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표어를 떼어 낼 시간

거짓 표어를 떼어 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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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2026.02.11조회수 117회

트럼프 관세 전쟁이 만든 각자도생의 세계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1월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한 연설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연단에 선 인물은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였습니다. 골드만삭스 출신의 경제 전문가로,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와 300년 역사상 최초의 비영국인 출신으로 영국 영란은행 총재를 지낸 인물답게 냉철하면서도 날카로운 그의 연설은 청중석을 가득 메운 세계 지도자들과 기업인들에게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앉아 있었습니다.

카니 총리의 연설은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았습니다. 그의 비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강대국"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경제적 강압"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때마다, 청중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미국 대표단 좌석을 향했습니다.


카니 총리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창문에 거짓 표어를 붙이는 일을 그만둬야 합니다."

이는 체코의 반체제 지식인 바츨라프 하벨이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할 때 사용했던 비유를 빌려온 것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창문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문구를 붙이는 채소 가게 주인은 그 문구를 믿어서가 아니라, 단지 권력에 순응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모두가 믿지 않는 거짓을 연기함으로써 체제는 유지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체코의 벨벳혁명을 주도하고 훗날 대통령에 오른 바츨라프 하벨



카니 총리는 지금의 국제 질서가 바로 그런 상태라고 진단했습니다. 모두가 "규칙 기반 국제 질서"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만, 아무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믿지 않으며 강대국은 자기 편의대로 규칙에서 면제받고, 약소국은 눈치를 보며 참고 또 참는 세상이 되었다고.


"이 암묵적인 약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돌리지 않고 바로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는 전환기에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알던 제도는 지금 이 순간 산산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연설이 끝난 직후에도 여유 있는 표정을 유지했지만 그날 밤, 그의 소셜 미디어는 불이 났습니다. 그린란드 인수 협상을 즉각 시작하겠다는 선언이 올라왔고, 캐나다가 중국과 손을 잡으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협박도 이어졌습니다.


"대화의 정신"이라는 공식 주제로 열린 다보스 포럼은 아이러니하게도 "단절의 현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은 2026년 초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무역 재편, 미국 빼고 돌아가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질서, 그리고 이것이 과연 제국의 종말인지, 아니면 또 다른 미국의 부활 전 진통인지를.


오늘 글은 여러 주제가 하나로 이어지는 긴 글이니만큼, 커피 한 잔 준비하시고, 편하게 앉아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1장. 트럼프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야기의 시작은 2025년 2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취임 2주 차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관세 폭탄을 발표했습니다. 대상은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중국.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25%, 중국에는 10%의 추가 관세가 부과되었습니다. 명분은 언제나처럼 "무역 적자 해소"와 "국내 제조업 보호"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2025년 4월 3일, 트럼프 행정부는 전 세계 183개국을 대상으로 10%에서 50%에 달하는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를 확정 공표했습니다. 미국에 제품을 팔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2018-2019년의 미중 무역전쟁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특정 국가가 아닌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한 ‘보편적 보호주의’의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관세를 ‘동맹국의 안보 분담’과 연계했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그동안 미국이 대신 나라 지켜주며 공짜 평화 누리고 그 돈으로 미국에 물건도 팔고 좋았지? 하지만 이젠 안 돼"라는 논리입니다. 경제와 안보를 하나로 묶어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이죠. 일견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표현은 일찍이 국제정치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트럼프의 입에서 이 협박이 나오자마자 전세계가 겁을 먹고 앞다투어 미국의 심기를 달래려 동분서주 뛰어다녔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의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2025년 5월: 인도의 깜짝 변신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각국을 겁먹게 했던 초반과 달리, 오히려 "미국 빼고 우리끼리 잘해보자"는 절박한 연대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외부의 압력이 가해질수록 내부 결속이 강해지는 물리 법칙처럼 말이죠.

특히 인도의 행보가 눈에 띕니다. 인도는 독립 이후 70년 넘게 철저한 보호무역 정책을 유지해 온 나라입니다. ‘외제 자동차에 110% 관세’, ‘수입 위스키에 150% 관세’ 같은 정책으로 자국 시장을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인도에서 수입차를 타는 건 그야말로 ‘부의 상징’입니다. 그런 인도가 2025년 5월부터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과의 FTA 협상을 시작으로, 연달아 5개국과 무역 협정 협상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극적인 변화는 EU와의 협상에서 나타났습니다. 19년간 지지부진하던 인도-EU 자유무역협정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갑자기 진전된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트집 잡아 높은 관세를 매기자, 인도는 "그래? 그럼 유럽이랑 더 친하게 지내야겠네?"라고 판단한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EU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어느 추운 겨울날 드라마에서 “나.. 사실 너 좋아해.”라고 남주가 말하자 여주도 “나도 사실 널… 좋아한단 말이야. 이 바보!”라며 서로를 껴안는 장면처럼 말이죠.


