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줄을 잘 서라고 하셨지.

단군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줄을 잘 서라고 하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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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히호호
2024.09.02조회수 5회

고려 고종은 10년이 넘은 몽골의 침입으로 인한 국난을 타개하기 위해 당시 태자였던 원종을 몽골에 대한 항복사절로 보낸다. 때는 1259년이다. 그런데 태자가 몽골로 가던 도중에 몽골제국의 황제인 몽케가 사망하게 된다. 몽골은 대칸이 죽으면 후계를 정하기 위해 모두 한데 모이는 전통이 있다. 이 전통때문에 유럽에서도 몽골군에게 헝가리 언저리까지 털렸다가 갑자기 몽골군이 사라지면서 전란을 피한 적이 있다.


이제 고려에서는 셈이 복잡해 지는거다. 바로 '누구에게 항복할 것인가 (어떤 줄을 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분명 이제 새로운 대칸이 서게 될것이고, 누구에게 붙느냐에 따라 향후 고려의 국운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온거다. 아무리 강화도에 천도해서 개긴다고 해도 이미 본토는 몽골군이 접수한거나 마찬가지고, 어찌되었건 항복하고 잘 마무리해야 더이상의 피해를 보지 않을 거 아닌가.


고려의 태자는 칸을 만나기 전에 엄청난 고민을 했고, 결국엔 쿠빌라이를 선택한다. 당시 몽골 제국 내부에서는 대체로 아리크부카가 정통성이나 여러모로 쿠빌라이보다 앞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 태자는 향후의 몽골 내부의 권력투쟁의 승자로 쿠빌라이에게 베팅을 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쿠빌라이는 원의 초대 황제가 된다. (이미 송나라는 끝났음)


나중에 고려는 항복한 국가이면서도 거의 유일하게 몽골제국에 완전히 복속되지 않은, (그나마 독립적인) 부마국의 위치로써 국가를 보존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다 쿠빌라이에게 잘보여서 된거다. 나중에 원이 자꾸 고려를 복속시키려고 했을때도 고려에서는 '아니 세조(쿠빌라이)께서 고려의 명맥을 유지하라 하셨는데, 님 세조의 유훈을 무시하시는 거임?' 이러면서 나라를 지켜왔다.


청나라 이야기를 해보자. 명은 여러명의 암군을 거치면서 점점 국력이 쇠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후금(여진족)이 부상하게 된다. 광해군은 이 시기에 명이 조만간 망할 것이고, 후금이 중원을 먹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대놓고 편들지 않는 애매한 (간잽이) 스탠스를 취했다. 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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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히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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