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네 편의 글을 썼습니다.
「Adobe의 펀더멘털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는 이유 · AI에 대한 사내 공지를 보고 든 생각 · 사람이 병목이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 집주인 아주머니랑 언성 높이다가 든 생각」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룬 독립된 인사이트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이 글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Palantir Technologies라는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긴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이 글에 관심이 가신다면, 분량이 꽤 있지만 앞서 올린 글들을 꼭 읽어보시길.. 안그러면 요상한 말들이 나올 것이에요..)
팔란티어라는 기업이 풀려는 문제를 저의 시선으로 설명하려면, 먼저 저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감각 — 일종의 기준 — 을 공유해야 했습니다. [해상도, 주파수, 앵커]라는 개념들은 제가 일하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렌즈입니다. 이 렌즈로 세상을 보기에 팔란티어라는 종목이 눈에 들어온 거고, 이 렌즈에 대한 설명 없이 "팔란티어가 이러저러해서 좋아 보인다"라고만 말하면 그건 결론만 던지는 것이지 설득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각 개념을 하나의 아티클로 풀어 소개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투자가 꼭 숫자와 결합해야만 의미를 갖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기업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렌즈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재무제표로 보는 렌즈, 멀티플로 보는 렌즈, 산업 구조로 보는 렌즈, 그리고 이 기업이 풀려는 문제의 본질로 보는 렌즈. 어떤 것들은 숫자로 설명이 잘 되고, 어떤 것들은 숫자로 환산하는 순간 왜곡됩니다. 팔란티어는 거의 모든 투자자가 알다시피 Forward P/E 100배 이상, P/S 80배 이상에 달하는 기업입니다. 기존의 숫자 렌즈로는 설명이 안 되는 지경이고, 그래서 대부분의 분석이 "비싸다"와 "그래도 성장이 빠르다" 사이에서 오갑니다. 이 기업을 숫자로 자꾸 환산하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팔란티어가 풀려는 문제의 깊이를 이해하려면 숫자가 아닌 다른 렌즈가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트리거, 목표주가, 시나리오별 밸류에이션을 요구하는 Valley Insights 대회의 포맷으로는 제가 바라보는 이 기업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Space에 아티클로 올려봅니다. (상금은 포기한다... 크흡... ㅜㅜ)
1. 찰리 멍거의 거꾸로 생각하기
모든 조직은 Problem Solving을 합니다.
기업은 시장에서 고객의 문제를 풀고, 군대는 전장에서 작전 과제를 풀고, 병원은 환자의 질병이라는 문제를 풀고, 대학은 연구 과제를 풀어내고, 비영리단체는 사회적 과제를 풀어냅니다. 하는 일의 형태는 저마다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모든 조직은 각자가 당면한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조직들은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를 찾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도입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컨설턴트를 부르고, AI를 얹습니다. "이 도구를 쓰면 이 문제가 풀린다"라는 마케팅 슬로건을 받아들이고, 도구를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하면 문제가 더 잘 풀릴 거라 기대합니다. 이 접근이 틀린 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문제가 더 좋은 도구로 해결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 방식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급자가 정의한 문제를, 공급자가 제안한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술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를 IR 자료나 기술 백서의 프레임대로 이해하게 되면, 그 해결책이 진짜로 수요자의 본질적 문제를 건드리는지를 놓칠 수 있습니다. 경제활동의 본질은 수요자에게 가치 있는 것을 공급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인데, 공급자의 시선에서만 생각하면 정작 '수요자가 풀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지, 왜 아직도 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지'를 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여기서 찰리 멍거의 사고법을 제안합니다.

