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은 본업이나 그 외에 스스로 기술을 갈고 닦은 어떤 분야에서 갑작스러운 입스를 겪어보신 적이 있나요?
입스(Yips)란 다른 말로 '정신신경근육 장애'라고도 불리며, 주로 '특정 스포츠나 기술을 수행하는 선수가 극심한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갑자기 실력 발휘를 못하게 되는 현상'을 포괄적으로 의미합니다. 특히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골프나 야구에서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고, 그 외에 양궁, 배드민턴, 피아노 연주 등 기술의 세밀함이 요구되는 그 어떤 영역에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중에게 조금 더 잘 알려진 '슬럼프'와의 차이점은, 슬럼프는 전반적인 활동에 일시적인 저하가 생긴 현상인 반면 입스는 조금 더 지엽적으로 특정 동작이나 기술에 무기한적이고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 현상을 의미합니다.
입스에 걸리게 되면 그 선수에게는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과거 수천, 수만 번 반복했던 정교한 동작을 어느 날 갑자기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그 이유에는 심리의 비중이 클 수도, 신경 근육의 비중이 클 수도 있지만, 어느 이유가 크던 간에 선수에게 치명적인 실력 저하를 가져온다는 점은 같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선수나 피아니스트가 프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골프에서의 입스를 주로 연구한 Smith Adler 에 의하면 (논문 링크), 입스는 그 핵심 원인에 따라 타입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Type 1: 신경학적 원인으로, 근육 경련과 떨림, 굳어짐 등의 물리적 증상을 겪는 경우
Type 2: 심리적 원인으로, 과도한 의식적 통제로 인해 정상적인 기술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Type 1 입스의 예시로 피아니스트계의 거장 레온 플라이셔를 들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레온 플라이셔의 인생)

'왼손의 거장'으로 불리는 레온 플라이셔 (1928~2020)
레온 플라이셔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젊은 라흐마니노프'라고 불리는 등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37세의 나이에 오른손 넷째, 다섯째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근육 수축을 겪으며 심각한 퍼포먼스 저하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았던 그는 왼손으로만 곡을 연주하는 스킬을 연마하여 그 후로도 30여년 간 피아니스트계에서 살아남았고, 그와 별도로 고통스러운 의학적 노력 끝에 결국 67세의 나이에 오른손 감각을 다시 회복하여 양손 연주를 해내는 데에 이릅니다. 그가 각고의 노력으로 76세의 나이에 양손 연주곡을 음반으로 내놓았을 때, 전 세계의 팬들은 감동의 물결 속에 엄청난 판매량으로 화답했습니다. 얼마나 화제였냐면, 피아노 독주 앨범으로는 아주 이례적으로 당시 빌보드 클래식 앨범 차트에서 5위권에 진입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화제의 음반 명은 다름아닌 'Two Hands' 였죠.
왼손으로 연주를 해내며 여전히 정상의 무대에 서 있었지만, 그 30년 동안 화려한 조명 뒤에서 그가 겪었을 정신적인 괴로움과 스트레스는 제가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내려치며 괴로워했을 거장의 모습만이 허공에 떠오릅니다. 생각해보면 입스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번 걸리면 암처럼 답답하고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괴로움이 클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Type 2 입스의 예시를 위해 1995년의 미국 프로농구(NBA)로 넘어가봅니다.
농구에는 '자유투(Free Throw)'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공격자가 슛 동작을 하다가 파울을 얻으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정해진 위치에서 자유롭게 슛을 던져서 득점을 할 수 있습니다. 상대 선수의 방해가 없기 때문에 자유투는 다른 일반적인 슛들보다 성공률이 훨씬 높습니다. (2024년 NBA 선수들이 기록한 자유투 성공률은 78.2%입니다)
그런데 1995년 NBA 결승전에서 올랜도의 스타 선수 닉 앤더슨이 자유투로 인해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결승 1차전의 4쿼터 승부처에서 그가 얻은 4개의 자유투를 모두 놓친 것이죠.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고, 이 결정적 자유투 실패로 인해 팀은 패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경기가 분수령이 되어 결승 시리즈에서 팀은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채 4연패를 하며 준우승에 그치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닉 앤더슨에 대한 팬들의 분노는 들끓었고, 그는 이제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다른 슛보다 더 쉬워야할 자유투가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고, 자유투 위치에 서있는 그의 귓속엔 팬들의 악담과 분노가 윙윙거렸습니다. 아무도 방해를 하지 않는 그 자유투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결국 1996년부터 그의 자유투 성공률은 프로 선수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자유 낙하했고, 그로 인해 그의 커리어는 서서히 저물어 갔습니다.

