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m Hunter - Death of Coltelli)
시지프 신화
누구나 철학 책을 읽으며 작가가 나를 멍청하다고 놀리는 기분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사람들은 책을 너무 어렵게 쓴다. 이건 독자들의 오래된 불평거리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나도 고민해 보면 하이데거, 후설, 데리다 등등의 책을 읽으면서 쌍욕을 했었던 기억이 있지만, 동시에 이런 책들은 즐겁다.
비유하자면 등산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난이도가 있어야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고, 오랜 명소로 남는 것처럼 어쩌면 어렵게 쓴 철학 책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어떨까. 《시지프 신화》는 몰라도 《이방인》은 많은 사람이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문학전집으로 유명한 민음사에서 판매율 1, 2위를 다투고 있는 베스트셀러이고, 특히 표지에 박혀 있는 카뮈의 얼굴이라든지, 책의 시작부터 나오는 건조한 문체의 도입부가 이 책을 구매하게 만든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 이방인 13p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하건대 베스트셀러 《이방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 책 독자의 5%를 넘지 않을 것이다. 《이방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지프 신화》를 이해해야 한다.
이건 내 개인적인 주장은 아니다. 카뮈는 실제로 《시지프 신화》를 1939년 9월부터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집필하기 이전 7월에 크리스티안 갈랭도에게 편지를 보내며 이것은 '부조리 사이클'이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부조리 사이클에 있는 《시지프 신화》(철학 에세이), 《이방인》(소설), 《칼리굴라》(희곡) 이 세 가지 저작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클로서 서로 보완하고 보충하는 것이라, 《이방인》만 읽는다면 이 책을 이해하기보다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쉽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출판하는 과정에서 《시지프 신화》의 원고를 미리 봤던 '말로'가 카뮈에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시지프 신화》와 《이방인》의 친화 관계에 대해, 에세이인 《시지프 신화》가 소설인 《이방인》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면서 출판사에 세 가지 책이 모두 출판되도록 압박을 넣은 만큼 카뮈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지프 신화》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책을 직접 읽으면 좋겠지만 사실 《시지프 신화》의 난이도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라서 이 책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특히 입문자들은 더욱 그렇다. 그러니 내 목표는 카뮈와 입문자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어떤 모양의 다리를 놓을까? 독일어 동사 중에 auffressen이라는 단어가 있다. 직역하면 '먹다' 정도인데 단어의 아우라를 조금 더 살려보기 위해 어원을 조금 보면 이 단어는 'auf-'와 'fressen'이 결합된 형태다. 'auf-'가 '완전히'라는 뜻이고, 'fressen'은 '게걸스럽게 먹다'라는 뜻이니 '완전히 처먹다' 정도다.
나는 이 단어가 체리피킹(cherry picking)의 완전한 반대말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내가 할 일은 카뮈가 나열한 개념들을 요약하는 일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카뮈를 칭찬하겠지만 그의 사생활을 보기도 할 것이고 그의 책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모순과 비약도 볼 것이다. 말하자면 말 그대로 "완전히 먹어 치울 것"이다.
시지프 신화가 어려운 이유
먼저 카뮈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할 것 같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분명히 좋은 책이지만 논리적으로 무결한 철학 책은 아니다. 이건 단순히 젊은 스물아홉 살 청년이 쓴 에세이(시도)일 뿐이다. 카뮈는 본인 스스로가 철학자가 아니라고도 이야기하며, 독일 학계에서 그를 철학자로 분류하지 않는 경우들도 많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다. 나는 어떤 체계를 믿을 만큼 충분히 이성을 믿지 않는다. 나의 관심사는 모럴이다. - <출판 직후 인터뷰에서>
이 문장에서 이 책이 어려운 이유를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카뮈 사상의 핵심인 '부조리'는 이성으로 환원되는 어떤 '개념'이 아니라 '감정'이기 때문이다.
'기쁨'이란 무엇인가를 아이에게 설명하려면 기뻤던 순간들에 느꼈던 감정들을 열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카뮈는 책에서 '부조리의 감정'을 열거하기 때문에 글이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느껴진다. 이게 이 책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로 이 책은 많은 철학자를 동원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어렵다.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니체 등 많은 철학자의 개념을 인용하고 '이건 다 알지?' 하며 합의하고 넘어가는 뉘앙스라서, 인용된 학자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초심자들에게 이 책은 불친절할 것이다. 그리고 카뮈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다음의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금세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을 우리 눈으로 목도할 수 있는 어떤 부조리의 감성일 뿐,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시대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그 어떤 부조리의 철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선 이 책이 우리 시대의 몇몇 탁월한 사상가들에게 빚지고 있는 바를 지적해두는 것은 기본적인 정직함에 속한다.
- <시지프 신화> 13p
그러니 내가 다리를 놓을 곳은 두 군데이다.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것에 대한 논리적 주석
불친절하게 인용된 철학자들에 대한 부연 설명
부조리 철학
카뮈의 철학을 한 줄로 요약하면 '부조리 철학'이겠다. 카뮈 본인도 《시지프 신화》의 시작을 '부조리'로 삼았고, 《시지프 신화》의 원래 제목은 '부조리'였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부조리가 결론으로 간주 되어 왔지만 이 논고에서는 그것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을 지적해 두는 것이 좋겠다. - <시지프 신화> 13P
부조리가 뭘까? 한국에서 '부조리'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군대의 부조리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부조리를 라틴어로 재번역하면 'absurdus'가 되는데, 이것은 '불협'이라는 단어로 많이 사용된다.
부조리를 한자어 그대로 보더라도 '不(아닐 부)'를 앞에 쓰고 '條(가지 조)'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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