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트럼프가 부순 JCPOA로 트럼프가 향한다.




2015년 7월 14일 비엔나 JCPOA 발표 직후. 같은 합의, 다른 서사.
사진: Siamak Ebrahimi / Tasnim News Agency, CC BY 4.0

이슬라마바드가 결렬됐다.
결렬 이후 내 이전 글들을 다시 읽었다.
합의 구조는 맞췄는데 핵 서사의 무게를 충분히 안고 가지 못했다는 걸 확인했다.
협상이 결국 핵 공약에서 막혔다는 사실이 그걸 다시 확인해줬다.
내 실수의 방향은 이러하다.
서사와 플레이어 간의 인센티브 구조를 보는 데 집중하다 보니,
그 구조가 무엇을 둘러싸고 작동하는지를 충분히 무겁게 다루지 못했다.
질문이 부족했다.
오늘은 그 빈 자리를 채우려 한다.
2003년, 하메네이는 핵무기 개발을 종교적으로 금지하는 파트와(Fatwa, 이슬람 율법 해석)를 발표했다.
많은 분석가들이 이것을 이란의 핵 자제 의지의 증거로 읽었다.
하지만 타이밍을 보면 그렇지 않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후세인은 WMD 보유 의혹으로 제거됐다.
하메네이는 그 장면을 똑똑히 봤다. 파트와는 신앙의 표현이 아니었다.
파트와가 공식 선언된 건 2003년 10월이다. 하메네이는 침공 다음날 연설에서 이미 핵무기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이를 종교적 칙령으로 공식화한 건 7개월 뒤였다.
"우리는 WMD를 만들지 않는다"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실제 행동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파트와 이후에도 이란은 핵농축을 계속했다.
브레이크아웃 D-10 상태.
즉 우라늄을 무기급(90%)으로 농축 완료하는 데 열흘이내에 충분한 수준을 수년째 유지했다.
2024~2025년 미 전략사령부 평가 기준으로는 이미 1주일 이하로 단축된 상태이다.
실제 핵무기 조립과 소형화에는 그 이후 수개월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가장 긴 단계인 농축만큼은 언제든 진입 가능한 상태였다. 핵무기를 못 만든 게 아니라 안 만들고 있었다.
D-10은 전략적 최적점이다. 억제력은 최대, 타격 명분은 최소.
핵을 완성하는 순간 이스라엘과 미국의 타격 명분이 생긴다. 포기하는 순간 후세인과 카다피의 길이 열린다.
D-10은 그 사이의 균형점이었다.
이 구조를 설계한 사람들이 지금 이란의 실권을 쥐고 있다. 바히디는 쿠드스군을 9년 지휘했다.
레자에이는 이란-이라크 전쟁 내내 IRGC를 이끌며 조직을 민병대에서 군사력으로 키웠다.
갈리바프는 90년대 후반 IRGC 공군 사령관을 지냈다.
하급이 아니다. 이 구조를 만든 당사자들이다.
하메네이가 지킨 건 신앙이 아니라 균형이었다.
2월 28일, 하메네이가 죽었다.
핵 완성을 원하는 세력이 집권한 게 아니다.
핵 완성을 막던 균형이 사라진 것이다.
하메네이는 두 가지 도구를 동시에 가진 유일한 인물이었다.
하나는 파트와라는 종교적 제도화 장치.
"신의 이름으로 금지한다"는 선언은 IRGC 중간 지휘관들이 독자적으로 핵 추진 논의를 꺼낼 수 없게 만드는 내부 억제선이었다. 다른 하나는 수십 년간 쌓은 개인 네트워크.
혁명수비대 지상군, 쿠드스군, 바시지, 성직자 계층을 동시에 장악한 권위였다.
모즈타바에게 그 도구가 없다. 종교적 권위가 없다. IRGC가 밀어 올린 사람이다.
4인방이 D-10 구조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걸 31개 IRGC 지방사령부에 강제할 제도적 수단이 없다.
여기서 자연선택이 작동한다. 온건파는 죽었다. 라리자니는 협상 채널을 운용하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제거됐다.
카라지는 파키스탄 채널을 조율하다 공습을 당해 부인을 잃고 중상을 입었다.
살아남은 건 더 강경하고, 더 지하로 숨고, 더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억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였다. 그 구조가 2월 28일에 죽었다.
그리고 이란 내부 담론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란 핵시설 보호사령관 하크탈라브는 2024년부터 "핵 교리 전환은 가능하고 예상 가능하다"고 공개 발언했다.
퀸시 연구소의 트리타 파르시는
"핵 파트와는 이미 죽었다. 핵 협상 중에 핵보유국 두 곳에 두 차례나 폭격당한 이후 이란의 엘리트 여론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봤다. 침식은 합의 이후에 시작되는 게 아니다. 이미 시작됐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출구는 JCPOA 구조의 재현이다.
오바마는 "이란의 핵 위협을 봉쇄했다"고 팔았다. 이란은 농축 우라늄을 97% 감축하고 원심분리기를 제한했지만,
테헤란은 이것을 "우리가 농축권을 협상으로 지켜냈다"고 팔았다.
같은 합의를 두 개의 서사로 포장했고, 그 포장이 각자 국내에서 실제로 먹혔다.
이것이 가능했던 구조적 이유가 있다. 합의의 실질과 합의의 선언이 분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서비스·안전운행 명목의 ‘관리 수수료’ 같은 틀로 이란 서사를 일정 부분 인정해주고, 대신 핵 완성으로 가는 징후가 보일 때마다 그 수수료와 제재 수준을 함께 조절·재강화하는 식으로 국제사회가 관리하는 그림을 상상해보게 되네요.
이런 식의 ‘수익·제재 연동 구조’가 D-10 균형을 연장하는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경제 인센티브로 핵 억제를 보조하려는 방향 자체는 맞고, 하메네이 없는 이란에서 제도적 억제가 사라진 자리를 뭔가로 채워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정확합니다.
다만 구조적 허점이 하나 있습니다. 호르무즈 통행료는 즉각 검증됩니다. 유조선이 지나가면 열린 거고 안 지나가면 안 열린 거니까요. 근데 핵 징후는 IAEA 보고서를 기다려야 합니다.
수수료와 제재를 연동한다고 해도, 징후가 가시화되는 시점과 실제로 조정이 이루어지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생깁니다. 그 시차가 이 구조의 가장 큰 허점입니다. 글에서 쓴 것처럼 침식은 극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리가 공개 폐기되는 게 아니라 재해석되면서 천천히 움직입니다. 수익·제재 연동 구조가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지금으로선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좋은 점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단어 선택이 정말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혹시 시인이시거나 작가님이신가요? ㅎㅎ 감사합니다!!

