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 9. 무의미한 삶과 자살 (알베르 카뮈)

[시리즈 연재] 9. 무의미한 삶과 자살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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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o
2026.03.02조회수 2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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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douard Manet - 자살)


최근에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책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로 읽힐 수도 있지만, 동시에 'survive(생존하다)'와 'live(살아가다)'의 차이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어 번역이 이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껴서, 영어 어원에 집중해 보면 그 차이가 더 선명해질지도 모르겠다.


'survive'는 라틴어 'supervivere'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원을 쪼개 보면 'super-(넘어서)'와 'vivere(살다)'가 합쳐진 형태이니, '죽음의 고비를 넘기다' 정도로 이해하면 어떨까? 실제로 <쇼미더머니> 같은 경쟁 프로그램이 'survival program'이지 'live program'이라 불리지 않으니 맞는 말일 것이다.


'live'의 기원은 더 복잡한데, 인도유럽조어의 뿌리인 'leip'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흥미롭게도 이 어근은 '살다'라는 뜻 이전에 '남겨지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었다. 제미나이에게 직관적인 설명을 요청해 보니, 'live'와 'leave(남기다)'가 어원적으로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survive'와 'live'의 차이는 분명해진다. 'survive'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길 요구하는 역동적인 '동사'라면, 'live'는 존재 그 자체로 머무르는 '형용사'적 상태에 가깝다는 점이다.


내가 이 미묘한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것이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남자 주인공인 시몽이 여자 주인공 폴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그 대신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시몽이 보기에 폴은 고독한 사람이다. 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의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다.


이 책은 1959년 프랑스에서 쓰인 작품이지만 2026년 한국을 정확하게 관통한다. 자주 언급되듯이 현대인들은 고독하다. 사강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사랑을 지나치고 행복을 소홀히 했기에 고독이라는 벌을 받은 것이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사랑과 행복 대신 핑계와 편법, 그리고 체념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대학교만 가면", "취직만 하면", "집만 사면", "결혼만 하면", "아이만 낳으면" 같은 핑계와 체념이 우리의 행복과 사랑을 자꾸만 뒤로 미루게 만든다.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survive' 하며 나이에 맞는 허들을 뛰어넘는 과정일 뿐, 제자리에 머물러 자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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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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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그렇다는 걸 나는 몰랐다. 나는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지만 어쩌자고 이런 것까지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