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말의 해에 살펴본 6천만 년 말(馬)의 역사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붉은말의 해 병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 시간에는 말의 기원을 시작으로 인류의 문명과 함께 해온 말의 역사, 그리고 제주마의 유래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말이 음식 문화에 끼친 영향과 말의 품종, 그리고 덕력으로 살펴본 일본의 유난한 경마사랑과 마력을 넘어선 새로운 힘의 단위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제6부: 세계의 명마들, 품종의 역사
Chapter 22. 아라비아마: 승용차의 어머니
4,000-5,000년의 역사를 지닌 아라비아마는 가장 오래된 말 품종 중 하나입니다. 아라비아 반도의 베두인 유목민들이 선택적 교배를 통해 발전시켰으며, 최고 순혈종은 '아실(Asil)'이라 불렸습니다. 유명한 알 캄사(Al Khamsa) 전설에 따르면, 예언자 무함마드가 용기와 충성심으로 선발한 다섯 암말에서 주요 혈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TMI: 알 캄사(Al Khamsa): 목마름보다 강한 충성심
앞서 서양 기사들은 공격성이 강한 수말(종마)을 선호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중동의 아라비아 기병들은 수말 대신 암말(Mare)을 전쟁터에 데려가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선택의 기원이 되는 전설이 재미있습니다.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예언자 무함마드는 어느 날 사막을 횡단하는 긴 여정 끝에 오아시스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인 말들은 물 냄새를 맡자마자 미친 듯이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말들이 물에 도착하기 직전, 무함마드는 전투 나팔을 힘껏 불었습니다. 이것은 곧 "돌아와라"는 명령이자, 충성심의 시험이었습니다. (아니, 이런 X개 훈련을…)
갈증에 눈이 먼 대부분의 말들은 나팔 소리를 무시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오직 다섯 마리의 암말만이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참으며 주인에게 되돌아왔습니다. 생존 본능을 이긴 충성심이었습니다.
무함마드는 감동하여 이 다섯 암말에게 축복을 내리고 '알 캄사(Al Khamsa, 다섯)'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암말들을 모든 번식의 기초로 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각 암말의 목에 엄지손가락을 대어 축복의 표시를 남겼는데, 오늘날에도 아라비아 말의 목에서 발견되는 근육의 작은 움푹 들어간 부분을 '예언자의 엄지 자국(Prophet's Thumbprint)'이라 부릅니다.
예언자의 엄지 자국(Prophet's Thumbprint) / 무함마드가 찜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 다섯 암말로부터 아라비아 말의 5대 혈통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케헤일란(Kehilan), 세글라위(Seglawi), 아베얀(Abeyan), 함다니(Hamdani), 그리고 하드반(Hadban). 역사학자들은 이 전설의 사실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야기가 담고 있는 교훈만큼은 분명합니다. 베두인 유목민들에게 암말의 충성심은 종마의 공격성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습니다.
암말을 선호한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암말은 수말보다 조용해서 기습과 야습이 많은 사막 전투에서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적었고, 이동 중에도 멈추지 않아 부대 기동력 유지에 유리했습니다.
