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 Escher - Encounter)
김혜순, 윤동주, 박준의 시 세계를 넘나들며 7주에 걸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분간 사랑에 관해서는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을 듯하다. (아마?)
그동안의 글에 귀 기울여 준 독자라면, 내가 다룬 '사랑'이 단순히 연인 간의 감정이라는 미시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 이성 중심의 '통일성'에 대한 비판과 그로부터 파생된 전쟁, 사회문화라는 거시적 차원까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조명해 보았음을 알 것이다.
내가 해석한 시편들을 통해, 비통일성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시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려 했는지 그 노력이 전해졌기를 바란다.
앞으로 사랑이라는 주제가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시선을 돌려 한층 폭넓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당분간 몇 주에 걸쳐서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탐구해 보자.
게이치로 : 나란 무엇인가?
오늘은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던진 흥미로운 통찰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예전에 그의 소설 <한 남자>를 무척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주제가 재밌어서 그런데 스토리를 우선 설명해야겠다.
소설 속 '리에'라는 인물은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는데, 장례식장에서 남편의 이름과 과거가 모두 거짓이었다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 리에는 변호사 '키도'에게 남편의 진짜 정체를 의뢰하고,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남편이 사실은 살인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품은 이 서사를 통해 오늘의 주제가 되는 질문을 던진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물음에 매료되어 나는 그의 산문집 <나란 무엇인가>를 연이어 펼쳤고, 그곳에서 저자의 더 구체적인 사유를 엿볼 수 있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나 개인이 아니라 분인이다. 그러니까 언어적으로 접근해 보면 개인(個人)은 '낱 개'를 쓰고 분인(分人)은 '나눌 분'을 쓴다. 전통적으로 사람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였다. 낱 개를 쓰기 때문에 사람 한 명, 한 명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게이치로는 사람을 '분인'이라면서 나눌 수 있다고 봤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마다 그 사람 앞에서만 발현되는 '패턴'이 존재한다. 가령 군대에서 시작된 관계라면 사회에서 행동과 습관에서 계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튀어나오고, 의사와 환자로 시작된 관계라면 행동과 습관에서 돌봄과 돌봐짐의 커뮤니케이션이 튀어나오는 법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들 앞에서의 나,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 강의실에서 수업에 집중하는 나. 우리는 상황과 대상에 맞춰 각기 다른 행동과 습관을 꺼내 입는다. 그리고 이 다양한 패턴, 즉 '분인'들의 총합이 비로소 '나'라는 존재를 완성한다.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숙제를 하지 않아 불같이 화를 내시던 어머니가, 선생님의 전화 한 통에 언제 그랬냐는 듯 "네, 선생님" 하며 한없이 상냥해지는 순간 말이다. 만약 인간이 단일한 '개인'이라면 어머니의 이런 태도는 모순이자 가식일 뿐이다. 하지만 게이치로의 시각에서 이는 모순이 아니다. 그저 '어머니'가 아닌 '학부모'로서의 정체성, 즉 새로운 분인이 발현된 것일 뿐이다. 한 사람 안에 존재하지만 인격적으로 분리된 이 패턴들, 그렇기에 개인은 곧 분인이다.
게이치로의 대부분의 소설이 이런 '분인주의' 사고 위에서 이뤄진다. 위에서 언급했던 <한 남자> 라는 책도 결국에 살인자인 남편의 과거와 자상하고 사랑을 베풀던 남친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냐, 그러니까 이 두가지 인격을 한 사람이 품을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한 의문으로 끝난다.
이것을 통찰하면 많은 것이 이해가 된다. '정'이란, 그리고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친구나 연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다. 어쩌면 우리는 상대방 자체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 앞에서 발현되는 특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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