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예측대회
투자분석
아카데미
커뮤니티
Valley AI 시작하기시작하기
Valley Space인기
부동산은 국가가 갚았던 유일한 빚이다
3등상교양과 투자론

부동산은 국가가 갚았던 유일한 빚이다

avatar
Ottoman
2026.06.11조회수 638회

신앙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신용 분석입니다

요즘 주식쟁이들 사이에서는 부동산 자금이 주식으로 '머니무브'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간혹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이를 생산적 금융이라고 부르고, 속된 말로는 집팔아서 주식산다고 하죠.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그런 현상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소위 세간에서 말하는 '제대로 된 사람'들은 주식을 팔아 부동산을 사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주식과 부동산은 일반인들에게 같은 '재테크'라는 단어 아래 살지만, 신분이 다릅니다. 주식은 코스피가 8,000을 찍어도 '도박'에서 '승률 높은 도박'으로 승진할 뿐, 격은 끝내 도박입니다. 10억어치 주식을 샀다고 하면 위험하다는 걱정을 듣지만, 10억어치 아파트를 샀다고 하면 부럽다는 인사를 듣습니다. 같은 돈이고, 레버리지까지 감안하면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는 계산해 봐야 아는 문제인데도 그렇습니다. 주식으로 10억을 번 사람에게 한국인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아파트로 10억을 번 사람에게는 "보는 눈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먼저 차별합니다. 주식은 '산다'고 하지만 집은 '마련한다'고 합니다. 마련과 장만은 김장과 혼수에 쓰는 동사, 그러니까 투자가 아니라 생존의 채비에 쓰는 말입니다. 한국어는 이미 오래전에 집을 자산의 범주가 아니라 쌀과 연탄의 범주에 넣어두었습니다. 숫자는 언어를 따릅니다. 2025년 기준 한국 가구의 평균 자산 5억 6,678만 원 가운데 4억 2,988만 원, 75.8%가 실물자산입니다. 한국의 평균적인 가계는 전 재산의 4분의 3을 부동산이라는 단일 자산군에, 그리고 많은 경우 단 한 채에 걸고 있습니다. 어떤 펀드매니저가 이런 포트폴리오를 들고 오면 해고감입니다. 그런데 오천만 명이 이렇게 삽니다.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住) 곳입니다." 정부와 공익광고가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온 표어입니다. 재밌는 것은 중국에서도 똑같은 표현을 쓰더군요. 이 문장이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집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증언합니다.

왜 그럴까요. 흔한 답들이 있습니다. 국토가 좁아서. 농경 문명의 토지 애착 때문에. 압축 성장기에 벼락같은 지가 상승을 목격해서. 전부 조금씩 맞고, 전부 결정적으로 부족합니다. 국토가 좁은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고, 땅을 사랑한 농경 문명은 지구의 절반이었으며, 압축 성장은 대만도 했습니다. 그 어디에도 전 재산의 4분의 3과 결혼 제도와 명절의 대화 주제와 계급 감각 전부를 부동산에 위탁한 사회는 없습니다.


한국인에게 부동산은 자산(asset)이 아닙니다. 채권(claim)입니다. 채무자는 국가입니다. 한국의 국가는 많은 약속을 어겨왔습니다. 민주주의를 거부했고, 복지를 미뤘고, 노동의 몫을 깎았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빚, 주거 불만이라는 빚만은 반세기 동안 한 번도 연체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이 부동산을 믿는 것은 땅을 믿어서가 아니라 이 채무자의 변제 이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신앙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신용 분석입니다.

모든 채권에는 계약서가 있고, 이 계약서는 1971년 8월 10일 체결자입니다. 장소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전라도의 광주가 아닙니다. 지금의 성남시, 그 무렵에는 지도에 이름조차 또렷하지 않던 황무지였습니다.


채무의 발생 — 평당 2천 원의 약속

채권은 채무자가 돈을 빌리는 순간 태어납니다. 1971년의 국가는 빈민에게서 무엇을 빌렸을까요.

이야기는 농촌에서 시작됩니다. 1960년대의 저곡가 정책은 공업화의 연료였고 농촌 경제의 동결액이었습니다. 그 10년 동안 약 400만 명이 농촌을 떠났습니다. 1966년부터 1970년 사이에는 해마다 60만 명씩이었습니다. 갈 곳은 서울뿐이었고, 서울에 그들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청계천변과 중랑천변, 산비탈마다 판잣집이 들어섰습니다. 1967년 서울시가 헤아린 무허가 주택은 23만 3천 동, 그 안에 127만 명이 살았습니다. 당시 서울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사람들이, 행정 서류상 존재해서는 안 되는 집에 살고 있었던 셈입니다.

당시는 박정희 정권 치하로,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업을 군사작전 식으로 속공을 벌이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주민대책에 대한 서울시의 해법은 단순했습니다. 밀고, 짓고, 올려보낸다. 서울시는 판자촌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시민아파트를 세우는 속도전을 벌였습니다. 그렇게 지어진 주택이 와우아파트입니다. 준공 7개월만에 입주를 하게 된 이 초속공 아파트는 입주민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균열을 발견하고 당국에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공무원들은 이를 보고서도 별 문제 없다고 그냥 돌아갔죠. 그리고 불과 2개월 후, 1970년 4월 와우아파트가 준공 넉 달 만에 동 전체가 통째로 무너져 33명이 깔려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시민아파트 노선이 좌절되자 행정의 논리는 한 단계 더 단순해졌습니다. 서울 안에 수용할 수 없다면, 서울 밖으로 내보낸다.

그렇게 나온 것이 1968년 발표된 광주대단지 계획입니다.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의 구릉지에 인구 50만의 위성도시를 세우고 서울의 철거민을 이주시킨다는 청사진이었습니다. 인구 50만이면 당시 웬만한 광역 도시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그 도시를 세우는 데 필요한 예산은, 책정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방침이 하나 있었습니다. '선(先) 입주, 후(後) 건설.' 도시는 나중에 짓고, 사람부터 실어다 놓는다는 원칙이었습니다.

