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에서의 원칙? 칸트형이 알려준다!





원칙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는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름이지만 막상 그의 철학은 어렵기로 손에 꼽아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도 그럼..)
칸트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매일같이 산책을 하고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며 루틴을 지켰는데 이걸 40년을 했다.
그게 얼마나 강박적인지 주민들도 칸트를 보면서 시계를 맞추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원칙을 보다 보면 칸트를 떠올리는 이유는 이런 루틴 때문만은 아니고 칸트의 철학 자체도 원칙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부 다루기는 어려우니까, 적어도 우리가 투자에서 원칙을 수립할 때 칸트 형한테 배울 부분만 좀 발췌해서 보는 게 좋겠다.
시작이 아니라 칸트의 끝으로 가보자, 칸트 형의 묘비명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비로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이 그것이다

(칸트 센세의 묘비다)
후세에 자신을 표현할 묘비명에조차 법칙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에 자신의 법칙을 견줄 정도로 칸트는 본인의 원칙을 사랑했던 사람이였던 것..
그럼, 칸트는 이 중요한 원칙을 어떻게 만들까? 좀 어렵지만 쉽게 써보면..
칸트는 원칙을 만들기 전에 마음속의 경향성을 경계하는 거부터 시작했다. 경향성이라는 게 인간의 주관적인 관념을 개입시켜서 그런데
이런 경향성을 배제하면 온전한 자유로 법칙을 만드는 공간인 '예지계' 로 갈 수 있단다.
즉, 개인의 주관과 독립되어서 경험되지 않는 이념적 세계에서 완전히 객관적인 법칙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원칙들이 특수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이 법칙에 매달려도 문제가 터지지 않는 보편타당한 법칙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투자를 하면서 거장들, 혹은 개인 투자자들이 만들어놓은 원칙들은 과연 '보편타당'할까?
우리는 마냥마냥 잘된 사람들의 의견을 뭔지도 모르고 흡수하면서 불안한 내면을 달래는 출구로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오늘 이 부분에 대해서 따져보고 싶다. 우리의 투자 원칙이 과연 보편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우선 칸트가 경향성을 배제하고 원칙을 만들었지만,우리는 경향성으로 시작한다.
왜? 투자 원칙은 보통 실패로부터 배운 것을 명문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칸트가 선험적인 영역인 예지계에서 법칙을 만들었던 것과 다르게 우리는 현실계와 복잡계인 주식 시장에서 만든다.
경향성으로 시작하고, 현실계에서 만들어진 원칙이 보편타당할리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잘 들어맞는 원칙이 누군가 경향에는 안맞기도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성공 노트를 보고 나도 성공할 수는 없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며 동시에 그 사람이 겪은 세계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즉, 그들의 원칙은 사실상 특수성을 가진다.
이게 뭔 말이냐..
첫번째로 그들에게는 분명히 알파가 있는 전략이였어도 나에게 그게 효능이 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두번째로 알파가 있더라도 세상은 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