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빈 워시(Kevin Warsh)라는 이름은 금융계에서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중은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이죠. 당연히 우리도 모릅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자를 내민 것은 꽤 교묘한 카드로 보입니다. 아니, 카드가 아니라 방패죠. 트럼프가 연준 독립성을 흔들며 저금리 정책을 밀어붙이려 할 때, 시장이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방패.
유년기
저는 출생, 출신부터 사람의 바이오그래피를 쌓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간략하게 보겠습니다.

그의 출생지는 올버니입니다. 올버니는 그 뉴욕시가 위치한 뉴욕의 주도로 한국으로 치면 과천에 댈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거대한 상업수도 근처의 행정적 기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도시죠. 케빈 워시의 아버지 로버트 워시는 변호사였습니다. 그것도 지역 올버니 정치에 영향력이 있는, 그런 변호사였습니다. 워렌 버핏과 비슷한 방식의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워시의 성품을 판단하기에 중요한 근거로 보입니다.
하지만 케빈은 단순히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조용한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그는 지역 최고의 테니스 선수였다고 합니다. 테니스 취미 역시도 꽤나 사람을 표현하는 스포츠인데요. 우선 미국의 3대 스포츠인 단체 스포츠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냥 부유한 자들의 전유물인 골프와 같은 정적인 (골프 좋아시는 분들 죄송합니다) 스포츠도 아니죠. 미국에서는 스포츠를 하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라지만 이는 그가 유년기부터 일반적으로 꽤나 엘리트 교육을 받았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면서도 버핏과 비슷한 방식의 엘리트 정치-금융 기반이 있음에도 운동을 잘했다는 것은 확실히 다른 점이 있네요. 시장이 보는 그의 젊고 활동적이면서도 원칙적인 그런 고고한 모습을 참 잘 담아내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테니스만 잘하는게 아니라 공부도 당연히 잘했습니다. 여기서 그의 첫번째 선택이 드러나는데요, 워시는 성적이 좋으니 일반적으로 동부 엘리트의 전형적인 코스를 밟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서쪽을 택했습니다. 그는 스탠퍼드로 향한 것입니다. 미국의 서부는 동부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동부가 금융이고 행정이라면, 서부는 테크와 혁신을 상징하죠.
서부행
1988년, 케빈 워시는 스탠퍼드에 들어갑니다. 전공은 공공정책학. 그리고 타이밍이 절묘했습니다. 바로 그 시기, 실리콘밸리가 태동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가 스탠퍼드에서 공부하던 1990년대 초반은 인터넷이 막 상용화되던 시절입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차고에서 시작한 스타트업들이 막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이 시기의 경험이 훗날 그가 'AI 생산성 혁명'을 지지하는 이론적 토대가 된 듯합니다. 이 당시를 이끌던 실리콘 밸리의 테크는 그야말로 눈부셨거든요. 빌게이츠가 이 시절을 이끌던 거목이죠.
워시는 스탠퍼드를 졸업한 후, 그는 다시 동부로 향했습니다. 이번엔 하버드 로스쿨로 말입니다. 하버드 로스쿨은 명실공히 서울대 법대 포지션의 미국 최고의 법대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금 연준의장인 제롬 파월도 변호사 출신, 즉 로스쿨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워시와는 로스쿨 이외의 경력이 크게 갈리는데요, 보시죠.
엘리트코스와 엘리트결혼
1995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케빈 워시는 모건스탠리에 입사했습니다. M&A 부서였습니다. 파월이 로스쿨 이후 미 연방 재무부 공무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