또한 암말은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했기에 발정기가 와도 통제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반면 수말은 발정기 암말의 냄새만 맡으면 이성을 잃었습니다. 아라비아 기병대는 이 차이를 전술로 활용했습니다. 의도적으로 발정기 암말을 전투에 투입하여 적군의 종마들을 교란시킨 것입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에서 유럽 기사들은 거대한 종마에 올라탔습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가 창을 들고 돌격하면 그 위력은 살아있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어 아라비아 기병들이 화살을 쏘고 재빨리 물러나면, 십자군의 종마들은 암말의 냄새를 맡게 됩니다. 테스토스테론 덩어리인 종마가 발정기 암말을 코앞에서 마주친 것입니다. 기사들의 명령이고 뭐고, 저 암말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라비아 기병대는 신호에 맞춰 암말들을 풀어 풀을 뜯게 했다가 다시 군영으로 불러들이는 훈련을 철저히 시켰습니다. 알 캄사 전설처럼 나팔 소리 한 번이면 암말들은 충성스럽게 주인에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십자군의 종마들은 암말을 따라 사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갑옷 입은 기사들은 말없이 사막 한가운데 남겨졌습니다.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살라딘이 십자군을 대파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십자군의 패배에는 물 부족, 지형의 불리함, 살라딘의 뛰어난 전략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소개팅을 하고 싶은 수말의 터질듯한 욕구를 제어하지 못한 '생물학적 교란 작전'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터질 것 같은 내 심장은 날 미치게 만들 것 같았지만
난 이제 깨달았어. 았어. 날 사랑했다는 것을”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유럽인들은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무서운 말이 승리를 보장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막의 베두인들은 더 충성스럽고, 적의 말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말이 진정한 승리의 열쇠임을 알았습니다. 테스토스테론으로 무장한 유럽의 종마들은 사막에서 암말들의 향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발정이 이성을 이긴, 그래서 전쟁의 승패까지 뒤바꾼 이야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성을 제어하지 못하면 큰 낭패를 봅니다.
아라비아마의 일부 개체는 요추 5개(일반 6개), 늑골 17쌍(일반 18쌍)을 가진 독특한 해부학적 특성을 보입니다. 체고 14.1-15.1 핸드(145-155cm), 체중 360-450kg의 비교적 작은 체구이지만, 높은 골밀도와 강한 관절로 큰 품종에 필적하는 힘을 냅니다. 오목한 얼굴 윤곽(dished profile), 높이 치켜든 꼬리, 넓은 이마 사이의 돌출부(jibbah)는 사막 기후 적응의 결과입니다.
아라비아 혈통은 거의 모든 현대 승용마 품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러브레드의 3대 종마 모두 아라비아/바브/터크 혈통이며, 아메리칸 쿼터호스, 모건, 올로프 트로터, 트라케너, 심지어 중량마인 페르슈롱까지 모두 아라비아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아라비아마는 내구력 경주(endurance riding)를 지배하며, 160km를 하루에 주파하는 테비스 컵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입니다.
또한 유전병도 적고, 쾌활하며, 개만큼 인간과 친해질 수 있으며 훈련이 쉽고 무엇이든 시키면 열심히 해서 ‘말계의 보더 콜리’로 칭송받습니다.
Chapter 23. 서러브레드: 세 마리 종마의 전설
현대 경주마의 대명사 '서러브레드(Thoroughbred)'는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직 '더 빠른 속도'를 위해 17-18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인공의 산물입니다. 모든 현대 서러브레드는 단 세 마리의 종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이얼리 터크(The Byerley Turk, c.1680-1703)
가장 먼저 도입된 기초 종마입니다. 1686년 부다 전투에서 노획되어 로버트 바이얼리 대위의 군마로 아일랜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한 전투에서 바이얼리는 "말의 뛰어난 속도 덕분에 포로 신세를 면했다"라고 합니다. 1693년 종마로 은퇴하여 1703년까지 활동했습니다. 그의 후손 헤로드(Herod, 1738)는 현대 서러브레드의 3대 부계 혈통 중 하나를 형성했습니다.
달리 아라비안(The Darley Arabian, c.1700-1730)
가장 영향력 있는 기초 종마입니다. 1700년 1월 4일 시리아 알레포에서 태어나, 영국 영사관 소속 토마스 달리가 당시로서는 큰 키인 15 핸드의 이 말을 소총 선적과 교환하여 구입했습니다. 1704년 영국으로 수입되었습니다.
그의 증증손 이클립스(Eclipse, 1764)는 19전 전승으로 은퇴했으며, 경쟁자가 없어서였습니다. "이클립스 1위, 나머지는 보이지도 않는다(Eclipse first and the rest nowhere)"는 유명한 말이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현대 서러브레드의 80%가 이클립스의 혈통을 잇고, 95%가 달리 아라비안의 Y염색체를 물려받았습니다. 트리플 크라운 우승마 세크리테리엇과 아메리칸 파로아도 그의 후손입니다.