image.png

1969년 5월, 첫 트럭들이 도착했습니다. 풍경은 어디서나 비슷했습니다. 새벽에 철거반이 들이닥쳐 판잣집의 지붕부터 걷어내면, 식구들은 황급히 이불과 솥과 문짝을 챙겼고, 사람과 세간이 한 덩어리로 군용 트럭 적재함에 실렸습니다. 트럭은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달려, 남한산성 아래 황톳빛 구릉지에 짐을 부리듯 사람들을 부려놓고 떠났습니다. 그곳에는 도시가 없었습니다. 도시를 약속하는 말뚝과 새끼줄이 있었을 뿐입니다. 측량 말뚝 사이에 군용 천막이 줄지어 섰고, 한 장의 천막에 너덧 가구가 들었습니다. 수도가 없어 물은 우물과 개울에서 길어 와야 했고, 변소가 없어 언덕이 변소가 되었으며, 전기가 없어 해가 지면 수만 명의 거처가 통째로 어둠에 잠겼습니다. 비가 오면 천막 바닥으로 황톳물이 흘렀고, 마른 날에는 흙먼지가 끼니 위에 앉았습니다. 사람들은 흙벽돌을 찍어 집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시가 사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맨손으로 도시를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였습니다. 단지 안에는 공장도 상가도 없었고, 서울로 나가는 버스는 드물고 멀었습니다. 서울의 판자촌에서는 그래도 지게를 지든 행상을 하든 날품을 팔아 그날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는 팔 날품조차 없었습니다. 굶는 집이 늘었습니다. 일대에는 굶주림에 지쳐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인육사건에 대한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그런 소문이 돌고 또 믿겼다는 것 자체가, 이 단지의 공기가 어디까지 내려가 있었는지를 증언합니다. 난쏘공,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유명한 소설이 이 시절의 광주대단지를 소설의 무대로 삼았죠.

국가가 철거민에게 건넨 것은 집이 아니었습니다. 20평 안팎의 땅에 대한 입주권, 속칭 '딱지'였습니다. 딱지는 종이입니다. 그러나 그 종이에는 약속이 적혀 있었습니다. 싼값에, 평당 2천 원 안팎으로, 이 땅을 너희에게 불하하겠다는 약속. 요컨대 국가가 발행한 약속어음이었습니다. 빈민들은 집과 삶의 터전을 내주고 그 어음을 받았습니다. 국가는 도시화의 비용을 가장 가난한 채권자들에게서 외상으로 조달한 것입니다.

어음의 가격은 곧 국가 자신의 손으로 부풀려졌습니다. 1971년은 선거의 해였습니다. 4월에 대통령 선거, 5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여당 후보 차지철은 유세에서 토지 무상 불하와 세금 면제, 대형 공장 유치를 약속하며 광주대단지를 '지상낙원'으로 만들겠다고 외쳤습니다. 행정도 분주했습니다. 어제는 공업단지 기공식, 오늘은 상수도 통수식, 내일은 도로 준공식이었습니다. 개발 정보를 먼저 쥔 투기꾼들이 딱지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땅값은 치솟았습니다. 당장 굶는 철거민들은 딱지를 헐값에 넘기고 서울의 무허가촌으로 되돌아갔으며, 그 자리는 싼값에 내 집을 마련하려는 일반 전입자들이 채웠습니다. 시장이 만들어지고, 가격이 뛰고, 손바뀜이 일어났습니다. 정부 수립 이래 최초의 신도시 분양권 시장이, 국가의 주도로, 굶주린 사람들의 손 위에서 개장한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한국 부동산사의 첫 번째 교훈이 새겨집니다. 토지의 가치는 노동이 아니라 국가의 지정(指定)이 만들며, 그 지정에 가까이 선 자가 부를 가져간다는 것. 한국인이 받은 첫 부동산 교육의 교사는 국가였습니다. 국가는 한국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투기꾼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나자 ...

회원가입만 해도
이 글을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Basic 7일 무료 체험 시작하기
이미 계정이 있으신가요?로그인하기
댓글 36개
avatar
Ottoman
구독자 1,098명구독중 27명
다양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쓰는게 목표입니다.
avatar
자유인
2026.06.11

오늘도 푹 빠져서 잘 읽다 갑니다.

부동산 쏠림에 이런 뼈대가 있었다니..!

avatar
Ottoman
작성자
2026.06.16

감사합니다!

avatar
SpinningDelta
2026.06.1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avatar
Ottoman
작성자
2026.06.16

감사합니다!

avatar
행복하자우리
2026.06.11

잘읽었습니다.. 내집 마련은 언제가능할지..

avatar
Ottoman
작성자
2026.06.16

ㅠㅠ 감사합니다!

avatar
우고
2026.06.11

흡입력 미쵸따! 덕분에 잘 몰랐던 역사의 한 부분을 훑어내려갔습니다.

avatar
Ottoman
작성자
2026.06.16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avatar
꾸아
2026.06.11

매 번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avatar
Ottoman
작성자
2026.06.16

제가 항상 감사합니다!

avatar
Neal
2026.06.12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칼럼 오래 써주셔야 하니 ㅎㅎ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avatar
Ottoman
작성자
2026.06.16

따뜻한 답글 감사합니다!

avatar
천스
2026.06.12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avatar
Ottoman
작성자
2026.06.16

감사합니다!

avatar
ipenguin
2026.06.12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부동산, 금융관련 현업에 종사하는데, 보통 집 포함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람은 투기꾼이나 다주택자라고 합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부동산과 이익에 제일 민감한 투기꾼과 다주택자들의 움직임이 재미있습니다. 저 사람들이야 기본적으로 돈이 많으니, 포트폴리오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 사람들이 부동산의 비중을 줄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상업용, 주거용 부동산 거래량도 줄어듭니다. 여러개 있는 사람도 괜찮은거 한두개로 포지션 조정이 일어나니 매도수요는 있지만 매수 수요는 많이 없어요.


무주택인 사람들은 1채에 대한 수요가 당연히 있으나, 실제 부동산으로 돈 많이 번 사람들은 수익실현의 시점으로 많이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avatar
누누씨
2026.06.12

부동산 재벌들인 롯데나 이마트도 최근 부동산에 대해서 수익실현을 해나가는중이더라구요. 저도 부동산이 단기적으로는 주식시장이랑 전닉 성과급 공급제한 등으로 급등할것같은데 장기적으로는 금리제약등 좀 힘들듯합니다.

avatar
Ottoman
작성자
2026.06.16

예측에 관한 글이 아닌데 제가 쓰는게 형편없어 그렇게 보였나봅니다 ㅠ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avatar
압구정현대
2026.06.12

오또맘님 글 잘읽었습니다.

avatar
Ottoman
작성자
2026.06.16

감사합니다!

avatar
IN
2026.06.12

좋은 글 감사합니다!

avatar
Ottoman
작성자
2026.06.16

감사합니다!