미국이 유럽에도 관세를 때리자, 유럽 역시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인도라는 거대 시장을 열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절박함이 드라마처럼 운명적으로 만난 것입니다.


2025년 세 가지 사건

그리고 2025년 말부터 2026년 초 사이에 놀라운 일들이 연달아 터집니다.

첫째, 인도-EU FTA 타결. 2007년부터 시작해서 무려 19년간 지속되던 협상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습니다. 인도는 EU산 자동차 관세를 110%에서 10%로 단계적 인하하기로 합의했고, 와인은 150%에서 20-30%로, 위스키는 150%에서 40%로 낮추기로 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지 감이 잘 안 오실 겁니다.

이것들은 지난 25년간 인도 정부는 "우리 농민과 제조업을 보호해야 한다"며 완강히 거부해 왔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완강함이 트럼프의 관세 한 방에 녹아버린 겁니다. 미국의 압박이 인도를 변화시킨 역설적인 결과입니다.


둘째, 메르코수르(Mercosur)-EU FTA 서명. 이건 더 드라마틱합니다. 1999년부터 시작된 협상이 무려 25년 만에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로 구성된 남미 경제 블록과 EU가 손을 잡은 것입니다. 세계 GDP의 약 30%, 7억 명 이상의 소비자를 포괄하는 거대 무역 블록의 탄생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TMI: 메르코수르 (MERCOSUR)

메르코수르(Mercosur)는 1991년 아순시온 협약을 통해 창설된 남미 공동시장으로, 회원국 간의 자유로운 무역과 인적 자원 이동을 목표로 하는 남미 최대의 경제 블록입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가 창립 회원국이며, 볼리비아가 2024년 7월에 정회원으로 공식 합류했습니다. 인구 약 2억 8천만 명, 국내총생산(GDP) 합계 약 3조 달러에 달하는 거대 시장으로, 전 세계 주요 농축산물 공급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베네수엘라는 2012년 가입했으나, 민주주의 원칙 위반 등의 사유로 2016년부터 회원 자격이 무기한 정지된 상태입니다.



이 협정이 25년간 막혀 있던 이유는 남미의 저렴한 쇠고기와 농산물이 유럽 시장에 쏟아지면 유럽의 농가가 몰락한다는 우려 때문에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헝가리 등이 번번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농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관세 위협이 더 무섭다"는 판단이 승리한 것입니다.


EU가 인도와 메르코수르와 맺은 두 협정을 두고 유럽 각국의 셈법은 서로 다릅니다. 격렬히 반대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과 달리 독일은 인도와 남미의 자동차 시장 확대에 군침을 흘리고 있고 스페인도 자국의 농산물과 공산품 수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메르코수르와의 FTA 협정의 최종 발효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들의 격렬한 반발로 인해 최종 의결이 무산되고 유럽 의회는 334표 대 324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 협정의 적법성을 유럽사법재판소(ECJ)에 회부하여 최종 법적 검토를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유럽과 남미의 거대한 경제 공동체의 탄생은 필연에 가깝습니다.


셋째, 캐나다와 중국의 밀착. 2026년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습니다. 이는 2017년 이후 무려 9년 만의 캐나다 정상의 방문이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에너지, 우라늄, AI 분야의 협력 양해각서가 체결되었습니다. 캐나다는 원유, LNG, LPG를 중국에 공급하기로 했고, 중국은 캐나다산 돼지고기, 카놀라, 해산물의 관세를 대폭 인하했습니다.


이는 매우 충격인 소식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캐나다 에너지 수출의 98%가 미국으로 향합니다. 사실상 미국 한 나라에 올인한 구조인데, 이제 그 구조를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미국이 우리를 홀대하면, 우리도 다른 손님을 받겠다"는 메시지입니다.


트럼프는 당연히 분노했습니다. "캐나다가 중국과 FTA를 체결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는 "중국이 캐나다를 산 채로 잡아먹을 것", "너희 사회 구조와 생활방식이 송두리째 파괴될 것"이라는 트럼프의 경고가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맞으면 맷집이 늘듯이 한 번 관세 협박을 당해본 나라는 다음번에는 덜 무서워합니다. "어차피 맞을 거, 맞으면서 대안을 찾자"가 되어버리는, 쓰면 쓸수록 효력이 떨어지는 관세라는 무기의 역설입니다. 관세를 높여서 미국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 했더니, 오히려 미국 없는 세계 경제 질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미국이 쏘아 올린 관세라는 "작은 공"이 전 세계 무역 체계라는 당구대에 부딪혀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2장. 채소 가게 주인의 반란

자, 이제 다시 2026년 1월 다보스로 돌아가 봅시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연설은 단순한 비판이 아닙니다. 그것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중견국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자 자립의 선언이었습니다. 사실 캐나다 총리가 이 말을 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캐나다는 수출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인 것은 물론 미국이 주축이 되어 영미권 5개국이 결성한 가장 핵심 정보를 공유하는 정보 동맹체인 'Five Eyes'의 멤버이기 때문입니다.



