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윅, 예측에 대한 예측

존 윅, 예측에 대한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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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man
2026.04.29조회수 839회

1조 5천억짜리 B급 영화

만약 스턴트하던 정두홍이 감독이 되어 메가폰을 잡고, 한물간 안성기가 주연이며, 시놉시스는 이런 영화가 있다고 해보죠.

"전직 탑 킬러가 깡패에게 기르던 강아지를 잃자 뛰어나와 사람 수십 명을 죽인다."

아마 이 텍스트로 영화 투자를 받는다는게 상상이 안가실겁니다. 클레멘타인이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기대하는 진성 컬트 팬이 아닌 이상, 이 영화는 유튜브 쇼츠로 조리돌림 당할 운명이 명백해 보입니다. 개 복수로 수십 수백명을 죽이는 영화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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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짐작하셨겠지만, 이 영화가 바로 존 윅입니다. 시나리오를 받아본 감독들 대부분이 "동기가 너무 약하니 가족까지 죽여서 감정선을 강화하자"고 합니다. 지금이야 그 '개'가 핵심인 것을 모두가 압니다. 아마 존윅의 아내나 부모가 죽는 시작이었다면 더 평범한 영화가 되었겠지요.

존 윅은 촬영 막바지에 투자자가 빠져 24시간 안에 통째로 엎어질 위기에 처했던 영화였습니다. 이런 스토리를 읽고, 구성을 보면 도망가고 싶은 욕구가 드는게 당연했습니다. 이 위기에서 영화를 살린 것은 평론가의 안목도, 거대 스튜디오의 결단도 아니었습니다. 위기의 주부들의 폭발적 흥행으로 갑자기 현금이 두둑해진 한 중견 여배우가, 자기 에이전트의 "돈 있으면 여기 한번 넣어보세요" 한 마디에 600만 달러를 그냥 생각없이 꽂아 넣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죠. 물론 지금은 그 여배우 이브 롱고리아가 운이 좋은 사람이 되었지만요.

키아누 본인은 출연료를 깎고 지분을 챙겼습니다. 자기가 주연인 영화의 흥행에 사실상 몸으로 베팅을 한 셈입니다. 라이온스게이트는 아무도 사가지 않던 배급권을 개봉 두 달 전에야 사들였습니다. 이것도 베팅이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돈을 어딘가에 걸었지만, 누구도 자신 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못해 걸었죠.

1편 개봉 직전, 업계의 평가는 깔끔하게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비디오방 직행 예정인 테이큰 짝퉁 영화." 2편이 결정됐을 때는 왜 이걸 살리냐는 의심이 우세했고, 3편 이후부터는 "이젠 뇌절이 시작될 차례"라는 예측이 영화 매체의 단골 표제가 됐습니다. 합리적 예측이었습니다. 매번. 그리고 매번 틀렸습니다.

4편까지 누적 흥행 약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5천억. 그것도 매 편마다 전작을 거의 두 배씩 넘기는 계단식 상승. 마블도 해보지 못한 4편 연속 계단식 상승을, 한물간 배우의 강아지 복수극이 해냈습니다. 4편의 로튼 토마토 점수는 시리즈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보통 4편 정도 만들면 트랜스포머든, 어벤저스든, 그만좀 하라는 얘기를 듣는데 4편이 가장 후한 평을 받는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영화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폐급에서 액션의 대들보로

그래서, 존 윅이 대체 어떤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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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의 줄거리는 정말로 한 줄로 끝납니다.

전설의 암살자였다가 은퇴해 평범하게 살던 존 윅. 죽은 아내가 마지막 선물로 보낸 강아지 한 마리를 러시아 갱단의 망나니 아들이 죽이고 차를 훔쳐 갑니다. 그래서 존 윅이 다시 총을 듭니다. 그리고 세상이 그를 다시는 놔주지 않습니다.