1995년 트라우마를 겪은 바로 다음 시즌인 1996년에 40.4%로 처참하게 무너진 자유투 성공률. 이 성공률은 리그 최하위 수준이었고, 이로 인해 선수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생기게 됩니다. (출처: Basketball Reference)
이렇게 두 사례를 통해 자신감이 넘치고 실력이 있는데도 몸이 따라주지 않고 마치 저주에 걸린 듯 신경이 마비되는 타입 1 입스와, 몸은 멀쩡하지만 트라우마와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실력 발휘를 전혀 하지 못하는 타입 2 입스의 예시를 알아봤습니다. 어떤 타입이든 프로에겐 치명적이며, 회복의 가능성은 개인차가 큽니다. 닉 앤더슨처럼 영영 실력을 복구하지 못하고 사라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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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자유투는 릴리즈 같은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부분이 굉장히 크게 영향을 미치다보니, 슈팅 코치들은 자유투 성공률 낮은 선수들에게 자신만의 자유투 루틴(Free throw routine)을 만들게끔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심호흡 한 번, 공을 세번 튕기고, 공을 손 안에서 스핀시킨 뒤 릴리즈, 이런식으로 루틴을 만들어 그 행동 자체에 집중하다 보면 외부 변수들(관중의 방해)의 영향을 덜 받게 된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그 자기강화가 강해지면 역으로 그 루틴을 방해받으면 성공률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이들 있더라구요. NBA에서도 자유투 루틴이 너무 긴 선수들은 상대편 선수들이 심판에게 항의해서 압박을 넣으면 멘탈이 부서져서 성공률이 오락가락하고 그런 경우도 많았습니다. 투자에서도 자신의 프레임화 된 사고흐름으로 매매해야 외부 다른 변수들로부터 단단해질 것 같아서, 프레임을 짜려고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짜는 것도 어렵고, 그걸 지키는 것은 더 어렵고. 내가 하려는 매매에 필요한 정보외에도 끊임없이 정보가 들어와서 그런 것 같은데, 본문에 내용대로 K.I.S.S를 기억해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오 911님 농구 전문가이신가요..멋있습니다. 자유투가 수 많은 관중들 앞에서 이목이 집중되기 때문에 사실 멘탈이 약한 선수들에게는 꽤 어려운 동작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니 심리적인 면에서 자유투와 투자 매매가 연관지어서 재밌는 생각들을 해볼 수 있겠네요. 좋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일단 입스든 슬럼프든 실력을 갈고 닦은 이후에 저는 생각해봐야 할듯여..ㅎㅎ

너무 겸손하신 것 아닌지요!

Valley에 너무 훌륭한 분들이 많아서.. 하지만 그래서 배울 점 많아 행복합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예전에 읽었던 천장팅의 주식투자의 지혜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특히 "주식투자의 지혜"에서 언급한 "투자 공부는 얇은 것에서 두꺼운 것으로, 두꺼운 것에서 다시 얇은 것으로 가는 과정이다"라는 말이 기억나는데 이 말 안에 서운님이 말씀하신 투자에서의 입스와 투자의 숙련단계가 함축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식의 단순하고 '얇은' 지식으로 접근합니다. 하지만 이내 시장의 복잡성을 마주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종 기술적 지표, 기본적 분석, 거시 경제 등 수많은 기법과 지식을 배우며 '두꺼워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문제는 이 '두꺼운' 단계에서 발생합니다. 말씀하신 '투자의 입스(yips)'가 바로 이 지점일 것입니다. 너무 많은 정보와 기교가 머릿속에 혼재하다 보니, 오히려 서로 충돌하며 결정을 방해하는 '분석의 마비' 상태에 빠지는 것이죠. 이는 두꺼워지기는 했으나, 아직 그것을 체화하여 다시 '얇은' 본질로 돌아가지 못한 '중간 단계'에 머무른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경험을 갈고 닦는 이유는, 그 모든 복잡하고 '두꺼운' 지식들을 거쳐, 마침내 자신만의 확고한 원칙과 본질만이 남은, 간결하고도 강력한 '얇은' 통찰에 도달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을오징어님,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쓴 내용들이 을오징어님 프레임을 거쳐서 더 멋지게 표현이 되니 뭔가 기분이 좋네요. 많이 배웁니다. 얇은 본질에 대해 저도 한 번 더 고민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