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 메모리 하나로 만든 코스피 8000. 누가 사고 누가 파는가.

[시리즈 연재] 메모리 하나로 만든 코스피 8000. 누가 사고 누가 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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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돈
2026.05.11조회수 1,019회


화면 캡처 2026-05-11 104619.png

출처: Valley AI 금융시장 현황, 섹터 히트맵https://www.valley.town/markets/sector-heat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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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이닉스! 삼성전자!

오늘도 코스피는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YTD 삼성전자 120%, 하이닉스는 170%. 증권가는 삼성전자 목표주가 50만원, SK하이닉스 300만원을 외치고 있다. "슈퍼사이클", "코스피 1만", "아직 저평가"라는 단어들이 주류 언론을 가득 채운다.

실적은 진짜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587조원에 육박하고, 2027년엔 768조원으로 전망된다. 불과 3개월 만에 실적 눈높이가 73% 이상 상향됐다.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성장이 HBM 수요를 끌어올리고, 범용 DRAM 가격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빅테크들의 CAPEX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그런데 뭔가 불편하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42%가 넘는다. 사상 최고치다. 코스피가 오른다는 건 사실상 이 두 종목이 오른다는 뜻이고, 이 두 종목이 내린다는 건 코스피가 내린다는 뜻이다. S&P 500에서 M7이 33%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고 집중도 우려가 나오는 미국과 비교해도, 코스피는 단 2개 종목이 42%다. 그것도 같은 산업, 같은 사이클, 같은 고객사를 가진 메모리 반도체 기업 둘이서.




2. 누가 사고, 누가 파는가

외국인 액티브: 팔되, 가르고 있다

올해 4월 초 기준,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를 42조원, SK하이닉스를 22조원 순매도했다. 합산 64조원으로 외국인 전체 유가증권시장 순매도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가장 정보력 있고 능동적인 글로벌 자금이 두 종목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5월 들어 패턴이 더 정교해졌다. 단순히 두 종목을 같이 파는 게 아니라 다르게 취급하기 시작했다. 5월 4~7일 외국인 순매수 1위 종목은 삼성전자였다. 1조5032억원을 사들였다. 반면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에 이름이 없었고, 오히려 SK하이닉스와 지주사 SK스퀘어를 합쳐 1조4500억원을 순매도했다. 삼성전자를 사면서 SK하이닉스를 파는 포지션 교체다.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삼성전자는 HBM 경쟁력 회복 여지가 남아 있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 SK하이닉스는 HBM 선두주자 프리미엄이 주가에 이미 충분히 반영됐다는 판단이다. 이건 골드만삭스가 최근 실시한 미국 투자자 서베이에서 "삼성전자를 SK하이닉스보다 선호한다"는 결과와 일치한다.

그리고 더 큰 그림에서도 같은 방향이 보인다. 외국인은 코스피 전반을 추종하는 미국 상장 ETF인 EWY에서 이달 1~7일 사이 10억 달러를 유출시키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주요 편입 종목으로 하는 반도체 특화 ETF에는 자금을 집어넣고 있다. 한국을 사는 게 아니라 메모리를 산다. 그리고 그 메모리 안에서도 이제 종목을 가리고 있다.

국내 기관 패시브: 기계적으로 사고 있다

이 랠리의 진짜 엔진은 국내 ETF 패시브 자금이다. 국내 ETF 시장 설정액은 지난 1년 만에 240조원 급증해 431조원을 돌파했다. 코스피 ETF 총자산의 상당 부분은 이 두 종목으로 흘러가는 구조다.

구조가 이렇다. 투자자가 ETF를 사면 운용사는 기초지수에 맞춰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기계적으로 사야 한다. 주가가 오르면 ETF 성과가 좋아지고, 성과가 좋아지면 자금이 더 들어오고, 돈이 들어오면 또 사야 한다. "ETF가 ETF를 부르는 순환 랠리"다. 외국인이 팔아도 지수가 오르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 구조에서 나온다.

문제는 이 자금이 가격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지금 비싸다, 싸다"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냥 사야 하니까 사는 거다. 스마트 머니가 아니라 메커니즘이다.

