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연장자'는 곧 '지혜롭고 현명함'을 뜻했다.
생애 주기동안
먼저 살아온 분들이 한 일은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이었고
곱게 늙어 죽는게 일상적이지 않은
인류 전반의 시간에
늙었다는건 살아남았다는 뜻이기에
연배가 높다는 것은 그 존재 자체로
유용하고 존경받을 일이다.
가령,
수렵도 힘든 채집 시기에는
어떤 버섯을 먹을 수 있는지,
어떤 버섯은 먹으면 안 되는지,
채집과 사냥을 함께 해야 할 때에
어느 산골에 범이 사는지,
어느 냇가에 뱀이 많은지,
목축을 할 때는 어디에서 풀을 뜯어야 하는지,
농경을 할 때는 언제 파종을 하고 무엇을 심어야 하는지,
먼저 해보고 지금까지 생존한 분들이 없다면
실로 무참한 재앙이 닥칠 일들을
죽을 고비 넘기며 호환, 마마, 기아와 천재지변을 이겨낸 분들의
삶의 지혜로 험난한 인생을 넘어온 것이 인류 역사일 것이다.
그래서 살아 남은 연장자는 '어른'으로 공경하며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그저 그래야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공경 받아 마땅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것일테다.
그러니 어른 이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 아니라
공경, 존경, 존중 받을 가치가 있어야 어른이고
어른은 존중 받는 만큼 어른으로써 사회에 이바지해야 할
가볍지만 막중한 의무가 있는 셈이다.
내가 이런 나만의 '어른론'에 대해서 생각한 것은
하루 이틀일이 아니다.
가장 처음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요즘에도 하는지 모르지만
야간 자율학습이 있던 나의 십대 시절에
야자를 마치고 집에 하교하는 시간은 보통
11시에서 12시 사이의 야밤이었다.
당시 대도시지만 그린벨트 지역에 살던 나의 하교길은
띄엄띄엄 켜져있는 가로등 불빛 사이마다
반짝반짝 별들이 보일 정도로 어두운 산길이었다.
그렇게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소에서도 30분은 걸어야 나오는
우리집으로 걸어갈때면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길에 서서 밤하늘에 별을 보곤 했었다.
아~~~~주 오랜 예전, 전기는 고사하고
입을 옷도 구하기 힘든 시절,
양치고 소 여물 먹이며 살던 어린 목동이 있었다면
키우는 가축들을 전부 우리로 불러들인 깜깜한 밤에
지켜볼 곳이라곤 하늘에 떠있는 무수히 많은 별빛 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잠도 오지 않는 밤에 별빛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었을까.
저기 빛나는 별들은 얼마나 많을까?
별들은 모래알만큼 작은데 해가지고 뜨는 달은 왜 저렇게 클까?
저 큰 달은 왜 날마다 커졌다가 작아질까?
그렇게 어린 목동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목동을 귀여워마지 않는 어른인 할아버지 뿐이셨을꺼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할아버지가 어릴 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하늘에 별이 된 사냥꾼 이야기,
해와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
은하수를 건너는 이야기들을 지금의 사랑스런 손주에게 해주며
하늘, 별과 달, 천둥과 번개에 대한 설명을 해줬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