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ley에서는 다양한 경제지표를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매일마다 주요 경제지표에 대한 해설도 컨텐츠로 발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초심자 분들 입장에서는 각 지표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익숙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괄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이 적잖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에 따라 향후 몇 차례 경제지표 및 그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초심자의 눈높이에 맞춰 상술하는 칼럼 시리즈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첫 번째 시리즈로는 인플레이션을 시작으로 CPI나 PCE같은 대표적인 지표에 대한 소개가 뒤따를 예정이며, 이외에 고용/산업/외환 같은 지표에 대한 시리즈도 준비될 것입니다.
이번 시리즈는 매크로팀의 Jeremy가 수고해주셨습니다.
- 보다시피, 이곳에서는 제자리에 머무르기 위해선 전력을 다해서 달려야 해. 만약 네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그보다는 두 배쯤 빨리 달려야 하고(Now, here, you see, it takes all the running you can do, to keep in the same place. If you want to get somewhere else, you must run at least twice as fast as that!)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인플레이션이라는 악령
여러분은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매일 같은 시간에 퇴근하며, 매달 봉급은 같습니다. 지금의 일상이 영원히 이어질 것 같죠. 하지만 커피 한 잔을 사기 위해 카페에 들렀을 때, 그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아메리카노의 가격은 지난 번보다 살짝 인상되어 있으며, 새로운 신메뉴들은 부담스러운 가격을 자랑합니다. "물가가 또 올랐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문득 돌이켜 보니, 최근 들어 장을 보고 돌아올 때 냉장고가 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매달 책정해 놓은 생활비는 더 빨리 바닥을 보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목표 소비액을 초과해서 지출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심란한 생각이 들던 찰나, TV 뉴스에서는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 한결같이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뒤쳐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니, 실제로 뒤쳐지고 있습니다. 무언가 부조리하다고 생각은 들지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인지, 누구를 탓해야할지, 모든 것이 하나같이 다 오리무중입니다. 하지만 실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악령에 장악당한 것이죠.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물가상승률이 0보다 커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서 물가 상승률이란, 특정 기준시점의 물가를 100으로 설정한 다음, 이것이 1년 뒤에는 얼마가 되었는지를 측정한 다음, 양자를 비교해서 한 해 동안 얼마나 물가가 올랐는지를 파악하는 식으로 집계되는데요. 예를 들어 2020년에는 커피 가격이 1000원이고 2021년에는 1500원이라고 한다면, 2020년의 커피가격 1000원을 기준으로 잡아 물가지수를 100으로 설정합니다. 그러면 그에 따라 2021년의 커피 물가지수는 150이 되겠죠. 그래서 한 해 동안 커피의 물가지수는 100 -> 150이 되었으니 물가상승률은 50%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원론적인 설명은 마치 의사들이 암을 단순히 '세포의 비정상적 증식'이라고 정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의미와 무게감을 제대로 담아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는데요. 안개처럼 눈에 띄지 않게, 하지만 매일매일 확실하게 개개인의 자산과 소득을 잠식해나간다는 것이 인플레이션이 무서운 점이죠. 그런데 자산과 소득을 잠식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노동의 대가’와 ‘지금 쌓고 있는 노동의 대가’를 휘발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노동은 우리의 삶의 일부를 바치는 행위이므로, 인플레는 인생을 파괴한다고 말하더라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흔히 "현금은 왕이다(Cash is King)"라는 말을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현금을 상대로 언제든지 역성혁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연 5%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어도 5년 후 여러분은 현재 가진 전재산의 약 4분의 1을 잃게 됩니다. 현금이 왕일지 몰라도, 인플레이션 앞에서는 폐위 당해 단두대에 목이 올라가게 되죠.
“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일까요? 이것은 통계청 홈페이지의 ‘화폐가치 계산’ 메뉴를 통해 쉽게 계산할 수 있는데요.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IMF 기간 중에는 물가가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으니, IMF 직후인 1999년부터 현재 2024년까지를 기준으로 25년의 기간을 따져 보겠습니다. 이를 비교해 보면 약 1.85배 정도, 대략 2배 조금 못 미치는 선으로 물가가 올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1999년 9월의 1억의 가치는 2024년 9월의 1.85억의 가치와 동등하다는 것이죠. 이것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1999년 9월 이후 1억 원을 금고에 넣어두고 전혀 증식시키지 않았다면, 사실상 25년 동안 자산이 반토막 난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 됩니다.
출처: 통계청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동기간으로 대조해 보면, 1.89가 나오는데, 예상 외로 한국과 미국의 25년 물가 상승률은 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러프하게 보면 지난 25년 동안 한국과 미국은 물가가 2배가 되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 발전 수준이 더 높은 국가일수록 물가상승률이 낮고,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가는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렇게 미국과 한국이 비슷한 물가상승률을 보인 것은 꽤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가와 성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만큼, 지난 25년 간 선진국이라고 평가받던 미국은 때로 신흥국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해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은 ‘준 이머징 마켓’인 것이죠.
인플레이션의 만성화
이처럼 인플레이션은 자체로도 위협적이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인플레이션이 만성화 되었을 경우입니다. 물가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화 될 경우, 사람들은 물가 상승을 상수로 여기게 되죠.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무조건 지금 당장 현금을 소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돈을 가지고 있어 봐야 내년이 되면 휴지조각이 된다면, 그리고 내일의 돈의 가치는 오늘의 돈의 가치보다 낮아진다고 확신한다면, 일단 당장 소진하고 보는 것이 타당한 판단이죠. 가령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 가격이 앞으로도 당분간 올라갈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할 경우, 소비자들은 지금이 그나마 그래픽카드가 가장 저렴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서 앞다투어 구매 결정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 그래픽카드 가격은 200만 원으로, 300만 원으로, 400만 원으로 거듭해서 올라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