카니 총리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연설 초반에 하벨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채소 가게 주인이 매일 아침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문구를 창문에 붙이는 이야기 말입니다. 믿어서가 아니라, 모난 돌이 되기 싫어서.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그는 이것을 "거짓 속에 사는 삶(living within a lie)"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국제 질서가 바로 그런 상태라고 진단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캐나다와 같은 나라들은 소위 '규칙 기반 국제 질서'라는 체제 아래서 번영을 누렸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질서가 내세운 이야기 가운데 적잖은 부분이 진실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강대국은 자기들 편의대로 규칙에서 면제받기 일쑤였고, 무역 규칙도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한 고백입니다. 

"우리도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중심의 질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쓸모가 있었습니다. 미국이 공공재를 제공했기 때문이었지요."


미국이 제공한 공공재란 무엇일까요? 해상 무역로의 안전 보장, 안정적인 달러 기반 금융 시스템, 분쟁 해결을 위한 세계경찰 역할. 이런 것들입니다. 수십 년간 보안관 역할을 하면서 세계 경제가 돌아갈 수 있는 판을 깔아주었습니다. 물론 그 대가로 미국은 가장 큰 이익을 가져갔지만요.


"그래서 우리는 창문에 표어를 붙이고, 매일 의식에 참여했습니다. 이 질서가 말하는 세상과 진짜 현실의 차이를 모르지 않았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카니 총리는 이 암묵적 계약이 깨졌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암묵적인 약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돌리지 않고 바로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는 전환기에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알던 제도는 지금 이 순간 산산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그는 ‘전환(Transition)’이 아니라 ‘단절(Rupture)’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연설을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전환이라면 방향을 바꾸면서도 연속성이 유지됩니다. 하지만 단절은 다릅니다. 기존의 것이 완전히 깨지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카니 총리는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왜 단절될 수밖에 없는가?

카니 총리는 그 이유를 명확히 지적합니다.

"강대국들은 경제 통합이란 제도를 무기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관세를 이용한 압박, 금융 인프라를 동원한 협박, 공급망을 이용해 약점을 공략해 쥐어 짜내겠다는 엄포가 이어졌습니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공동 번영의 토대’가 아니라 ‘강압의 도구’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경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서로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네가 다치면 나도 다치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만 안 다치면 되니까"로 바뀌었습니다.


이건 게임의 룰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중견국들에게 새로운 전략을 제시합니다. 이른바 ‘가치 기반 현실주의(value-based realism)’라고 이름 붙인 접근법입니다.


가치 기반 현실주의란?

그는 캐나다는 원칙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길로 나아간다고 선언했습니다. 근본적인 가치들, 각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고, UN 헌장이 허락하는 한도 외에는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실용적인 자세를 잃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결합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지키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냉정하게 보겠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도, 트럼프식 거래적 현실주의와도 분명 다릅니다. 미국이 "거래"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중견국들은 "연대"의 논리로 대응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구체적인 행동들

카니 총리는 연설에서 캐나다가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는 정책들을 나열합니다. 유럽연합과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유럽 방위조달협약(SAFE)에도 참여합니다. 지난 6개월 사이 우리는 4개 대륙에서 12개의 무역·안보 협정을 맺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카타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새로 체결했고, 인도, 아세안, 태국, 필리핀, 그리고 메르코수르와의 FTA 협상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6개월에 12개 협정. 엄청난 속도입니다. 캐나다가 얼마나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중국과의 파트너십입니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인 캐나다가 미국의 최대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경제 협력이 아닌, 미국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입니다. 

"형님. 제가 언제까지나 형님 밑에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린란드와 나토

카니 총리는 바로 트럼프 옆에서 그린란드 문제도 직접 언급했습니다. (다른 걸 떠나서 정말 용감합니다)

"북극의 주권에 관해 우리는 그린란드와 덴마크를 확고히 지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린란드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는 온전히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사거나 빼앗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카니 총리는 정면으로 반박한 겁니다.