교양과 투자론 카테고리의 다른글

위대한 기업은 밸류에이션을 무시할 수 있을까

또 콜라이야기입니다. 코카콜라. KO. 이보다 강력한 브랜드는 아마 찾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루이비통이나 벤츠, 어쩌면 웬만한 국가의 이름보다도 더 강력한 인지도를 가진 명실공히 세계 최강의 브랜드. 미국과 자본주의, 자유의 상징이자 비만과 충치, 설탕물과 온갖 루머의 진원지이기도 하죠. 투자자에겐 워렌 버핏의 반려 주식(?) 이자 그에게 최고의 성과를 주고 그의 투자 철학을 상징하는 존재로 서있기도 하죠. 코카콜라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기업이 얼마나 밸류에이션을 무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시장에 작동하는 중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뛰어난 회사였는가"와 "뛰어난 주식이었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고, 코카콜라는 그 둘의 간극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이렇게 봅니다. 코카콜라는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사업체 중 하나가 맞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주식"이었느냐는, 언제 얼마에 샀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갈립니다. 버핏의 반려 주식 신화는 이 진실을 가려버리는 경향이 있고, 그 신화를 해체하는 것에서 지금 시장에 대한 큰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회사로서의 코카콜라: 음료가 아니라 '시럽 라이선스 머신' 먼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구조부터 보겠습니다. 코카콜라 본사(KO)는 사실상 콜라를 만들지 않습니다. 본사가 만드는 것은 원액(concentrate)입니다. 캔에 물을 붓고, 탄산을 주입하고, 알루미늄 캔을 사고, 트럭으로 운반하고, 마트 매대에 꽂는—자본이 무겁고 마진이 박한—모든 일은 전 세계의 보틀러(병입업체)들이 합니다. 코카콜라는 그들에게 원액과 브랜드 사용권을 팔 뿐입니다. 한국에선 LG생활건강이 하죠. 유명한 사실입니다. 이 구조가 왜 천재적이냐. 보틀러는 공장·트럭·인건비라는 무거운 자본을 떠안고 한 자릿수 마진으로 굴러갑니다. 반면 본사는 설탕물 농축액에 브랜드를 입혀 파는, 자본이 거의 들지 않는 사업을 합니다. 현재 숫자를 보면 이 비대칭이 드러납니다. 매출총이익률 약 61.7%, 순이익률 약 27.9%, 자기자본이익률(ROE)은 무려 45.8%입니다. 연 매출 약 493억 달러로 이 정도 ROE를 낸다는 것은, 들어간 자본 대비 토해내는 현금이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뜻입니다. 이게 버핏이 사랑하는 "자본이 거의 안 드는데 돈을 찍어내는" 사업의 원형입니다. 2010년 무하타르 켄트 CEO는 미국에선 직접 팔겠다며 북미 보틀링 사업을 본사 장부 안으로 다시 끌어안았다가, 후임 제임스 퀸시가 2016~2017년에 그것을 통째로 다시 외주화(refranchising)했습니다. 무거운 병입 자산을 장부에서 털어내자 마진과 ROIC가 다시 치솟았죠. 코카콜라는 "물리적 제조"를 일부러 자기 몸에서 떼어내며 점점 더 순수한 로열티 기업에 가까워졌습니다. 이건 단순한 음료 회사가 아니라, 글로벌 유통망 위에 얹힌 라이선스 비즈니스라는 정체성 선언입니다. 그리고 진짜 해자(moat)는 흔히 말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유통입니다. 전 세계에서 코카콜라 제품은 하루 약 22억 잔이 팔립니다.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의 모든 골목, 작디 작은 구멍가게 냉장고에까지 코카콜라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 물리적 침투력은 어떤 신생 브랜드도 한 세대 안에 복제할 수 없습니다. 펩시조차 못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아직도 다른 콜라는 안 마십니다. 이 비합리적 충성심 자체가, 정량화하기 어려운 이 해자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가치 창출의 황금기는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CEO 시절(1981~1997)이었습니다. 그는 회사를 EVA(경제적 부가가치)와 ROIC 중심으로 재편하고, 비핵심 자산을 정리했습니다(코카콜라가 1982년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했다가 1989년 소니에 매각한 사실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죠). 1985년엔 '뉴 코크'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콜라 맛을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더 좋았다며 바꿨는데, 사람들이 콜라를 돌려내라며 시위(...)에 나서 결국 다시 롤백한 사건입니다. 코카콜라에 재앙과 같은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은 결과적으로 오리지널 코크에 대한 대중의 정서적 애착을 재확인시킨 마케팅 사건으로 끝났습니다. 이 모든 걸 종합하면, 회사로서의 평가는 명확합니다. 그렇습니다. 코카콜라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업체입니다. 버핏의 표현을 빌리면 "필연(inevitable)"에 가까운 기업이죠. 주식으로서의 코카콜라: 같은 회사, 정반대의 운명 이제 진짜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같은 회사인데 주식의 성적표는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갈라집니다. 1막 (1988~1998): 인생 역전. 버핏이 코카콜라를 본격적으로 사들인 1988년 4월부터 1998년 4월까지 10년간, S&P 500이 300% 넘게 오르는 동안 코카콜라 주가는 배당을 빼고도 1,500% 넘게 폭등했습니다. 신흥시장이 열리고 미국 브랜드가 전 세계로 퍼지던 시기와 정확히 맞물렸죠. 이 구간만 보면 코카콜라는 역사상 최고의 주식 중 하나입니다. 2막 (1998~2013): 죽은 돈(dead money)시기. 여기서 모든 게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1998년 초 코카콜라는 후행 PER 약 50배에 거래되고 있었고, 이 어처구니없는 밸류에이션이 이후 15년을 잡아먹습니다. 1998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15년간, 배당을 포함해도 코카콜라의 총수익률은 고작 45%였습니다. 같은 기간 S&P 500은 코카콜라를 한참 따돌렸습니다. 이동안 장사를 못했으면 코카콜라가 아니죠. 회사는 여전히 훌륭했는데, 주식은 15년을 헤맸습니다. 주가가 1998년의 사상 최고치를 영구히 회복하는 데 15년이 ...
교양과 투자론
2026. 06. 05
146
64
921
위대한 기업은 밸류에이션을 무시할 수 있을까

