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을 갚는 것은 그 대출의 이자만큼 무위험으로 수익을 주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효과를 준다.
신용화폐 시대에는 개인 자산에 대해 현금 저축 + 금융 자산에 나의 신용성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야 한다. 빚을 지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의 잠재가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1억의 빚을 없애는 것과 1억을 모으는 것을 동일시하라는 뜻이다.
빚을 갚는 것 자체가 절제의 우위를 쌓는 훈련이다.
대출을 받고 더 높은 수익을 내는 것으로 이자를 감당하려는 행위는 80년대 S&L 은행 위기와 같은 일이다. : 빚을 져서 투자하는 것은 우선 시간의 측면에서 불리하다. 이자는 확정적으로 반드시 생길 손실이며, 발생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익을 내야 하는 타임 리미트가 걸린 투자를 해야 한다. (수익이 날 때까지 대출을 유지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이는 손실이 복리적으로 커지는 효과를 낳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 수록 이자 비용을 뛰어 넘는 것이 어려워진다.)
대출 이자, 특히 물질화된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의 경우 예금 이자는 물론이고, 무위험 수익률보다 높기 마련이다. (은행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미국에 비해 담보가 없는 개인의 신용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자연히 미국 국채보다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된다.)
짧은 시간 내에 이자를 만회할 정도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높은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빚을 내서 투자한다는 사실 자체가 절제의 우위가 없음을 보여주기에, 높은 리스크와 무절제가 합쳐지면 거의 반드시 파산을 맞이하게 된다. 새벽의 세상과 절제의 우위
또한 반대로 높은 리스크에 무조건 높은 수익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오해에 기반하여 높은 리스크와 낮은 수익 가능성을 지닌 투자를 시행할 가능성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