고돌핀 아라비안(The Godolphin Arabian, c.1724-1753)
1724년경 예멘에서 태어나 튀니스의 베이, 프랑스 루이 15세를 거쳐 영국으로 왔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파리에서 짐마차를 끌었다고 합니다. 작은 체구로 처음에는 저평가되었으나, 종마로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의 손자 매첨(Matchem, 1748)은 1771-1786년 16년 연속 챔피언 종마를 차지했습니다. 맨오워, 워어드미럴, 시비스킷이 그의 후손입니다.
좌부터: 바이얼리 터크, 달리 아라비안, 고돌핀 아라비안
서러브레드는 56-72km/h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 2008년 위닝 브루가 세운 70.76km/h가 최고 기록입니다. 세크리테리엇은 1973년 벨몬트 스테이크스에서 31 마신 차로 우승하며 아직도 깨지지 않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다만 이처럼 극단적인 속도 추구는 말이 감당하기 힘든 골격계 부담을 낳아 잦은 부상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Chapter 24. 유럽의 명마들: 전쟁터에서 마차까지
안달루시아마(Andalusian Horse): 유럽 왕실의 말
스페인 남부 선사시대 20,000-30,000년 전 동굴 벽화에서 조상을 찾을 수 있으며, 15세기부터 독립 품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567년 펠리페 2세가 '푸라 라사 에스파뇰라(PRE)' 육종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와 우수에 찬 눈빛, 온순한 성격과 높은 지능으로 "유럽의 왕실 말"로 불리며 대륙 전역의 귀족과 왕이 타고 외교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1580년 카를 2세 대공이 안달루시아마 9마리 종마와 24마리 암말을 슬로베니아 리피차로 가져가 리피차너(Lipizzan) 품종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185,000마리 이상 등록되어 있으며, 체고 15-15.5 핸드, 80%가 회색이며 머리가 좋아서 현대에는 마장마술, 투우, 승마, 공연 등 다방면에서 활약합니다.
프리지안마(Friesian horse): 중세 기사의 파트너
네덜란드 프리슬란트 지방 원산으로 4세기 AD부터 기록이 있습니다. 윌리엄 정복왕이 탄 말도 프리지안 타입으로 추정됩니다. 20세기 초 종마 단 3마리만 남아 멸종 직전까지 갔으나, 1913년 보호 협회가 설립되어 구출되었습니다. 현재 60,000마리 이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오직 흑색만 허용되며, 긴 갈기와 꼬리, 다리의 깃털 같은 털이 특징입니다. 영화 산업의 총아로 「왕좌의 게임」 등에 자주 등장합니다. 멸종 위기에서 할리우드 스타로 변신한 셈입니다.
잘생긴 건 알겠는데 말 주제에 인도영화 주인공처럼 너무 느끼한 거 아니냐
클라이즈데일(Clydesdale horse): 버드와이저의 얼굴, 말계의 갸루상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강 유역에서 17세기말 발전했습니다. 1806년 태어난 램피츠 메어(Lampits Mare)가 기초 암말로, 현존하는 거의 모든 클라이즈데일이 이 말의 후손입니다. 체고 16-18 핸드(163-183cm), 체중 725-1,000kg의 대형 품종입니다. 발굽 하나가 프라이팬 크기에 무게 약 2.3kg에 달합니다.
1933년 4월 7일 금주법 폐지를 기념하여 버드와이저가 클라이즈데일을 마스코트로 도입했습니다. 현재 회사가 200마리 이상 보유하며, 마차용 말은 18 핸드 이상(183cm), 816-1,043kg, 밤색 코트, 4개의 흰 양말, 흰 얼굴 줄무늬, 검은 갈기/꼬리가 필수 조건입니다. 1986년부터 슈퍼볼 광고의 단골입니다.