'소외'로 코스닥을 설명할 순 없다

코스피는 신고가, 코스닥은 코로나급 최근에 일이 많아 조금 뜸합니다 ㅠㅠ 양해부탁드립니다. 빠르게 내용갑니다. 트레이딩 못합니다. 재미로만 봐주세요 코스피와 코스닥은 사실 일체입니다. 그냥 코스피에 삼전과 하이닉스가 있을 뿐이죠. 양 지수 모두 20일 평균 ADR이 코로나 이후 바닥인데, 코스닥은 아마 이번 주에 보합만 지속하더라도 평균 특성상 코로나 최악의 저점 (3월 19일)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시장은 원래 강세장에서도 쏠림은 심했습니다. 과거 차트를 보면 ADR은 80 이하를 밥먹듯이 드나들지만 그 반대급부인 120 이상은 아주 드문드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2년이 초강세였음을 감안하면 코스닥은 원래가 사람 살기 편한 시장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지금과 같은 극단적 저점을 만드는 이유는 찾아봐야겠죠. 위는 코스닥이고 아래는 코스피 시장의 융자잔고 추이입니다. (절대치 차이가 있으니 감안하셔야 합니다) 재밌는 포인트는 코스닥은 시장규모에 비해 원래 절대적으로 신용을 많이 쓰는 동네라는 것입니다. 현재 코스닥과 코스피의 시총 차이는 거의 18배가까이 나지만, 신용 금액의 차이는 3배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코스닥은 투기장의 성격이 강한 동네죠. 그런데 5월 들어 재밌는 일이 벌어집니다. 저 때는 아직 코스닥이 폭락하기 전인데, 신용이 먼저 빠지기 시작합니다. 보틍은 3월 (미국의 이란 침공) 같은 이벤트 장세에서만 빠지는 신용이 별다른 일이 없는데도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5월 마지막 주에 들어, 결국 코스피가 이번 달 20% 오르는 동안 -10%로 마감하는 기염을 토하죠. 문제는 코스닥이 신용으로 인한 회전율, 신용 쓴 사람들이 삿팔삿팔을 해주는 그 유동성에 상당히 기대는 시장이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추세적으로 빠지면 안그래도 얇은 호가가 빠지고, 아래서 후술할 문제에 더 세게 얻어맞게 됩니다. 이게 다 반도체 때문이다? 시장의 컨센서스는 반도체에 몰려있지만 코스닥에도 반도체는 있죠. 파두같이 시장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종목도 있고, 미국이나 일본의 탑티어 소부장 회사와 밸류에이션만큼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소부장들도 많습니다. 역시 재밌는 것은 이번 장세에서 가장 세게 '맞은' 것이 소부장이라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소외된게 아니라 오히려 소부장 대형주들은 5월 마지막주에만 거의 일제히 30% 내외의 폭락을 경험했습니다. 아래 소재, 부품, 장비에서 주요사 6종을 뽑아봤습니다. (제가 보유한 것은 아니고, 대형 반도체 ETF에 포함된 종목들 중 한미반도체를 제외하고 추림, 한미는 가장 큰 장비사지만 개별 이슈로 노이즈가 커서 제외) 위는 지난 6개월 (올해) 동안 해당 구성 종목들의 상관관계를 나타냅니다. 너무 높은 거 아니냐 싶겠지만 지난 장세와 같은 섹터, ETF의 광풍에 가까운 수급을 생각하면 당연한 차이입니다. 오히려 소재주(솔브레인)과 다른 종목들간의 상관관계가 저정도 차이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죠. 왜 이를 알아야 하느냐, 위 샘플 종목들에 대한 비차익 공매도가 5월 들어 폭증했기 때문입니다. 표준편차 단위(σ)는 "오늘 값이 평소와 비교해 얼마나 유별난가"를 재는 자입니다. 단위가 다른 것들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게 해 줍니다. 왜 그냥 숫자로 안 보고 표준편차를 쓰나. 종목마다 공매도 규모가 다릅니다. 리노공업은 평소 하루 20만 주, 솔브레인은 4만 주씩 공매도된다고 칩시다. 어느 날 리노공업 30만 주, 솔브레인 8만 주가 공매도됐다면, 절대 수치로는 리노공업이 훨씬 큽니다. 하지만 "평소보다 유별난 정도"로 보면 솔브레인(평소의 2배)이 더 이상합니다. 절대 숫자로는 종목 간 비교가 안 됩니다. 표준편차를 그래서 어떻게 쓰냐. 먼저 그 종목의 평소 평균을 구합니다. 그리고 평소 값들이 평균에서 보통 얼마나 출렁이는지를 구하는데, 이 "보통의 출렁임 폭"이 표준편차(1σ)입니다. 그러면 오늘 값을 "평균에서 표준편차 몇 개만큼 떨어졌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고로 0σ, 딱 평소 평균입니다. +1σ 평소보다 한 단계 많은 정도 — 흔히 있는 일입니다. +2σ 꽤 드문 일이고, +3σは 통계적으로 1000일에 며칠 있을까 말까 한 극단입니다. 정규분포라면 +3σ를 넘는 일은 전체의 0.1%쯤입니다. 키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평균 키가 175cm이고 표준편차가 7cm라면, 182cm(+1σ)는 "좀 큰 편"이라 흔합니다. 189cm(+2σ)는 "꽤 큰 편"이라 드뭅니다. 196cm(+3σ)는 "어디 가도 눈에 띄는" 극단입니다. 공매도 +3σ는 지하철 옆자리에 2미터짜리 사람이 앉는 날 정도로 유별난 날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표로 돌아가 봅시다. 히트맵에서 2월 말 부터 3월 내내 파랗던 표가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죠? 네. 전쟁났죠. 중동 이슈를 반영해 대표 종목군에 일제히 비방향성 숏이 몰립니다. 하지만 아주 평이한 ...

