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철학'이라는 용어. 밸리 검색창에 적어보면 많은 글이 나옵니다. 투자 철학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글과 자신의 투자 철학을 정리해서 기록해두는 유익한 글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글은 투자 철학이 어떤 것이다, 라는 종류의 글은 아닙니다.
그런데 '철학'이라는 용어를 투자라는 행위에 붙이는 것.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홍진채 님의 책 '주식하는 마음'에 나오는 투자 철학에 대한 주장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아마 뉴런 분들은 다 아시는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주식하는 마음 (홍진채) 챕터 6 > 있어 보이지만 위험한 격언들 177쪽~
투자에 대한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갖추어라."
그런데 저는 투자 철학이 무슨 말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도통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투자 철학이 무엇입니까?"라고 흔히들 묻습니다. 그리고 흔히들 대답합니다. "평생 가져갈 수 있는 기업을 찾아 장기 보유합니다." "훌륭한 경영진이 있는 기업에 투자합니다."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하고 적절히 대응합니다."
어찌보면, 이 장 전체에서 다루고 있는 격언들이 모두 누군가가 자신의 투자 철학이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저는 투자에 '철학'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이 불편합니다. '철학자'라고 하면 진리를 탐구하는 고고한 학자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투자는 돈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내 자산을 다른 누군가에게 비싸게 팔아먹을 방법을 궁리하는 행위입니다. 투자를 돈놀이를 넘어서 영적인 행위로 승화한 존 템플턴 경 같은 분도 계시긴 하지만, 극히 이례적인 경우죠.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을 연구하고 인간의 인지적 한계와 편향된 사고를 연구하지만, 그 귀결점은 늘 남들의 잘못으로부터 내가 이득을 취하는 것입니다. 나의 행동을 철학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는, 이 냉정한 진실로부터 눈을 가리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진실에서 눈을 돌리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투자 철학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 현실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투자 철학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는 투자자들은 대개 자신의 저조한 성과를 그 단어로 감싸려 합니다. 일테면 이런 식으로 말하죠. "지금은 일시적으로 시장이 왜곡되어 있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나는 투자 철학을 지켜야 한다. 시장의 변화에 흔들리며 철학을 그때그때 바꾸는 것은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다."
참으로 난감한 말입니다. 투자의 기본은 불확실성입니다. 누가 무엇을 정확히 알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의 고정된 철학으로 모든 시대를 극복할 수 있나요? 유연함이 결여된,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철학은 그냥 '고집'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이라는 그럴싸하고 듣기 좋은 행동강령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원칙의 집합'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행여나 투자 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일이 있다면, 이 정의를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 챕터를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투자 철학을 갖추라는 조언은 대체로 유용하지 못하며, 그보다는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원칙의 집합'을 갖추라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생존 편향과 운에 의해 성공한 사례를 실력으로 착각하여 이를 기반으로 일반화된 철학을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저는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홍진채 님의 컨텐츠를 열심히 시청하는 팬이지만, 이 내용을 읽을 때는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누가 틀렸다 맞다의 영역은 아닙니다. 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