벨리 시리즈연재 작가입니다 ㅎㅎ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첨언하자면 사람들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왜 이란이 강하게 요구하는지 잘 모르는 점을 부연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게 핵문제 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핵문제는 전쟁 전 협상타결까지 갔을 정도로 생각보다 이란이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물론 하메네이 죽고 변했겠지만) 하지만 호르무즈 통제권은 핵 보다 좋습니다 국제적 비난은 덜 한데 즉각적으로 효과를 발훠하고 가장 핵심은 중동패권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사우디의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석유 흐름을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르무즈를 쥐는 순간 이란이 중동 석유 패권을 쥐게 됩니다 지금 시장은 이란이 전쟁을 멈추고 싶어 사실은 안달났다라는 서사로 움직이는데 절반만 동의합니다 그들은 미국이스라엘이 다시는 이란을 재침 못하게 막는 게 더 중요합니다 어설프게 합의해봤자 어기고 폭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불신이 큽니다 그걸 방지해주는세 호르무즈 통제권이죠 협상 생각보다 둘의 간극 쉽지 않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저는 호르무즈를 줄곧 경제 레버와 서사 도구로 읽어왔는데, 재침 억제 수단이라는 안보차원은 이번 글에서도, 이전 글에서도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설프게 합의해봤자 어기고 폭격하면 그만이라는 이란의 불신 구조는 협상 간극을 설명하는 데 실제로 중요한 변수였는데 빠뜨렸습니다.
다만 사우디 비교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사우디 힘은 호르무즈 통제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파는 석유에서 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통행세를 받는다고 중동 석유 패권이 넘어오지는 않아요. 통행세와 패권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재침 억제 각도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매크로를 보다보면 항상 걸리는게 시간축인 것 같습니다. 이벤트의 선후에 따라 바뀌는게 참 많은 것 같은데 요즘 사람들의 분석을 접할 때마다 시간축을 분석에서 무조건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체감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전쟁도 시간축이 빠지면 구조가 절반밖에 안 보이는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인사이트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란에 대한 내용 업데이트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 축을 이 일련의 사건에 대입해 놓고 보니 트럼프가 무대에서 퇴장한 이후까지도 염두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생각을 이어가는 연습을 덕분에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고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리즈 연재] 서사는 열렸다, 해협은 아직이다 : 이슬라마바드 전야](https://post-image.valley.town/JtawnrHRt_zR137uKyNF1.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