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 9. 무의미한 삶과 자살 (알베르 카뮈)





(Édouard Manet - 자살)
최근에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책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로 읽힐 수도 있지만, 동시에 'survive(생존하다)'와 'live(살아가다)'의 차이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어 번역이 이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껴서, 영어 어원에 집중해 보면 그 차이가 더 선명해질지도 모르겠다.
'survive'는 라틴어 'supervivere'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원을 쪼개 보면 'super-(넘어서)'와 'vivere(살다)'가 합쳐진 형태이니, '죽음의 고비를 넘기다' 정도로 이해하면 어떨까? 실제로 <쇼미더머니> 같은 경쟁 프로그램이 'survival program'이지 'live program'이라 불리지 않으니 맞는 말일 것이다.
'live'의 기원은 더 복잡한데, 인도유럽조어의 뿌리인 'leip'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흥미롭게도 이 어근은 '살다'라는 뜻 이전에 '남겨지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었다. 제미나이에게 직관적인 설명을 요청해 보니, 'live'와 'leave(남기다)'가 어원적으로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survive'와 'live'의 차이는 분명해진다. 'survive'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길 요구하는 역동적인 '동사'라면, 'live'는 존재 그 자체로 머무르는 '형용사'적 상태에 가깝다는 점이다.
내가 이 미묘한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것이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남자 주인공인 시몽이 여자 주인공 폴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그 대신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시몽이 보기에 폴은 고독한 사람이다. 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의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다.
이 책은 1959년 프랑스에서 쓰인 작품이지만 2026년 한국을 정확하게 관통한다. 자주 언급되듯이 현대인들은 고독하다. 사강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사랑을 지나치고 행복을 소홀히 했기에 고독이라는 벌을 받은 것이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사랑과 행복 대신 핑계와 편법, 그리고 체념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대학교만 가면", "취직만 하면", "집만 사면", "결혼만 하면", "아이만 낳으면" 같은 핑계와 체념이 우리의 행복과 사랑을 자꾸만 뒤로 미루게 만든다.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survive' 하며 나이에 맞는 허들을 뛰어넘는 과정일 뿐, 제자리에 머물러 자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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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의 첫 문장을 읽었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현재는 제 철학의 일부로 삶의 이유가 되었습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 편 기대되요

???: 로맨스는 제육덮밥이구나!

역시 나는 시민이야 큭큭

삶이 무의미해도 자살을 하지 않는 이유라.. 다음 편이 궁금해지네요.
이 글 덕분에 새로운 질문이 생겼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지프 신화의 문장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먹었죠. 책 내용의 난이도로 인해서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점차 살아가면서 첫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제가 아는 철학자 중에 가장 제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현대 사회에서의 삶을 지내면서 극도로 공허를 느낀시점에 해당 철학을 알게 되었습니다.

으악 뒷편!!

삭제된 댓글입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불교의 공(空)이 생각나네요. 오랜 시간 인간이 고민해왔던 철학적 사유들은 다 연결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공' 도 얼핏 들으면 인간은 죽고 인간의 삶은 의미가 없다는 것인데, 거기서 이어지는 진정한 '공'이라는 것은 고정된 본질과 집착이 없다는 통찰입니다.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정해진 의미에 얽매일 필요도 없기에
그 순간 남는 것은 강요된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삶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자유가 시작됩니다. 그러기에 공을 실천하는 것은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마땅히 어떤 것에도 머무르지 말고, 그 마음을 일으켜라) 더 열심히 삶을 살아내되 집착하지 않는 그런 모습입니다.
결국 카뮈가 말한 부조리 인식 이후의 자유,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스스로 삶을 밀어 올리는 열정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카뮈 작품을 '페스토'만 읽었는데 '시지프 신화' 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오~ 그런거 같네요. 아마 카뮈가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니체가 불교와 흡사한 부분이 있으니 더 그런 것 같아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저도 생각이 많아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비관이 아닌 목적 부여 과정을 그려보는 알베르 까뮈의 사고를 따라가보았습니다. tolo님 오늘도 이런 좋은 글 올려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이방인 재밌게 읽었는데 알베르 카뮈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