이게 네 편의 시나리오의 거의 끝입니다. 줄거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역사상 최고의 액션 영화 100선" 같은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 됐고, 후속작 네 편이 매번 전작을 뛰어넘으며 시리즈 최고 평가를 4편에서 받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평론가들의 평가도 어느 순간 극적으로 반전됐습니다. "강아지로 시작해 신화로 끝나는 영화."

매너리즘이라는 쓰레기통 속에서 피어난 연꽃

존 윅의 성취를 이해하려면, 그 영화가 등장한 시점의 장르 풍경을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액션 장르는 매너리즘에 쩔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문제의 출발점은 2002년 폴 그린그래스의 본 아이덴티티였습니다. 그가 도입한 이른바 셰이키캠(shaky-cam) 기법 — 카메라를 손에 들고 흔들어가며 찍는 그 격렬한 촬영 방식 — 은 처음엔 진짜 혁신이었습니다. 카메라가 흔들리면 관객이 캐릭터의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거든요. 본 시리즈가 그 시점에 액션 장르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시점에는 천재적인 발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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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에서 사용된 셰이키 캠 기법. 카메라를 흔들기 위해 아래에 전동 드릴(...)이 달려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모두가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대 중반에 이르면 액션 영화는 너 나 할 것 없이 카메라를 흔들고, CGI 폭발을 더하고, 컷을 1초에 다섯 번씩 갈아치우는 영화가 됐습니다. 액션배우보다 카메라를 더 흔들어대기 시작하자 그 뒤에 나온 영화들, 굿 데이 투 다이 하드는 그냥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힘든 영화의 대명사가 됐고,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화면이 그저 진동하는 색 덩어리처럼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본 시리즈가 혁신으로 만든 그 자리에, 본 시리즈의 흉내쟁이들이 우글우글 들어차서 다시 천편일률의 늪을 만든 셈입니다. 액션 장르가 혁신가의 시체 위에서 길을 잃었다고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본 시리즈가 도장을 깨러 들어와서 새로운 도장을 차렸는데, 그 도장이 다시 깨져야 할 새로운 도장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키아누는 2014년 시점에서 이미 "전성기 지난 배우" 카테고리에 안착해 있었습니다. 소위 와패니즈 영화 47로닌이 막 폭망하고 나온 직후였고 (약 1억 5,000만 달러 손실) 매트릭스 이후 그의 단독 주연작은 거의 모두 흥행에 실패한 상태였습니다. 이미 당시에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근육질의 잘생긴 미남들(크리스 햄스워스나 크리스 에반스 등)이 주연을 맡는 시절이었고, 전성기가 많이 지난 키아누는 그저 웃기게 생긴 아저씨였을 뿐이었습니다.

존 윅의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와 데이빗 레이치는 무려 스턴트맨 출신으로 극장용 장편이 처음인 신인이었습니다. 예산도 (할리우드치고는)저예산에 성인 미만 시청불가인 R등급을 받아 흥행에서도 혼자 핸디캡을 걸고 들어간데다, 시나리오는 "개 복수극"이라는 한 줄로 요약 가능했습니다. 폭망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비관은 합리적이었습니다. 다만 그 계산에는 결정적인 변수 몇 개가 빠져 있었습니다..

종이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 무엇이 특별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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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의 진짜 혁신은 시나리오 텍스트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만 본 사람들은 모두 틀렸습니다. 그것은 화면을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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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트맨 출신 감독의 철학적 전환. 채드 스타헬스키는 매트릭스에서 키아누의 스턴트 대역을 했던 사람입니다. 즉, 키아누가 떨어질 때 대신 떨어지고, 키아누가 맞을 때 대신 맞아주던 사람이 어느 날 카메라 뒤에 선 것입니다. 그가 가져온 변화는 기술이 아니라 시각이었습니다.