나토 헌장 5조에 대한 헌신도 재확인했습니다. 나토 헌장 5조는 회원국 중 하나가 공격받으면 전체가 대응한다는 집단방위 원칙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나토의 존재 의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유럽은 미국 돈으로 방위비를 충당한다"며 비난하는 상황에서, 캐나다는 "우리의 헌신은 변함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중견국의 선택지

연설의 핵심은 이 부분입니다.

"강대국끼리 경쟁하는 세상에서 그 사이에 낀 국가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강대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서로 경쟁할지, 아니면 강대국이 아닌 나라끼리 힘을 합쳐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낼지 말이죠."

이게 핵심입니다. 중견국들 앞에 놓인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습니다.


첫 번째 선택지는 강대국에 줄을 서서 눈치보기입니다. 기존 질서에 순응하면서 미국 편에 붙을지, 중국 편에 붙을지 선택하고, 선택한 쪽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남는 길입니다.


두 번째 선택지는 중견국끼리 연대하여 어느 한쪽에 종속되지 않고, 함께 힘을 합쳐 협상력을 키우는 제3세력을 만드는 길입니다.


카니 총리는 분명히 두 번째를 선택했습니다.

"각자 자기 요새를 쌓는 것보다는 공동의 회복력을 기르는 데 함께 투자하는 편이 훨씬 더 저렴합니다."

경제적 논리로도 연대가 유리하다는 겁니다. 혼자서 미국의 관세에 대응하는 것보다, 여러 나라가 함께 대응하는 게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죠.


테이블에 앉을 것인가, 메뉴에 오를 것인가

카니 총리는 강렬한 비유로 연설을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지 못한다면, 그건 우리가 메뉴에 올라와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는 냉정한 현실 인식입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두고 거래하게 된다는 것.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된다는 것.


그래서 그는 선언합니다.

"그게 곧 캐나다의 길입니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또 자신 있게 이 길을 선택합니다. 우리와 함께 가려는 모든 나라에 이 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캐나다는 위험한 도전을 시작하며 전세계 중견국가들에게 초대장을 내밀었습니다.


제3장. 미네소타의 총성

한편 글로벌 리더들이 미국에 반기를 들고 있을 때,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에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2026년 1월 7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 조나단 로스가 르네 니콜 굿이라는 37세 여성을 사살했습니다. 굿은 미국 시민권자였습니다.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시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불법 체류자가 아니었습니다. 국토안보부 장관은 법대로 처리했다고 주장했지만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에서는 다소 과잉 대응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미니애폴리스 시장 제이콥 프라이는 사건을 "무모하다(reckless)"고 비판했습니다. 미네소타주 일한 오마르 연방하원의원도 "ICE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라며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8일 후,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합니다.

2026년 1월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 ICE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국경순찰대 요원이 알렉스 프레티라는 37세 남성을 사살했습니다. 프레티는 중환자실 간호사였습니다. 그 역시 미국 시민권자였습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프레티는 먼저 후추 스프레이를 맞았고, 쓰러진 상태에서 여러 발의 총격을 받았습니다. 18일 만에 같은 도시에서 두 명의 미국 시민이 연방 요원에게 사살당한 겁니다.


분노의 폭발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폭발했습니다.

1월 20일에는 "ICE 테러를 멈춰라(Stop ICE Terror)"라는 슬로건 아래 전국적인 시위가 조직되었습니다. 1월 30일에는 "일도 학교도 쇼핑도 없는 날(No Work, No School, No Shopping)"이라는 이름의 전국 동맹휴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미니애폴리스 시장은 "수만 명이 평화롭게 행진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충돌도 있었습니다. ICE 요원들과 시위대 사이의 대치가 계속되었고, 미네소타주와 미니애폴리스시, 세인트폴시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ICE 요원들이 주민들의 시민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미니애폴리스 근교 브루클린 파크의 경찰서장 마크 브룰리는 기자회견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했습니다.

"주민들이 아무 이유 없이 정지당하고, 체류 자격을 증명할 서류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는 신고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비번 중이던 우리 경찰관들도 같은 일을 당했습니다."


미국 시민이, 그것도 경찰관이, 자기 나라에서 "서류를 보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지지율 추락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처참합니다.

CNN-SSRS 조사에 따르면, 굿의 사망 직후 미국인의 56%가 해당 사격이 "부적절한 무력 사용"이라고 답했습니다. 단 26%만이 "적절했다"고 봤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ICE에 대한 인식 변화입니다. YouGov 조사에서 47%의 미국인이 "ICE가 미국을 더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답했고, 34%만이 "더 안전하게 만들고 있다"고 봤습니다.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 트럼프의 이민 정책 지지율은 39%까지 떨어졌습니다. 취임 초기 51%에서 12% 포인트나 급락한 수치입니다. 58%의 응답자가 ICE의 단속이 "지나치다(t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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