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슈크림빵입니다.🧁
오늘은 반도체 산업에서 4월 말에 있었던 흥미로운 사건 하나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두 거대 기업의 이야기인데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두 회사를 짧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ASML은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노광장비 기업입니다.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EUV 장비를 전 세계에서 사실상 혼자 만드는 회사이며, 유럽 상장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이 가장 큰 곳이기도 합니다.
TSMC는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입니다. 다른 회사가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받아 생산하는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애플, 엔비디아, AMD 같은 굵직한 회사들이 모두 이곳에 칩 제조를 맡깁니다.
이 두 회사는 보통 가장 끈끈한 동맹 관계로 묘사됩니다.
ASML은 가장 비싼 장비를 팔고, TSMC는 그 장비로 가장 어려운 칩을 만듭니다. 그런데 4월 23일, 이 동맹 사이에 작지 않은 균열이 드러났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건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지난 4월 23일, 유럽에서 가장 비싼 기업의 시가총액 약 143억 유로(약 17조 원)가 단 하루 만에 증발했습니다.
주인공은 네덜란드의 노광장비 기업 ASML입니다.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의외로 경쟁사 CEO가 아니라, ASML의 가장 큰 고객인 TSMC의 부 최고운영책임자 케빈 장(Kevin Zhang)이었습니다.
그는 4월 22일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TSMC 북미 기술 심포지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ASML이 야심차게 내놓은 차세대 노광장비, 이른바 High-NA EUV 장비를 2029년까지 도입할 계획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너무 비싸다는 것입니다.
이 한마디에 시장이 흔들린 이유는 무엇이고, TSMC의 결정은 반도체 산업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ASML의 High-NA EUV가 어떤 기술인지, TSMC가 왜 거절했는지, 그리고 인텔과 삼성은 왜 정반대의 길을 가는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기술의 기본부터 짚어보겠습니다.

EUV는 Extreme Ultraviolet의 약자로, 13.5나노미터 파장의 극자외선을 사용해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인쇄하는 기술입니다.
5나노미터 이하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공정이며, 현재 이 장비를 양산하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ASML 단 한 곳입니다.
기존 EUV 장비(NXE 시리즈)는 개구수(Numerical Aperture, 줄여서 NA)가 0.33입니다.
개구수는 렌즈가 빛을 얼마나 넓은 각도로 모을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값으로, 숫자가 클수록 더 미세한 패턴을 인쇄할 수 있습니다.
ASML이 새로 내놓은 EXE 시리즈, 즉 High-NA EUV 장비는 이 개구수를 0.55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개구수(NA)와 해상도, 한 줄 정리
광학에서 개구수가 커지면 렌즈가 받아들이는 빛의 각도가 넓어지고, 더 작은 회절 한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즉 더 작은 패턴을 더 또렷하게 인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개구수가 커지면 광학계 전체의 크기와 무게, 정밀도 요구도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이 변화의 결과로 NA 0.33 EUV가 한 번에 인쇄할 수 있는 최소 피처는 13나노미터였지만, NA 0.55 High-NA EUV는 8나노미터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이 8나노미터라는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1.4나노미터 로직 노드와 차세대 DRAM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해상도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인 도약은 인상적이지만, 그만큼 장비도 거대해졌습니다.
ZEISS가 공급하는 조명계의 무게는 약 6톤으로 기존 대비 4배, 투영 광학계는 약 12톤으로 7배에 달합니다. 부품 수는 4만 개를 넘습니다.
가격도 따라서 폭등했습니다. High-NA EUV 한 대의 가격은 약 3억 5천만에서 4억 유로(약 5천억 원에서 6천억 원) 수준입니다. 첨단 팹 한 곳에 수십 대가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팹의 노광장비 비용만으로도 십수조 원이 됩니다.
ASML은 2023년 12월 인텔에 첫 R&D 모델인 EXE:5000을 출하했고, 2025년 말부터는 양산용 EXE:5200B의 공급을 시작했습니다.
(요약: 좋아졌다. 대신 엄청 비싸졌다)
이제 본격적인 사건의 무대였던 4월 22일 TSMC 기술 심포지엄으로 가보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TSMC는 2029년까지의 공정 노드 로드맵을 공개했습니다. 핵심은 다음 표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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