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처음 이 사실을 배웠을 때, 저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거대한 땅이, 사실은 거대한 항성 주변을 빠른 속도로 돌고 있다는 사실.
그러나 우리 반의 친구들 중 누구도 이 사실 앞에서 슬퍼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진실은, 이렇게 이상하리만큼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지구평평이들은 아닐 수도...?)
생각해보면 우주에는 나머지 모든 것들을 위해 회전하는 중심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지구는 지구의 궤도를 돌고, 화성은 화성의 궤도를 돕니다. 그것이 우주가 작동하는 원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원리 앞에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내 인생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막막함. 무언가 버려진 것 같은 야속함.
분명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세상은 나를 모르는 척하고, 내 노력은 어딘가로 흩어져버리는 것 같은 그 느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시기를 통과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저도 그랬구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두 종류의 무심함은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둘 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같은 사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쪽에는 우리가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다른 한쪽에는 응답을 기대하고 있다는 정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야속함의 정체는 세상의 무심함보다, 우리 안의 기대 쪽에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내 주변을 돌아주기를 바라는 무의식적 가정. 그것이 우리 안에서 야속함을 만드는 정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기대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우리가 비관에 머무느냐 평온으로 옮겨가느냐를 가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연한 계기로 스쿠버다이빙을 해본 적이 있는데요. (지금도 어쩌다 한번씩 하고 있습니다.)
장비를 메고 처음 바닷속으로 내려가던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익숙한 세계의 경계를 넘어가는 듯한 묘한 기분.
그런데 그게 단순히 바닷속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점점 내려가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평소의 세계와 거의 반대의 원리로 작동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호흡은 너무 당연한 default이고, 우리의 의식은 그 위에서 시각, 청각, 촉각으로 받아들이는 다른 자극들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바닷속에 들어가는 순간, 이 구조가 통째로 뒤집힙니다. 외부 자극은 모두 차단되고, 오로지 내 숨소리만 귓가에 가득 차게 됩니다. 한 번의 들숨과 날숨, 그리고 그 호흡 사이의 간격이 의식의 한가운데로 올라옵니다. 말하자면 당연했던 것이 자극이 되고, 자극이었던 것이 사라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역전은 호흡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중력을 거의 인지하지 않고 삽니다. 그러나 바닷속에서는 중성부력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합니다. 부력 조절 장치에 공기를 더 넣을지, 뺄지. 호흡의 리듬을 어떻게 맞춰서 미세하게 부력을 조정할지. 그 순간부터 중력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의식의 한가운데로 올라옵니다. 압력 평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소엔 존재하지도 않던 감각이, 깊이가 깊어질수록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이 됩니다.
호흡, 중력, 압력.
어느 하나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닌, 그러나 어느 하나만 어긋나도 내가 존재할 수 없는 원리들.
평소엔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다가, 그 원리들과 거리가 생기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것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비로소 유영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해저면으로 내려가면 수 많은 바닷속 생명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자기들끼리 유유히 움직이는 물고기 떼, 산호 사이를 지나가는 작은 생물들. 그들 앞에서 저는 늘 묘한 감각을 느낍니다. 이 세계의 진짜 거주민은 그들이고, 저는 다른 원리의 세계에서 잠시 방문한 이방인이라는 감각말이죠. 그리고 그것은, 나라는 존재를 외부에서 돌아보는 흔치 않은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는 나를 사랑할 이유였습니다. 내가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호흡, 중력, 압력,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원리들이 매 순간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라는 존재가 조금은 더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겸손해질 이유였습니다. 나를 지탱하는 그 원리들 중 어느 하나도, 내가 만들어낸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다만 그 원리들이 작동하는 자리에서, 나만의 작은 궤도를 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기애와 겸손이 어떻게 동시에 가능한지를, 저는 그제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세상이 요구하는 게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호흡과 중력처럼, 작은 것들이 자기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 그것들이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저에게 남은 깨달음이었습니다.
회사든 특정 직업이든 오래 잘 지속하는 사람, 한 사람과 오래 잘 만나는 사람, 취미나 관심사를 진득하게 이어가는 사람, 좋은 습관을 길게 유지하는 사람.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 영역이든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개인적으로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의지가 유달리 강해 보이지도 않고, 특별히 인내심이 뛰어나 보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의외로 담담합니다. 그럼에도 ...

와 정말 좋은글 감사합니다.
맨몸운동으로 시작해 어느덧 헬스 10년차가 되엇는데
생각해보면 '안하는것보단 낫겟지' '하고나면 뿌듯하니까, 개운하니까' 로 10년을 유지한것같습니다
뭔가 저도 시야가 넓어지는듯한 글이네요..

남겨주신 글처럼, 기대치를 관리하는 것이 균형잡힌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 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힘들었었는데, 당시에는 이 고통을 이겨내고자 '이 힘듬 뒤에는 달콤한 보상이 있을 거야.' 라는 식의 자기최면(?)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듬이 끝났을 때, 원하는 달콤한 보상이 없자 그 기대는 점점 커져갔고요. 그리고, 기대치가 그렸던 이상적인 미래 계획은 크게 틀어져 버렸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더 아프듯, 당시는 그 무력감에 목적성을 잃고 마음의 방황을 오랫동안 해온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조금씩 방황하고 있기는 합니다.)
기대치가 없다면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동기 또한 없어지고, 기대치가 높다면 다치고 마니, 글의 표현을 빌려 '중성부력'을 맞추려 노력하며 살아가야 되겠다 싶네요!

문득 제가 너무 기대가 높은 삶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살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됩니다. 행복을 위해 기대를 낮추라는 멍거의 말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다른 사람에게 조언만 해줄 뿐, 나 자신에게는 알고 있는 한 마디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한 거 같네요. 오늘은 저부터 사랑하는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너무 좋은 글을 읽고 한참을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퇴근해야하는데 말이죠.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책갈피에 넣어둬야겠어요.

너무 좋은 글이네요. 잘읽었습니다.
징징거리고 싶을때 종종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오늘 시원하게 부부싸움하고 이 글을 읽었는데 트루먼쇼인 줄 알았습니다 ㅠㅠ
지금 시기에 제게 가장 필요한 글이네요.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감사하라.
새벽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글 감사합니다.

진짜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는 밸리 통해서 이런 깊이 있는 글들을 읽을 수 있음에 참 감사합니다

글을 읽고 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네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구요 감사합니다!

여러가지 생각하게 되는 감동적인 글입니다. 삶을 보는 좋은 가치관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