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다로스의 시와 아킬레우스 이야기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어보면 처음에 짧은 시 한 구절이 소개된다.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갈망하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 핀다로스, <아폴로 기념 경기 우승자에게 바치는 축가 3>
핀다로스는 고대 그리스 시인으로 기원전 사람인데도 그가 읊었던 시가 현대까지 전승되어 카뮈에게도 인용되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심지어 내용적인 측면에서 카뮈가 하는 이야기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는 점이 기원전부터 인간의 '필멸'이 전 세대를 거쳐서 논의되었던 것을 보여 준다.
언젠가 플라톤의 <향연>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던 것 같다. 사랑이란 '좋은 것이 늘 자신에게 있는 것에 대한 것'이라는 것, 이 문장을 조금 틀어서 바라보면 인간이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면 이 문장은 명령처럼 작용해서 우리들의 행동을 자극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 우리에게 '좋은 것' 가령, '붉은 비단' 따위가 없다고 해 보자. 우리는 '사랑'이라는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 붉은 비단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마침내 얻는다면 사랑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사랑한다. 건강이 없는 사람이 건강을 사랑하고,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 지혜를 사랑한다.
사랑이 결핍의 충족을 명령한다면 인간의 가장 거대한 결핍인 필멸이라는 운명은 그 반대인 불멸의 형식으로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반드시 죽는 필멸자이니 어떤 형식으로든 모든 인간은 '불멸'을 꿈꾼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아이를 낳는 것은 우리 유전자의 불멸을 위해서고, 거대한 역사의 기록들은 사색의 불멸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문학의 시초라고 평가되는 <일리아스> 서사시의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선택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내용을 짧게 설명하겠다. <일리아스>는 헬레네라는 인물을 두고 일어난 그리스와 트로이의 거대한 전쟁인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다. 여기 그리스의 최고 전력이자 전쟁 영웅인 아킬레우스는 한 고민에 빠진다. 바로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로부터 들은 두 가지 운명의 갈림길이 그의 고민거리였다.
예언은 단순했다. 전쟁에 참여하면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될 것이지만 결국에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것.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짧고 굵게 살 것인가, 가늘고 길게 살 것인가의 두 가지 갈림길이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이다. 영웅이라면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처음에 아킬레우스의 선택은 후자로 기울었다.
총사령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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