재미로 읽는 맥도날드 이야기

맥도날드 좋아하시나요? 요즘 맥도날드 버거를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은 드물죠. 미국에서는 이미지가 더 심각하죠.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맥도날드는.. 글쎄요, 어린 학생들에겐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거기서 점심 먹는게 적어도 시골에서 자란 저에게는 아주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죠. 워렌 버핏은 아직도 매일 아침 맥도날드를 먹는다고 하는데요. 재미로 보시죠. 공식적으로 맥도날드의 창업자는 맥도날드가 아닙니다. 위 사진의 레이 크록(Ray Kroc, 1902~1984)이죠. 그의 이야기는 미국 자본주의 신화의 가장 모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표면적으로는 "52세에 인생 역전한 인간승리"의 영웅담이지만, 한 꺼풀 들춰 보면 "남의 사업을 가로챈 영업사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서사가 모두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실패자 아저씨 레이먼드 알버트 크록은 1902년 10월 5일 시카고 외곽 오크파크(Oak Park, Illinois)에서 체코계 이민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성이 특이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죠. 아버지 루이스 크록은 철도로 유명한 웨스턴 유니언(Western Union)의 평범한 직원이었고, 1920년대 후반 부동산 투기에 손을 댔다가 1929년 대공황으로 전 재산을 잃고 1930년에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책상 위에는 봉급 명세서와 빚 독촉장 한 장이 놓여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장면은 어린 레이 크록의 머릿속에 평생 각인됩니다. 그가 훗날 사업을 부동산 자산화한 데에는 이 유년기의 트라우마가 깔려 있다고 보는 전기 작가들이 많습니다. 크록 자신도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만 15세였던 그는 나이를 속이고 적십자(Red Cross) 구급차 운전병으로 자원입대합니다. 사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디테일이 하나 있는데, 같은 운전병 코네티컷 훈련소 동기 중에 또 다른 15세 소년이 있었습니다. 바로 월트 디즈니(Walt Disney)였습니다. 두 사람이 그 시기에 친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훗날 미국 문화의 거대한 상징을 양분하게 되는 두 인물이 십대 시절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은 재미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크록은 30년 가까이 "어중간한 세일즈맨"으로 살아갑니다. 종이컵 회사 릴리튤립(Lily Tulip Cup)에서 17년간 영업사원으로 일했고, 밤에는 시카고의 클럽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부업을 했습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음악 감독을 잠깐 한 적도 있고, 플로리다에서 부동산 사기에 가까운 토지 분양 영업도 했다가 빈털터리로 시카고에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결혼 생활은 불안정했고, 첫 번째 부인인 애설과는 그렇게 좋은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흔한 가정이었죠. 전환점은 1939년에 찾아옵니다. 얼 프린스(Earl Prince)라는 발명가가 만든 '멀티믹서(Multimixer)'라는 기계, 한 번에 밀크셰이크 다섯 잔을 동시에 만드는 5축 믹서에 크록이 매료됐고, 그 독점 판매권을 따냅니다. 이때부터 그는 미국 전역의 드러그스토어와 다이너(diner)를 돌아다니며 멀티믹서를 팔게 됩니다. 역시 좋은 사업은 아니었습니다. 2차 대전이 터지면서 모든 물자가 군수물자 우선으로 재배치되면서, 금속을 미국에서도 배급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생산이 끊겼습니다. 전후에는 레스토랑들이 셰이크보다 소프트아이스크림으로 옮겨 가면서 매출이 추락했습니다. 저도 아이스크림이 더 좋습니다. 1954년, 크록은 52세였고, 당뇨와 관절염을 앓고 있었으며, 갑상선 일부와 담낭을 떼어낸 상태였습니다. 미국 서민의 기준으로도 크록은 성공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거의 끝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였죠. 그러던 어느 날,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San Bernardino)에 있는 작은 햄버거 가게가 멀티믹서를 한꺼번에 여덟 대나 주문했다는 소식을 받습니다. 한 매장에서 동시에 40잔의 셰이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크록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직접 비행기를 타고 서부로 날아갑니다. 1954년의 일이었고, 이 결정이 그의 인생을 바꿉니다. 인생 2막. 맥도날드 형제와의 만남 크록이 도착한 곳에서 그는 미국 외식산업의 미래를 처음 목격합니다. 샌버나디노의 옥타곤형 매장 앞에는 점심시간마다 차가 줄지어 섰고, 종업원들은 마치 자동차 조립 라인처럼 햄버거를 찍어 내고 있었습니다. 메뉴는 9가지뿐이었고, 햄버거 15센트, 감자튀김 10센트, 셰이크 20센트라는 단순한 가격 구조였습니다. 식기는 모두 종이와 일회용이었고, 손님은 차에서 내려 직접 주문하고 받아 갔습니다. 이 가게의 주인은 형 모리스(Maurice "Mac")와 동생 리처드(Richard "Dick") 맥도날드 형제였습니다. 뉴햄프셔에서 캘리포니아로 건너와 영화 산업에서 잡일을 하다가 1940년에 핫도그·바비큐 가게로 시작한 형제는 1948년에 가게 문을 석 달 닫고 모든 것을 다시 설계했습니다. 메뉴를 줄이고, 식기를 종이로 바꾸고, 주방을 분초 단위로 동선이 짜인 '스피디 서비스 시스템(Speedee Service System)'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디테일인데, 형제는 가게를 다시 설계하기 위해 매장 뒤편 테니스 코트에 분필로 1:1 크기의 주방 평면도를 그려 놓고, 직원들에게 가짜 햄버거를 만들게 하면서 동선을 수십 번 수정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상 패스트푸드 산업의 탄생 순간입니다. 나중에 유명한 드라마 '베터 콜 사울'에서 이 장면이 패러디되죠. (가게를 털려고 동선 연습하는 장면으로..) 크록은 이 시스템을 보고 즉시 깨닫습니다. "이거 된다" 형제는 이미 캘리포니아·애리조나 등에 몇 개의 프랜차이즈를 팔아 본 적이 있었지만, 의지가 약했습니다. 형 맥은 건강이 안 좋았고, 동생 딕은 보수적이었으며, 두 형제 모두 골프와 여유로운 캘리포니아의 삶을 사랑했습니다. 더 크게 키울 동기가 없었습니다. 크록은 자신을 전국 프랜차이즈 에이전트로 임명해 달라고 제안했고, 형제는 동의했습니다. 이 계약이 훗날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가맹점주는 가맹비 950달러(당시 기준으로 결코 비싸지 않은 금액)를 내고, 매출의 1.9%를 본사에 지불하는데 그중 0.5%가 맥도날드 형제 몫이고 1.4%가 크록 몫이었습니다. 더 결정적이었던 조건은 크록이 형제의 서면 동의 없이는 어떤 사소한 변경도 할 수 없다는 조항이었습니다. 형제는 자신들의 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크록은 일단 먼저 계약부터 하고 나머지는 차차 고쳐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955년 4월 15일, 크록은 일리노이주 데스플레인즈(Des Plaines)에 자신의 첫 매장을 엽니다. 같은 해 그는 'McDonald's System, Inc.'(나중에 ...