페르슈롱(Percheron): 프랑스의 만능 말
프랑스 노르망디 페르슈 지방에서 발전했으며,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 후 무어인의 바브 기병 종마가 토착 암말과 교배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1823년 태어난 장 르 블랑(Jean le Blanc)이 기초 종마로, 모든 현대 페르슈롱이 이 말의 혈통입니다. 체고 15-19 핸드, 체중 500-1,200kg으로 크기 변이가 큽니다. 다리에 깃털 장식이 거의 없어 클라이즈데일과 구별됩니다. 1930년대 미국 중량마의 70%가 페르슈롱이었으며, 디즈니랜드 퍼레이드 마차를 끄는 말로 유명합니다.
리피차너(Lipizzer horse): 나는 어둠에서 태어나 빛이 되리라!
1572년 비엔나에 설립된 스페인 승마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 승마 학교입니다. 리피차너는 밤색, 검은색, 쥐색 등 어두운 색으로 태어나 6-10년에 걸쳐 점차 하얗게 변합니다. 유전적으로는 회색(grey)이며, 회색 유전자가 시간에 따라 색소를 감소시킵니다. 드물게 성체까지 밤색을 유지하는 개체가 있으며, 스페인 승마학교는 전통적으로 "행운을 위해" 최소 한 마리의 밤색 종마를 유지합니다.
2차 세계대전 말, 나치 독일은 리피차너 번식 암말들을 체코슬로바키아 호스타우로 이전시켜 '아리아 말'을 만들려 했습니다. 소련군이 접근하자 독일 수의관들이 미군 2기병단에 연락했고, 올림픽 승마 선수 출신 조지 S. 패튼 장군이 구출 작전을 승인했습니다. 1945년 4월 28일 '카우보이 작전'으로 1,200마리의 말(리피차너 375마리 포함)이 구출되어 35마일 넘게 독일로 이동했습니다. 이는 미군과 독일군이 무장친위대(Waffen-SS)에 맞서 함께 싸운 단 두 번의 사례 중 하나입니다. 1963년 디즈니 영화 「흰 종마들의 기적」이 이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샤이어(Shire): 슈퍼 헤비급 챔피언
영국 중부 지방(The Shires)에서 유래한 이 품종은 '말 세계의 거인'으로 통합니다. 중세 기사들이 무거운 갑옷을 입고 탔던 '그레이트 호스(Great Horse)'의 직계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멸종 위기까지 갔으나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보존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압도적인 풍채 덕분에 승마용보다는 전시 및 퍼레이드용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1878년 영국 샤이어 호스 협회가 설립되었으며, 1760년대에 태어난 '패킹턴 블라인드 호스(Packington Blind Horse)'가 현대 샤이어 종의 기초 종마로 간주됩니다. 산업 혁명기에는 농경뿐만 아니라 운하의 배를 끌거나 맥주 마차를 끄는 등 영국 경제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체고는 평균 17-18 핸드(173-183cm)이나, 19 핸드(193cm)를 넘는 경우도 흔합니다. 무게는 보통 850-1,100kg에 달하며, 역사상 가장 컸던 '샘슨(Sampson)'이라는 샤이어는 체고 21.2 핸드(215cm), 체중 1,524kg을 기록했습니다.
클라이즈데일처럼 발목에 풍성하고 긴 털(Feathering)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모색은 주로 검은색, 갈색, 회색이 많습니다. 현재도 영국의 몇몇 전통 양조장들은 기계 대신 샤이어가 끄는 마차로 맥주를 배달하며 전통을 홍보합니다.
좌상으로부터 시계방향: 안달루시아, 프리지안, 클라이즈데일, 페르슈롱, 리피차너 1,2, 샤이어 1,2
Chapter 25. 아메리카의 말들: 스페인 정복자의 후예
무스탕(Mustang): 야생마가 된 정복자의 말
말은 아메리카에서 약 10,000년 전 멸종했다가, 1493년 콜럼버스의 2차 항해 때 돌아왔습니다. 1680년 푸에블로 반란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