리테일: 현물 팔고 ETF로 갈아탄다

한국 개인투자자들은 4월 한 달간 유가증권시장에서 14조원을 순매도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현물을 직접 들고 사는 개인은 생각보다 적다. 대신 ETF로 갈아타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달 ETF 순매수만 2조원이 넘는다.

역설적인 장면도 있다. 한국 서학개미들이 미국에 상장된 DRAM ETF를 역수입해서 유입액의 10%를 사들이고 있다. 한국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미국 ETF를 사는 구조다.

티모씨님의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

매주 한국과 미국 증시 수급 상황을 점검해 주시는 티모씨님께서 5월 9일 지난주 수급을 설명해주셨다.

(매번 티모씨님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조심하라는 논조의 말씀을 하시는 티모씨님의 지난주 주간 수급 데이터 분석은 이 구조의 가장 불편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지난주 4거래일 동안 외국인은 첫 이틀간 코스피 현물을 6조원 순매수했다가, 나머지 이틀 동안 무려 12조원을 순매도했다. 1주일 전체로는 6조원 순매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만 보면 더 선명하다.

첫 이틀: 외국인이 삼성 5.2조, 하이닉스 2.2조를 샀다. 개인이 반대로 팔았다.

이후 이틀: 외국인이 삼성 6.4조, 하이닉스 4.7조를 팔았다. 개인이 받아샀다.

결과적으로 외국인은 지난 주 두 종목 합산 3.6조원을 순매도했고, 외국인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


이런 데이터를 보고 티모씨님은 이렇게 말했다. "코스피 시장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작전주가 된 것 같다." 외국인이 매수로 지수를 올리고, 개인 FOMO를 유발하고, 두 배 규모로 물량을 넘기는 메커니즘이 단 한 주 안에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판단여부를 떠나서, 수급 데이터 자체는 팩트다.




3. 글로벌 시각 vs 한국 시각

한국 미디어의 온도

한국 경제 매체들의 헤드라인은 일관되게 강세론이다. "아직 저평가", "슈퍼사이클 계속된다", "코스피 8000도 꿈 아니다". 베어 케이스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증권사 리포트를 받아쓰는 구조, 광고주와의 관계, 그리고 지금 같은 과열 장세에서 역방향 기사를 쓰기 어려운 환경이 이 편향을 만든다.

글로벌 공신력 매체의 온도

같은 시기 블룸버그의 헤드라인은 이렇다. "South Korean Stocks' World-Beating Surge Creates Bubble Risk." 버블 리스크를 헤드라인에 직접 쓴다.

CNBC는 3월 급락 당시 Larry Tentarelli의 말을 인용했다. "삼성전자는 12개월 216%, SK하이닉스는 356% 올랐다. 이 숫자들은 명백히 단기 버블 숫자다." 그리고 KOSPI가 이틀 만에 18% 폭락한 원인으로 두 종목 집중도를 짚었다.

피치(Fitch)는 성장을 인정하면서도 "고객 집중도 리스크와 AI 투자 사이클 충격에 대한 노출이 커진다"는 구조적 리스크를 명시했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5월 8일 코스피 목표를 8000에서 9000으로 상향하면서 한국을 "아시아 최고 확신 시장 (highest conviction view)" 으로 분류하고, "투자자들이 메모리 섹터 실적의 지속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라고 강한 강세론을 폈다.​

한국 매체와 글로벌 매체의 차이는 강세론의 강도가 아니다. 글로벌에는 골드만처럼 KOSPI 9000을 외치는 강세론과 블룸버그처럼 'Bubble Risk'를 헤드라인으로 박는 베어 시각이 같은 시점에 공존한다. 한국 매체에는 후자가 사실상 없다. 그리고 강세론을 펴는 골드만조차 그 근거가 결국 '메모리 사이클이 더 길어진다'라는 단일 시나리오라는 점, 강세 시나리오와 약세 시나리오 모두가 같은 변수 하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 — 그게 코스피 9000 논쟁의 진짜 구조다.

정치와 증시의 관계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코스피 랠리는 명시적으로 정치 서사에 편입됐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한국거래소를 직접 방문해 "코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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