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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귀금속에서 산업재로
은은 물리학적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금속입니다. 지구상 모든 금속 중 전기전도율과 열전도율이 가장 높고, 산화되어도 전도성을 잃지 않으며, 미세한 접점에서도 신호 손실을 최소화합니다. 구리의 전도율을 97로 보면 은은 100입니다. 과거에는 이 3의 차이가 무시되었습니다. 그러나 1나노초의 지연과 1와트의 발열이 수백억 원의 비용으로 환산되는 AI 데이터센터 시대에는, 이 3의 차이가 설계의 출발점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대형 AI 데이터센터 하나에는 수만 개의 서버가 들어가고, 각 서버에는 수십 개의 접점과 커넥터가 있습니다. 이 접점 하나하나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저항과 발열이 누적되면, 전체 시스템의 전력 효율과 냉각 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의 상당 부분을 냉각에 쓴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접점 재료 하나의 선택이 수조 원 규모의 경제성 문제가 됩니다. 구리로도 되는 일을 굳이 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은이어야만 허용 범위 안에 들어오는 영역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산화 후에도 전도성을 유지한다는 특성은 더욱 결정적입니다. 구리는 산화되면 절연체로 변합니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녹슬면 구리는 전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지구 궤도 위의 위성을, 심해의 케이블을, 전장의 유도미사일을 수리하러 갈 방법은 없습니다. 한 번 설치하면 수십 년을 버텨야 하는 극한 환경에서 엔지니어들이 비싼 은을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5G 기지국이 영하 40도의 산악 지형에서도, 섭씨 50도의 사막 한가운데서도 끊김 없이 작동해야 한다는 요구는 결국 접점 재료로서 은의 선택을 사실상 강제합니다. 심지어 탄소 나노튜브처럼 은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받던 신소재들조차 결국 저항을 줄이기 위해 은을 섞어 써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은이 초전도체는 아니지만, 현존하는 소재 중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은의 입지는 당분간 흔들리지 않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2025년 핵심광물 목록에 은을 새로 포함시킨 것은 이 흐름의 공식적인 선언입니다. 귀금속 국가 안보 문서에 올라가는 산업재가 된 것입니다.
희토류라는 선례: 매장량보다 중요한 것

이쯤에서 잠깐 희토류 이야기를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은의 미래를 이해하는 데 희토류만큼 좋은 참고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희토류 매장량은 중국이 36.7%, 브라질이 18.3%, 러시아가 15%를 차지합니다. 절대적인 독점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전 세계 희토류 공급량의 91%는 중국에서 나옵니다. 매장량의 우위가 아니라 정련과 생산의 우위 덕분입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정련 기술만 확보하면 누구든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중국 밖에도 캘 곳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중국 희토류 정제 공장 [출처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5/24/1d690486-242b-492b-ad22-614947db5ef7.jpg)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환경만 해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