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와 리스본행 야간열차
두 작품 모두 언어와 영원회귀를 다루고 있다.
'언어의 한계란 세계의 한계'임을 인식하고, 언어를 극복하며 상식과 시간의 틀을 넘으려 한다.
영화 컨택트에서는 '시제'라는 문법에 주목한다.
외계인들이 쓰는 언어에는 시제가 없다.
그들이 인식하는 세계에 시간이라는 차원은 존재하지 않기에, 자연스레 언어에 반영된 것이다.
그들은 영원을 사는 동시에 현재만을 살아가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그려진다.
인간이 외계인들과 달리 과거와 미래를 나눔은, 단지 우리의 문법에 시제가 포함되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시간 개념은 먼저 우리에게 인식되고 나서 언어로 편입되었다.
언어와 세계는 상호작용한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를 만나 팽창한다.
그렇지만 언어는 세계를 온전하게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개념이 한 번 인식된다면, 그 개념은 우리의 사고체계에 수감되어 단순노동의 감옥에서 빛을 잃어간다.
최근의 구멍과 엉덩이 논쟁이 떠오른다.
빨대의 구멍은 한 개인지 두 개인지, 엉덩이는 한 개인지 두 개인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양자역학을 운운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논쟁은 전혀 매력적이지 못했다.
단어의 정의에 관한 문제는,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사전에 등재된다면 거기서 끝이다.
빨대 구멍이라는 개념은 모호하게 떠올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정의가 약속되는 순간 빠르게 광채를 잃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언어라는 감옥은 이렇게 기능한다.
책에서 아마데우는 이러한 언어의 무위에 끝없이 번민한다.
이 말들은 소름이 끼치도록 낡았고 평범하며, 수백만 번 사용하여 닳고 닳은 것들이다. 이런 말에도 과연 의미가 있을까? 물론 말은 소통의 기능을 한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말이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 42pg
난 성서의 강력한 말씀을 읽고 싶다. 언어의 황폐함과 구호의 독재에 맞설, 그 시가 지닌 비현실적인 힘이 필요하니까. 이런 것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 232pg
이 책은 언어를 공격하지만 침묵을 감싸지도 않는다.
아마데우는 침묵하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로만 자기를 결정합니다. 아버지가 뭘 잃어버리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셨나요? - 386pg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항변한다.
깨어 있는 의식과 수많은 재능을 타고난 아들을 두었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할 수 있겠니? 무능해보이지 않으려면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아버지에게 일깨워준, 언변이 뛰어난 아들을? - 403pg
침묵은 결국 둘의 사이를 파멸적으로 갈라놓았다.
메르시어는 침묵을 선택하지 않는다. 232pg을 다시 보면,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와는 또 다른 어떠한 '시'를 갈망한다.
왜곡의 여지가 없는 시를.
책에서는 '체스'가 어느 정도 그런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조르주, 그레고리우스, 아마데우 등 주요 인물들은 체스를 통해 순수하게 대화한다.
어떠한 기보는 예술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어떠한 기보는 냉혈한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체스판 위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왜곡없이 한 수 한 수 나누며 뒤섞는다.
이렇게만 보면 낭만적이라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