가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그 사례다. 실제로 핵전쟁을 원한 게 아니었다. 통제를 잃은 척함으로써 케네디의 계산을 무너뜨린 것이다. 셸링은 이걸 "비합리성의 합리성"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

[시리즈 연재] 가장 많이 분석된 전쟁, 가장 예측 불가능한 전쟁

2015년 6월, 시카고. 안개속의 트럼프 타워. 11년 뒤, 이 건물의 주인도 안개 속에 있다. 출처: Giuseppe Milo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전쟁이 시작된지 24일이 지났다. 지난글에서 나는 세 개의 분기점을 설정했다. 노루즈에 모즈타바가 나타나느냐. 유가가 어떤 원인으로 움직이느냐. 왕이-루비오 전화가 나오느냐. 노루즈는 대독으로 끝났다. 모즈타바는 나타나지 않았고, 미국 정보기관은 "큰 적신호"라고 했다.​ 3월 23일, 트럼프가 "매우 좋고 생산적인 대화"를 했다고 발표하자 유가는 즉각 폭락했다. 이란은 같은 날 "협상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유가는 협상 기대가 아니라 트럼프 발언 하나로 떨어졌다. 출구가 열린 게 아니라 시간을 산 것이다.​ 왕이-루비오 전화는 안나왔다. 대신 베센트-허리펑 채널이 작동한다. 분기점들은 작동했다. 근데 그 분기점들이 작동하는 동안에도, 이 전쟁이 어디로 가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NBC가 확인했다. 트럼프는 매일 출구 옵션을 받고 있지만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 ​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분석의 양과 속도는 전례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민간 OSINT의 폭발이 있었지만, AI가 분석 도구로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이 전쟁이 처음이다.​ CTP-ISW가 하루 두 번 업데이트를 내고, CFR이 매일 Daily Brief를 쓰고, Chatham House가 주 단위로 전문가 분석을 쏟아내고, ACLED가 실시간 충돌 데이터를 공개한다. WEF가 글로벌 공급망 충격을 수치화하고, Atlantic Council이 대만 에너지 위기를 분석하고, 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가 이란전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미치는 파급을 계산한다. ​ 동시에 다른 세계가 돌아가고 있다. 민간인이 89개 소스를 11개 언어로 5분마다 업데이트하는 OSINT 대시보드를 만들고 있다. 위성 이미지, 항공기 transponder 추적, 실시간 유가, 폴리마켓 예측시장. 과거에는 정보기관과 싱크탱크가 독점했던 데이터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기관과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데이터가 누구에게나 열렸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든 사람들의 분석 수준이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다. ​ 그런데 이 전쟁의 결말은 아직 모호하다. 당연히 언젠가 끝날 전쟁이다. 언젠가는. 하지만 그 끝이 어떤식으로, 어떻게, 어떤 명분 구조로, 어떤 출구 전략으로 끝날지가 모호하다. NBC가 확인했다. 트럼프는 매일 출구 옵션을 받고 있지만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 "타임라인은 매일 바뀔 수 있다." Reuters-Ipsos에 따르면 미국인 64%가 "트럼프가 목표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CFR이 이렇게 정리했다. "좁은 전술적 군사 관점에서 보면 전쟁은 매우 성공적이다. 문제는 그 좁은 전술적 성과를 더 큰 전략적 결과로 전환하는 로드맵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싱크탱크도 모르고, 정보기관도 모르고, 트럼프 본인도 모른다. 가장 많이 분석된 전쟁이 가장 예측 불가능한 전쟁이다. 이 역설의 구조를 뜯어보려 한다. 1. 안개의 성격이 바뀌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의 안개(fog of war)"는 정보가 없어서 판단을 못 하는 상태를 말했다. 지금 이 전쟁에서는 정보가 없어서 모르는 게 아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판단이 어렵다. 같은 사건에서 정반대 결론이 나온다. ​ IRGC 미사일 능력에 대해. Al Jazeera에 실린 카타르 거주 분석가의 기고문은 "이란 탄도미사일 발사가 2월 28일 350발에서 3월 14일 약 25발로 90% 이상 감소했고, 이스라엘 타격 능력의 80%가 제거됐다"며 "미국-이스라엘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같은 시기에 이란 IRGC는 "전쟁 시작 이후 가장 강력한 작전을 수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나의 직전 글에서 들뢰즈뿌리 님은 "최고위층이 폭사당하고 가스전이 폭격당했음에도 걸프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이란의 공격은 더 정교하고 날카로웠다"고 반박했다. 세 분석 모두 근거가 있다. 어떤 데이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갈라진다. ​ "시간이 누구 편인가"에 대해. 나는 "[시리즈 연재]트럼프는 왜 협상 대신 체제 전복을 택했나" 라는 글에서 "구조적으로 시간은 트럼프 편"이라고 썼다. CFR은 3월 18일 분석에서 "여러 아시아 국가들이 한 달 안에 원유가 고갈될 수 있다"고 썼다. Chatham House는 "이란의 전략은 단순하다. 확전 비용을 올려서 디에스컬레이션 압력을 만드는 것"이라고 봤다. 같은 데이터셋에서 출발했는데 결론이 갈라진다. ​ 안개가 사라진 게 아니다. 안개의 재료가 바뀌었다. 정보 부족의 안개에서, 정보 과잉의 안개로. 과거 전쟁에서 분석의 병목은 데이터 접근이었다. 위성 사진을 볼 수 있느냐, 통신을 감청할 수 있느냐, 현장에 사람이 있느냐. 지금은 그 데이터가 열려 있다. 병목이 데이터에서 판단으로 이동했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분석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이고, 그 판단은 어떤 변수에 더 무게를 두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AI가 "그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AI는 인간이 한 "그 선택"을 더 강화해주고 정교하게 만들어준다. 2. 관찰이 플레이어를 옥죈다 분석의 폭발이 단순히 관찰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이 전쟁 자체의 변수가 되고 있다. 세 가지 경로로 작동한다. ​ 서사 통제의 붕괴. 3월 18일, 이스라엘이 세계 최대 가스전 사우스 파르스를 타격했다. 트럼프는 Truth Social에 "미국은 이 공격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썼다. 같은 날 Axios가 이스라엘 관리를 인용해 "미국의 조율과 승인 하에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NBC도 "미국 관계자와 카타르 고위 관계자가 트럼프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확인했다. 두 진술이 동시에 사실일 수 없다. 그리고 그 모순이 드러나는 데 몇 시간밖에 안 걸렸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서사가 며칠은 버텼다. 미디어 사이클이 그만큼 느렸고, 교차 검증이 그만큼 어려웠다. 지금은 수만 명이 동시에 다른 소스를 대조한다. 플레이어의 서사 통제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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