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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연재] 19. 조심과 부모된 마음 (브레히트)
life and market[2026 시리즈 연재]

[시리즈 연재] 19. 조심과 부모된 마음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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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o
2026.05.10조회수 2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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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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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그렇다는 걸 나는 몰랐다. 나는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지만 어쩌자고 이런 것까지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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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명심(銘心)'이라는 한자어가 있다. 앞글자인 '명(銘)'은 쇠 금(金)과 이름 명(名)이 합쳐진 글자이고, 뒷글자는 마음 심(心)이다. 그러니 명심이라는 단어는 마음이라는 쇳덩어리에 어떠한 이름을 파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기에 마음을 긁어가며 영구적으로 남기려는 것인가. 그 마음은 절대 쉽지 않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는 제목부터 이런 '명심'의 다짐을 가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읽어야 할 것이라니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시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시를 읽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해주고, 그렇기 때문에 빗방울에 맞아 죽을까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 사람이 보인다. 문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리 읽힐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시의 장점으로 이 시는 시대에 따라서 여러 방향으로 읽혀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민주화 시기에는 '내가 추구하는 자유라는 가치와 사랑하는 동지들'이었고 민주화라는 공적, 사회적 담론을 다루던 시대를 넘어서 사적 영역이 강조되던 시대에는 '내가 사랑하는 연인'으로 읽히는 강렬한 연애시였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아무리 바보여도,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가 나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법이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시를 잘못 읽고 있었다. (그렇게 읽어도 아름답지만) 이 시의 첫 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이라는 넓은 범위의 표현 때문에, 동지나 애인 등 여러 독법으로 해석됐지만 독일어 원문을 보면 'Der, den ich liebe'라고 써 있다. 김남주 시인은 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번역했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더 맞는 표현이다.


그렇기에 '인간'으로 읽는다면 넓게 읽히던 공간들이 '남자'라는 공간으로 다소 좁아지게 되어 좀 더 정확한 해석의 공간이 열리게 됐다. (아쉽긴 하다만, 이 편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시를 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남자가 남자에게 사랑함을 밝히는 동성애인가? 이 시의 배경을 알면 이 시를 다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브레히트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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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출처: 한나 아렌트 정치·인문학 센터)


브레히트는 다소 어리숙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여성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다. 그는 기혼 시절에도 여러 여성을 동시에 유혹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오랜 세월 동안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생활, 특히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글이 쓰여졌다. 그중에서 브레히트의 연인 중 일부가 그의 집필을 도왔지만, 브레히트가 그들의 공로를 밝히지 않고 본인이 모든 공을 가져갔다는 것은 그가 비판받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그렇다면 브레히트를 대신해서 그의 집필을 도왔던 여성들은 '이기적인 남성 문인에게 재능을 착취당한 여성'이었을까? 나의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연인의 재능을 착취하긴 했지만, 적어도 앞으로 소개할 그의 연인인 '루트 베를라우'는 그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본인의 생의 부정성까지 남김없이 다 마셔 그를 열렬히 사랑했으므로 오히려 그의 편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녀를 이기적인 남성 문인에게 재능을 착취당한 여성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녀가 원하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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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장은 그녀가 낸 본인의 회고록 <브레히트의 연인>에서 확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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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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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창이
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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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되는 말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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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
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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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로잉
2026.05.11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