진짜는 드론이다

DJI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되자, 중국 DJI의 민간용 드론인 매빅(우리나라 매장에도 흔히 있는 그것)을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조종사가 있는 위치로 30분 안에 포탄이나 다연장로켓이 날아왔는데, 어떻게 위치를 알고 쏘는지 모를 노릇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운용하는 드론 부대에서는 이런 식으로 조종사를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떻게 찾았을까요. DJI는 드론이라는 독약을 만들었지만, 그 드론을 찾을 수 있는 에어로스코프(AeroScope)라는 해독제도 동시에 만들었습니다. 에어로스코프는 30km 반경 내 모든 DJI 드론의 위치, 고도, 기종은 물론 조종사의 위치까지 실시간으로 보여줍니다. 원래는 공항이나 교도소 보안용이지만, 러시아군은 이걸 시리아에서 가져와 우크라이나 전선에 깔았습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에는 독약을 팔고 러시아엔 해독제를 판 셈입니다. DJI는 에어로스코프 신호가 "암호화되어 있다"고 줄곧 주장했지만, 회사 내부에 압박이 가해지자 시인했습니다. 암호화 따위는 없었다고. 그러자 우크라이나는 이 기능을 막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DJI는 이 기능은 끌 수가 없는 기능이라며 거절했죠.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중국이 드론 탐지 기능을 계속 러시아에 제공하자 우크라이나는 자원봉사 해커들이 직접 펌웨어를 뜯어 해결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동안에도 DJI는 우크라이나에 계속 드론을 팔았습니다. 저런 문제가 밝혀진 지금까지도 DJI 드론은 우크라이나에 팔리고 있습니다. 현대전은 완전히 변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중국제 드론의 정보가 넘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DJI 드론을 사용하는 이유, 왜 허접한 장난감이 전장에서부터 사람을 대체하고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지난 4년 동안의 드론 이야기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전선의 주력 드론은 한 대 2,000달러(약 280만 원)짜리 DJI 매빅이었습니다. 한국 매장에서도 살 수 있는, 야외 인스타 찍는 그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한 해 동안 매빅 글로벌 생산량의 60%를 통째로 사들였다고 했습니다. 정작 DJI는 자기들이 그만큼 판 것이 아니라며 부인했지만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원봉사 단체들은 군인들에게 보내려 매빅을 모금했고, 군인들은 매빅 바닥에 케이블 타이로 수류탄을 묶어 러시아 보병의 머리 위로 떨어뜨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드론이 전쟁의 본질을 바꿀 거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죽창 정도 되는 취급이었죠. 그러나 곧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한 대 500달러(약 70만 원)짜리 1인칭 시점(FPV) 자폭드론이 한 대 500만 달러(약 70억 원)짜리 러시아 T-90 전차를 격파하는 영상이 매일 텔레그램에 올라옵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생산량은 2023년 80만 대에서 2024년 200만 대, 2025년에는 500만 대로 폭증합니다. 미국의 거대 미사일 회사 레이시온 1년에 수백 대를 팔면 잘 팔린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도무지 같은 산업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2024년 후반에는 러시아가 새 무기를 들고 나옵니다. 광섬유 드론입니다. 무선통신 대신 광섬유 케이블을 풀면서 비행하는, 무려 유선 드론입니다. 무선을 쓰지 않으니 재밍(전파교란)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전자전 우위가 단숨에 무력화됩니다. 영상자료: WSJ 뉴스 유튜브 채널 그리고 2025년 6월 1일, 드론전은 한차원 더 진보합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18개월간 준비한 거미줄 작전(Spiderweb)입니다. 평범한 화물트럭의 적재함 천장이 원격으로 열리고, 드론 117대가 동시에 발사됩니다. 표적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4,300km 떨어진 시베리아 벨라야 기지를 포함한 5개 전략공군기지였습니다. 5개 시간대를 가로지른 동시다발 공격이었습니다. 결과는 Tu-95, Tu-22M3 전략폭격기 12대 이상이 완전 파괴되고 8대가 추가 손상을 입었습니다. A-50 조기경보기까지 표적이 됐습니다. 추정 피해액 70억 달러(약 9조 8천억 원). 이 항공기들은 소련 해체 이후 더 이상 생산되지 않습니다. 즉 대체 불가능한 자산입니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들조차 이를 "러시아의 진주만"이라고 불렀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 번의 작전으로 러시아 장거리 항공력의 약 20%가 무력화됐다고 평가했습니다. 한 대 500달러짜리 드론이 한 대 5억 달러(약 7천억 원)짜리 폭격기 12대를 박살낸 셈입니다. 수익률 100만 배의 거래입니다. 같은 시기 중동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동시에 벌어졌습니다. 2025년 6월 12일 시작된 12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하자 이란이 응징에 나섭니다. 수단은 무엇이었을까요. 미사일과 우리에게 익숙한 그 드론입니다. 이란이 발사한 샤헤드(Shahed) 드론 한 대가 이스라엘의 다층 방공망(아이언돔, 데이비드슬링) 사이를 뚫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2026년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시 이란을 친 직후, 이란이 카타르 알우데이드 미군 기지, 쿠웨이트 알리 알살렘 기지, 사우디 프린스 술탄 기지, UAE 알다프라 기지를 드론으로 타격합니다. 미군 공중급유기 여러 대가 손상되고 미군 15명이 부상했습니다. 같은 날 키프로스의 영국 공군 아크로티리 기지에 헤즈볼라가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샤헤드 드론이 떨어집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친 드론과 우크라이나 발전소를 친 드론은, 사실상 같은 공장에서 같은 부품으로 만들어진 같은 무기입니다. 이란 샤헤드의 디자인 원본은 이미 러시아의 알라부가 공장으로 넘어가 있었고, 그 알라부가 공장의 부품은 중국에서 옵니다. 드론에게 있어 중동의 전쟁과 동유럽의 전쟁이 서로 다른 전쟁이 아니라, 한 뿌리에서 자라난 같은 전쟁이라는 사실이 이때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드론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도시에 닿습니다.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입니다. DJI는 어떻게 드론 1타가 되었나 DJI의 지배력은 우연이 아닙니다. 2006년 선전, 홍콩과기대 학생이었던 프랭크 왕(왕타오)이 자취방에서 회사를 차립니다. 회사명 DJI는 다장창신(大疆創新), "큰 변경의 혁신"이라는 뜻입니다. 첫 히트작 팬텀(Phantom) 시리즈가 2013년 등장합니다. 그전까지 드론은 군용이거나 RC 매니아의 영역이었는데, 팬텀은 일반인이 박스에서 꺼내 30초 안에 띄울 수 있는 첫 드론이었습니다. 결혼식 영상, 유튜브 영상, 부동산 홍보, 농사, 측량까지 드론 시장을 그야말로 개척한 제품이었죠. 물론 이때만 해도 장난감이었습니다. DJI는 2018년에도 직원 14,000명 중 절반이 엔지니어, 그중 20%가 R&D 전담이었습니다. R&D 지출은 매출의 7%를 일관되게 유지합니다. 애플이 5~7%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하드웨어 회사로서는 압도적인 비율입니다. 직원 국적은 20개국이 넘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뛰어난 걸까요. 첫째는 수직 통합입니다. DJI는 모터, 짐벌(카메라 안정화 장치), 비행제어 보드, 이미지 센서, 배터리를 모두 자체 생산합니다. 부품을 모아 조립하는 회사가 아니라, 부품 자체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둘째는 장애물 회피 기술입니다. 드론 날리다 나무나 전선에 걸려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원거리 공중에는 사람이 눈으로 회피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매빅 2부터 6방향 장애물 감지가 들어갔고, 최신 기종은 360도 전방위 감지에 라이다(LiDAR)와 적외선까지 결합합니다. 어두운 동굴, 빽빽한 숲, 도시 협곡 — 거의 모든 환경에서 자동 회피 비행이 가능합니다. 이게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그대로 쓰입니다. 매빅이 건물 사이 좁은 골목을 자율 비행으로 통과해 참호에 정확히 폭탄을 떨어뜨리는 영상이 매일 올라옵니다. 셋째는 DJI의 핵심, 짐벌 기술입니다. 시속 60km로 날면서도 흔들림 없이 4K 영상을 찍는 짐벌은 사실상 DJI의 발명품입니다. 영화 산업이 DJI 짐벌을 표준으로 쓸 정도입니다. 이 정밀 영상이 우크라이나에선 당연히 사람 잡는데 쓰입니다. DJI 코리아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가격입니다. 매빅 미니 4 프로가 미국에서도 약 760달러(약 106만 원)입니다. 미국제 경쟁 모델인 스카이디오(Skydio) X10이 1만 6천에서 2만 5천 달러(약 2,200만~3,500만 원). 같은 카테고리에서 20배 차이가 납니다. 이 격차는 보조금 때문이 아닙니다. 연 수백만 대를 만드는 규모와, 한 도시에 집적된 부품 생태계 덕분입니다. DJI 본사 반경 5km 안에 모터, 배터리, 센서, 플라스틱 사출, PCB, 카메라 모듈 — 드론 부품의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시제품이 머릿속에서 손에 잡히는 시제품으로 나오기까지, 미국에서도 6개월 걸리는 일을 선전에선 6주에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글로벌 드론 배터리의 99%, 드론용 희토류 자석의 90%가 중국산입니다. 미국이 DJI를 막으려 해도, 드론을 막으려는 안티드론 시스템에 들어가는 자석조차 중국에서 와야 합니다. 미국이 자리를 비운 15년 사이에 이 모든 것이 일어났습니다. 2010년대 미국 드론 회사들은 DJI보다 훨씬 먼저 드론을 발견했으나, 차례로 무너졌습니다. 3D 로보틱스는 사실상 컨슈머 드론 시장에서 퇴장했고, 고프로의 카르마는 자기 드론에서 알아서 떨어지는 결함으로 리콜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시장의 90%, 글로벌 시장의 80%가 DJI 단독 점유가 됩니다. 비교 대상이 없는 시장에서 DJI는 15년 동안 무경쟁으로 R&D를 누적했습니다. 미국은 드론에 늦었지만, 또 그 늦은 와중에서도 일찍 깨달았습니다. 2017년 8월 2일, 미 육군 부참모장 명의의 한 메모가 풀립니다. "DJI 제품의 사이버 취약성이 ...