기존 감독들 대부분은 액션을 "감춰야 할 결함"으로 봤습니다. 배우의 한계, 안전상의 한계, CG의 어색함을 가리기 위해 카메라를 흔들고, 컷을 잘게 쪼갰던 것입니다. 마치 디저트 위에 휘핑크림을 잔뜩 얹어 빵의 모양을 가리는 베이커리 같은 접근이었죠. 스타헬스키는 정반대였습니다. 액션은 그 자체로 예술이고, 카메라는 그것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도구여야 한다는 신념. 자기가 평생 몸으로 만들어온 것을 비로소 화면에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게 된 사람의 시각이었습니다. 평생 호텔 주방에 갇혀 있던 서브 요리사가 처음으로 자기 가게를 차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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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푸(Gun Fu)의 완성. 이 시리즈가 액션 영화 역사에 남긴 가장 큰 유산입니다. 총과 쿵푸를 결합해 과거 홍콩 영화의 구도를 가져오되, 일본 무술 기반의 짧고 선형적인 동작에 총기 액션을 결합한 새로운 문법으로, 여기서 핵심은 재장전마저 안무가 된다는 점입니다. 적을 향해 한두 발 쏘고, 몸을 회전시키며 빈 탄창을 빼고, 새 탄창을 끼우면서 다른 적을 발로 차고, 다시 정조준해서 두세 발. 이 모든 동작이 끊김 없는 한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흔들리지 않는 카메라로 적나라하게, 길게 보여줍니다. 이후 아토믹 블론드, 노바디, 익스트랙션, 노 타임 투 다이가 모두 이 문법을 차용했습니다.

롱테이크의 귀환. 셰이키캠이 캐릭터의 혼란을 전달했다면, 고정된 롱테이크는 관객을 다시 구경꾼의 자리로 돌려놓습니다. 관객은 존 윅과 적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조용히 충돌을 기다리고, 마침내 일어나는 폭력의 안무를 감상합니다. 존 윅의 클럽 시퀀스가 영화 학교 교재에 실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카메라가 한 번도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키아누가 진짜로 그 동작을 다 했다는 사실이 한 컷에 통째로 박혀 있습니다. 셰이키캠 시대의 액션이 "빠른 편집으로 만든 환영"이었다면, 존 윅의 액션은 "긴 호흡으로 보여주는 진짜"입니다. 그 차이를 관객은 의식하지 못해도 몸으로 느낍니다.

설명하지 않는 세계관. 컨티넨탈 호텔이 무엇이고, 금화가 어떻게 작동하며, 하이 테이블이 왜 권위가 있는지 — 1편은 단 한 번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그냥 그것을 당연한 듯이 사용하고, 관객은 "아, 저게 룰이구나"를 직감으로 짜맞춥니다. 설명을 안 듣고도 규칙이 있다는 걸 직감한 관객이 오히려 몰입을 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친절한 영화와 종이 한 장 차이가 되는 이 아슬아슬한 선을 존 윅은 기가 막히게 타냈습니다.

액션 영화의 대들보가 되기까지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만든 결과는 단순한 흥행 그 이상이었습니다. 존 윅은 액션 영화의 시간을 "존 윅 이전""존 윅 이후"로 나눠놨습니다.

흥행성과.1편의 8,600만 달러 → 2편 1억 7,400만 달러 → 3편 3억 2,700만 달러 → 4편 4억 4,700만 달러. 매 편 거의 두 배씩 뛰는 계단식 상승. 그러는 동안 평론 점수도 함께 올랐습니다. 4편의 로튼 토마토 신선도는 시리즈 최고를 찍었습니다. 보통 시리즈가 4편째에 받는 평이 "이제 그만 좀 해라"인 것을 생각하면, 흥행과 평가가 동시에 4편 연속 우상향한 시리즈를 다른 곳에서 찾아보세요. 거의 없습니다.

장르 문법의 재정의. 존 윅 이후 거의 모든 메인스트림 액션 영화가 이 영화의 안무 언어를 차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데이비드 레이치는 아토믹 블론드, 데드풀 2, 블릿 트레인으로 갈라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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