Tell me where I'm going to die, so I'll never go there. - Charlie Munger
Inversion thinking — 거꾸로 사고법이라 불리는 이 접근은, 원하는 결과를 직접 추구하는 대신 최악의 결과를 먼저 정의하고 그것을 피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를 묻는 대신 "어떻게 하면 반드시 불행해질까?"를 먼저 묻고, 그 요인들을 하나씩 제거합니다.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오답을 제거하는 것.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지만 강력한 프레임입니다.
이 사고법을 팔란티어의 고객(수요자) — 즉 모든 형태의 조직 — 에게 적용해봤습니다. "팔란티어의 기술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고객들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고, 대체 왜 그 문제가 풀리지 않는 걸까"를 먼저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기반으로, 제 경험과 관점에 접근해 봤습니다.
저는 크리에이티브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조직의 프로젝트를 안팎에서 봐왔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기업의 구조가 만드는 의사결정의 결과를 몸소 겪어왔습니다. 이 두 가지 경험을 교차시키며 "조직의 문제가 왜 안 풀리는가(의사결정에 왜 병목이 발생하는가)"를 물었고, 그 과정에서 세 가지 구조적 원인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해상도: 같은 대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의 문제
주파수: 조직 위계가 만드는 정보의 왜곡 문제
앵커: 과거의 성공과 방식에 묶인 관성의 문제
이것들은 모두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변수입니다. 도구가 부족해서 안 풀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보는 방식, 사람이 소통하는 방식, 사람이 기대고 있는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2. 조직이라는 미로
이제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풀어냈던 세 가지 개념을 조직의 관점으로 확장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 1. 해상도 — 같은 대상, 다른 관점 ]
해상도 아티클에서 저는 "AI 사용을 유의합시다"라는 사내 공지 사항이 왜 허술한 말인지를 지적했습니다. '일'이라는 엄청나게 방대한 워크플로우를 단 한 마디로 축약해 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판단의 영역, 정보 수집의 영역, 구조화의 영역, 커뮤니케이션의 영역 — 각각에서 AI가 할 수 있는 일의 성격과 범위가 전혀 다른데, 그 차이를 전부 뭉개버리는 것. 이걸 두고 저는 '해상도가 낮다'고 표현했습니다.
조직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핵심은 단순히 "데이터가 흩어져 있다"라는 게 아닙니다. 각 부서가 같은 대상을 놓고도 자기 관점에서만 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케팅팀의 "캠페인 성과"와 재무팀의 "캠페인 비용"은 같은 대상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마케팅팀은 이 캠페인을 도달률과 인게이지먼트라는 눈금으로 봅니다. 재무팀은 집행 금액과 ROI라는 눈금으로 봅니다. 물류팀에서는 캠페인이 수요를 얼마나 끌어올렸는지를 재고 회전율로 봅니다. 각 부서는 자기 업무를 나름의 높은 해상도로 보고 있지만, 서로 다른 눈금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눈금은 그 부서의 워크플로우 안에서는 완전히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합리적인 눈금들이 부서 경계를 넘는 순간 서로 번역(맥락 공유)이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게 조직 최상단의 의사결정을 직접적으로 왜곡합니다.
CEO가 "이번 분기 마케팅 효율이 어땠나?"라고 물으면, 마케팅 임원은 자기 눈금으로 "역대 최고"라고 보고하고, CFO는 자기 눈금으로 "전 분기 대비 하락"이라고 보고합니다. 같은 캠페인을 두고 상반된 해석이 올라옵니다. CEO는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두 보고가 서로 다른 눈금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보고서는 자기 안에서는 논리적으로 완결되어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조직의 problem solving 자체가 느려집니다.
문제를 정의하는 데서부터 합의가 안 되니, 해결책에 도달하기까지 몇 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혹은 더 나쁜 경우, 문제의 정의 자체가 잘못된 채로 해결책이 실행됩니다. 진단이 틀리면 치료가 아무리 정교해도 소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 2. 주파수 — 위계가 만드는 어긋남 ]
주파수 아티클에서 저는 메시지에 무게, 빈도, 초점이라는 세 가지 변수가 있고, 이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 이 세 변수가 조직의 위계를 거칠 때마다 악순환의 방향으로 증폭된다는 것입니다.
정보가 한 계층을 지날 때마다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 그 계층의 입장에 맞게 재편집됩니다.
현장의 미묘한 맥락이 "보고 가능한 형태"로 압축되면서 원래 의도가 희석됩니다.둘째, 위로 올라갈수록 메시지가 무거워지고 빈도가 떨어집니다.
현장에서는 매일 감지되는 변화가, 두세 단계를 거치면 한 달에 한 번 올라가는 보고서의 한 줄이 됩니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오는 의사결정도 같은 과정을 역방향으로 거칩니다. 결과적으로 발신자의 의도와 수신자의 해석 사이에 구조적인 간극이 생기고, 조직 전체의 alignment가 깨집니다.(전설의 블라인드 글을 아시나요..?)

회사나 조직에서 이런 느낌.. 저만 느끼는 거 아니겠죠..?
Block의 최고 경영자 Jack Dorsey가 본질적인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지난달 Jack Dorsey와 Roelof Botha가 발행한 "From Hierarchy to Intelligence"(번역본) 아티클에서도 같은 문제를 진단합니다. 이들은 조직 위계의 역사를 2천 년 전 로마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위계 구조란 결국 정보를 라우팅하고, 의사결정을 사전 처리하고, 조직 전체의 alignment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라고 정의합니다. 로마군의 [8명 분대 → 80명 백인대 → 480명 대대 → 5,000명 군단]이라는 구조는, 한 사람이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범위가 3~8명이라는 인간의 한계 위에 세워진 설계였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가 프로이센 참모 체제, 미국 철도 회사의 조직도,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맥킨지의 매트릭스 조직을 거쳐 지금까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 주장입니다.

Dorsey와 Botha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AI를 기존 구조 위에 copilot으로 얹는 데 그치고 있다. 기존 구조를 약간 더 잘 돌아가게 만들 뿐,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저도 이 진단에 동의합니다. 현재의 위계 구조는 정보 흐름을 느리게 만들고, 사람이라는 변수가 각 계층에서 만드는 왜곡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