존 윅, 예측에 대한 예측

1조 5천억짜리 B급 영화 만약 스턴트하던 정두홍이 감독이 되어 메가폰을 잡고, 한물간 안성기가 주연이며, 시놉시스는 이런 영화가 있다고 해보죠. "전직 탑 킬러가 깡패에게 기르던 강아지를 잃자 뛰어나와 사람 수십 명을 죽인다." 아마 이 텍스트로 영화 투자를 받는다는게 상상이 안가실겁니다. 클레멘타인이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기대하는 진성 컬트 팬이 아닌 이상, 이 영화는 유튜브 쇼츠로 조리돌림 당할 운명이 명백해 보입니다. 개 복수로 수십 수백명을 죽이는 영화라니요. 모두가 짐작하셨겠지만, 이 영화가 바로 존 윅입니다. 시나리오를 받아본 감독들 대부분이 "동기가 너무 약하니 가족까지 죽여서 감정선을 강화하자"고 합니다. 지금이야 그 '개'가 핵심인 것을 모두가 압니다. 아마 존윅의 아내나 부모가 죽는 시작이었다면 더 평범한 영화가 되었겠지요. 존 윅은 촬영 막바지에 투자자가 빠져 24시간 안에 통째로 엎어질 위기에 처했던 영화였습니다. 이런 스토리를 읽고, 구성을 보면 도망가고 싶은 욕구가 드는게 당연했습니다. 이 위기에서 영화를 살린 것은 평론가의 안목도, 거대 스튜디오의 결단도 아니었습니다. 위기의 주부들의 폭발적 흥행으로 갑자기 현금이 두둑해진 한 중견 여배우가, 자기 에이전트의 "돈 있으면 여기 한번 넣어보세요" 한 마디에 600만 달러를 그냥 생각없이 꽂아 넣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죠. 물론 지금은 그 여배우 이브 롱고리아가 운이 좋은 사람이 되었지만요. 키아누 본인은 출연료를 깎고 지분을 챙겼습니다. 자기가 주연인 영화의 흥행에 사실상 몸으로 베팅을 한 셈입니다. 라이온스게이트는 아무도 사가지 않던 배급권을 개봉 두 달 전에야 사들였습니다. 이것도 베팅이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돈을 어딘가에 걸었지만, 누구도 자신 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못해 걸었죠. 1편 개봉 직전, 업계의 평가는 깔끔하게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비디오방 직행 예정인 테이큰 짝퉁 영화." 2편이 결정됐을 때는 왜 이걸 살리냐는 의심이 우세했고, 3편 이후부터는 "이젠 뇌절이 시작될 차례"라는 예측이 영화 매체의 단골 표제가 됐습니다. 합리적 예측이었습니다. 매번. 그리고 매번 틀렸습니다. 4편까지 누적 흥행 약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5천억. 그것도 매 편마다 전작을 거의 두 배씩 넘기는 계단식 상승. 마블도 해보지 못한 4편 연속 계단식 상승을, 한물간 배우의 강아지 복수극이 해냈습니다. 4편의 로튼 토마토 점수는 시리즈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보통 4편 정도 만들면 트랜스포머든, 어벤저스든, 그만좀 하라는 얘기를 듣는데 4편이 가장 후한 평을 받는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영화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폐급에서 액션의 대들보로 그래서, 존 윅이 대체 어떤 영화인가 존 윅의 줄거리는 정말로 한 줄로 끝납니다. 전설의 암살자였다가 은퇴해 평범하게 살던 존 윅. 죽은 아내가 마지막 선물로 보낸 강아지 한 마리를 러시아 갱단의 망나니 아들이 죽이고 차를 훔쳐 갑니다. 그래서 존 윅이 다시 총을 듭니다. 그리고 세상이 그를 다시는 놔주지 않습니다. 이게 네 편의 시나리오의 거의 끝입니다. 줄거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역사상 최고의 액션 영화 100선" 같은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 됐고, 후속작 네 편이 매번 전작을 뛰어넘으며 시리즈 최고 평가를 4편에서 받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평론가들의 평가도 어느 순간 극적으로 반전됐습니다. "강아지로 시작해 신화로 끝나는 영화." 매너리즘이라는 쓰레기통 속에서 피어난 연꽃 존 윅의 성취를 이해하려면, 그 영화가 등장한 시점의 장르 풍경을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액션 장르는 매너리즘에 쩔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문제의 출발점은 2002년 폴 그린그래스의 본 아이덴티티였습니다. 그가 도입한 이른바 셰이키캠(shaky-cam) 기법 — 카메라를 손에 들고 흔들어가며 찍는 그 격렬한 촬영 방식 — 은 처음엔 진짜 혁신이었습니다. 카메라가 흔들리면 관객이 캐릭터의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거든요. 본 시리즈가 그 시점에 액션 장르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시점에는 천재적인 발명이었습니다. 탑건에서 사용된 셰이키 캠 기법. 카메라를 흔들기 위해 아래에 전동 드릴(...)이 달려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모두가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대 중반에 이르면 액션 영화는 너 나 할 것 없이 카메라를 흔들고, CGI 폭발을 더하고, 컷을 1초에 다섯 번씩 갈아치우는 영화가 됐습니다. 액션배우보다 카메라를 더 흔들어대기 시작하자 그 뒤에 나온 영화들, 굿 데이 투 다이 하드는 그냥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힘든 영화의 대명사가 됐고,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화면이 그저 진동하는 색 덩어리처럼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본 시리즈가 혁신으로 만든 그 자리에, 본 시리즈의 흉내쟁이들이 우글우글 들어차서 다시 천편일률의 늪을 만든 셈입니다. 액션 장르가 혁신가의 시체 위에서 길을 잃었다고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본 시리즈가 도장을 깨러 들어와서 새로운 도장을 차렸는데, 그 도장이 다시 깨져야 할 새로운 도장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키아누는 2014년 시점에서 이미 "전성기 지난 배우" 카테고리에 안착해 있었습니다. 소위 와패니즈 영화 47로닌이 막 폭망하고 나온 직후였고 (약 1억 5,000만 달러 손실) 매트릭스 이후 그의 단독 주연작은 거의 모두 흥행에 실패한 상태였습니다. 이미 당시에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근육질의 잘생긴 미남들(크리스 햄스워스나 크리스 에반스 등)이 주연을 맡는 시절이었고, 전성기가 많이 지난 키아누는 그저 웃기게 생긴 아저씨였을 뿐이었습니다. 존 윅의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와 데이빗 레이치는 무려 스턴트맨 출신으로 극장용 장편이 처음인 신인이었습니다. 예산도 (할리우드치고는)저예산에 성인 미만 시청불가인 R등급을 받아 흥행에서도 혼자 핸디캡을 걸고 들어간데다, 시나리오는 "개 복수극"이라는 한 줄로 요약 가능했습니다. 폭망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비관은 합리적이었습니다. 다만 그 계산에는 결정적인 변수 몇 개가 빠져 있었습니다.. 종이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 무엇이 특별했는가 존 윅의 진짜 혁신은 시나리오 텍스트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만 본 사람들은 모두 틀렸습니다. 그것은 화면을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스턴트맨 출신 감독의 철학적 전환. 채드 스타헬스키는 매트릭스에서 키아누의 스턴트 대역을 했던 사람입니다. 즉, 키아누가 떨어질 때 대신 떨어지고, 키아누가 맞을 때 대신 맞아주던 사람이 어느 날 카메라 뒤에 선 것입니다. 그가 가져온 변화는 기술이 아니라 시각이었습니다. 기존 감독들 대부분은 액션을 "감춰야 할 결함"으로 봤습니다. 배우의 한계, 안전상의 한계, CG의 어색함을 가리기 위해 카메라를 흔들고, 컷을 잘게 쪼갰던 것입니다. 마치 디저트 위에 휘핑크림을 잔뜩 얹어 빵의 모양을 가리는 베이커리 같은 접근이었죠. 스타헬스키는 정반대였습니다. 액션은 그 자체로 예술이고, 카메라는 그것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도구여야 한다는 신념. 자기가 평생 몸으로 만들어온 것을 비로소 화면에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게 된 사람의 시각이었습니다. 평생 호텔 주방에 갇혀 있던 서브 요리사가 처음으로 자기 가게를 차린 셈입니다. 건푸(Gun Fu)의 완성. 이 시리즈가 액션 영화 역사에 남긴 가장 큰 유산입니다. 총과 쿵푸를 결합해 과거 홍콩 영화의 구도를 가져오되, 일본 무술 기반의 짧고 선형적인 동작에 총기 액션을 결합한 새로운 문법으로, 여기서 핵심은 재장전마저 안무가 된다는 점입니다. 적을 향해 한두 발 쏘고, 몸을 회전시키며 빈 탄창을 빼고, 새 탄창을 끼우면서 다른 적을 발로 차고, 다시 정조준해서 두세 발. 이 모든 동작이 끊김 없는 한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흔들리지 않는 카메라로 적나라하게, 길게 보여줍니다. 이후 아토믹 블론드, 노바디, 익스트랙션, 노 타임 투 다이가 모두 이 문법을 차용했습니다. 롱테이크의 귀환. 셰이키캠이 캐릭터의 혼란을 전달했다면, 고정된 롱테이크는 관객을 다시 구경꾼의 자리로 돌려놓습니다. 관객은 존 윅과 적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조용히 충돌을 기다리고, 마침내 일어나는 폭력의 안무를 감상합니다. 존 윅의 클럽 시퀀스가 영화 학교 교재에 실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카메라가 한 번도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키아누가 진짜로 그 동작을 다 했다는 사실이 한 컷에 통째로 박혀 있습니다. 셰이키캠 시대의 액션이 "빠른 편집으로 만든 환영"이었다면, 존 윅의 액션은 "긴 호흡으로 보여주는 진짜"입니다. 그 차이를 관객은 의식하지 못해도 몸으로 느낍니다. 설명하지 않는 세계관. 컨티넨탈 호텔이 무엇이고, 금화가 어떻게 작동하며, 하이 테이블이 왜 권위가 있는지 — 1편은 단 한 번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그냥 그것을 당연한 듯이 사용하고, 관객은 "아, 저게 룰이구나"를 직감으로 짜맞춥니다. 설명을 안 듣고도 규칙이 있다는 걸 직감한 관객이 오히려 몰입을 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친절한 영화와 종이 한 장 차이가 되는 이 아슬아슬한 선을 존 윅은 기가 막히게 타냈습니다. 액션 영화의 대들보가 되기까지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만든 결과는 단순한 흥행 그 이상이었습니다. 존 윅은 액션 영화의 시간을 "존 윅 이전"과 "존 윅 이후"로 나눠놨습니다. 흥행성과.1편의 8,600만 달러 → 2편 1억 7,400만 달러 → 3편 3억 2,700만 달러 → 4편 4억 4,700만 달러. 매 편 거의 두 배씩 뛰는 계단식 상승. 그러는 동안 평론 점수도 함께 올랐습니다. 4편의 로튼 토마토 신선도는 시리즈 최고를 찍었습니다. 보통 시리즈가 4편째에 받는 평이 "이제 그만 좀 해라"인 것을 생각하면, 흥행과 평가가 동시에 4편 연속 우상향한 시리즈를 다른 곳에서 찾아보세요. 거의 없습니다. 장르 문법의 재정의. 존 윅 이후 거의 모든 메인스트림 액션 영화가 이 영화의 안무 언어를 차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데이비드 레이치는 아토믹 블론드, 데드풀 2,...
교양과 투자론
2026. 06. 01
116
43
1,191
'소외'로 코스닥을 설명할 순 없다
교양과 투자론
2026. 05. 11
39
13
314
재미로 읽는 맥도날드 이야기
교양과 투자론
2026. 05. 08
147
31
1,481
진짜는 드론이다
교양과 투자론
2026. 04. 29
90
48
912
존 윅, 예측에 대한 예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