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25년의 금융 시장의 주도주라고 하면 누가 뭐래도 AI, 그 중에서도 빅테크일 겁니다. 다른 산업들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 반해, 엔비디아,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등 AI와 관련된 대형주들은 여전히 꿋꿋하게 강세를 이어나가고 있죠. AI가 마치 자석처럼 시장의 유동성을 빨아들이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광적인 AI 테마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AI 투자의 방향성를 피봇한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바로 웨일 락 캐피털인데요. 웨일 락 캐피털은 이전부터 기술주 투자의 선봉장 노릇을 해왔던 기관으로, ValleyAI에서 제공하는 거장 탐색에서도 상당히 눈에 띄는 편입니다. 거장 포트폴리오에서 아래와 같은 필터로 검색한 다음 최근 10년 샤프지수를 확인해 보면, 웨일 락 캐피털이 전체에서 1위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 3년/1년의 샤프지수도 매우 훌륭한 편입니다.
최근 10년 수익률은 1009.71%로 나오는데, 연 단위로 환산하면 약 26%가 됩니다. 여기에 최근 3년은 82.89%, 심지어 분기말 이후로 봐도 30%가 넘습니다. 이렇게 레코드 자체만 놓고 보면 단기/중기/장기 등 어떤 시간 지평으로 보더라도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말하자면 메이저 언론의 헤드라이너 급은 아니지만, 성장주 투자에서는 일가를 이룬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AI 투자에 있어 최근 들어 변칙적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채로운 측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2025년 1분기 웨일 락 캐피털의 13F 보고서를 보면서 어째서 이들이 시장의 컨센서스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보를 보였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서도트는 누구인가
알렉산더 사서도트는 1971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편인데요. 2006년에 웨일 락 캐피털을 설립한 다음 202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20년의 기간 동안 테크 분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오면서 시장의 관심을 받는 투자자죠. 메이저 언론의 헤드라이너 급에는 약간 못 미치기는 하지만, 그 바로 아래 레벨에서 대중들에게도 간간이 거론되는 정도의 인물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알렉산더 사서도트의 가정 배경은 남다른 구석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아버지인 피터 사서도트가 저명한 금융인이었다는 점입니다. 피터 사서도트는 골드만삭스에서 오랜 동안 중역으로 활동한 바 있는 인물이었는데요. 이러다 보니까 알렉산더 사서도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일찍이 투자에 문리를 깨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알렉산더 사서도트가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가 애플 주식 1주를 선물했던 것입니다. 사서도트는 이때 애플 주식을 선물로 받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애플이 증자를 하면서 보유 주식이 3주가 되는 것을 보고 기뻐했던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피터 사서도트는 금융인이기도 했지만 전공은 전기공학이라서 기술에도 정통했다고 하는데요. 이러다 보니까 어릴 때부터 아들인 알렉산더 사서도트 역시 금융과 더불어 공학이나 기술 혁신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둘 수 있게 되었죠.
이처럼 금융인이면서 동시에 엔지니어로서의 아버지의 배경은 알렉산더 사서도트가 성인이 된 이후의 경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실제로 알렉산더 사서도트는 대학을 졸업한 94년에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한 다음, 2년 뒤인 96년에는 인터넷 광고 스타트업에 합류하면서 당시의 인터넷 열풍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게 되죠. 그러니까 경력 초기를 금융 분야와 테크 분야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다가 97년에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거쳐서 99년에 피델리티에 인턴으로 입사하면서 비로소 투자업계의 메인스트림에 입성하게 되죠.
이때 피델리티에서는 사서도트가 인터넷 광고 스타트업 경력이 있는 것을 보고서 이커머스 관련 분야로 인턴십 코스를 마련해줬는데, 이때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10여 개의 인터넷 회사들을 방문하면서 기업 분석을 하게 됩니다. 개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업은 당시 업계의 성장을 주도하던 아마존이었는데, 사서도트가 아마존의 성장성을 분석해 보니까 여기에는 투자를 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피델리티의 주식 부서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피델리티가 아마존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고 강하게 호소하죠. 피델리티 내부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아마존의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다면서 사서도트의 의견을 일축했지만, 한편으로 이 프리젠테이션이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사서도트는 정식 채용될 수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테크 분야 애널리스트로 성장해나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로부터 금융과 기술 백그라운드 양쪽을 고루 물려 받고서 이것을 본인의 경력을 밟아나가는 데에 있어 유효 적절하게 활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피델리티에서 베테랑으로 성장한 사서도트는 2006년에 독립하기로 결정하고 아버지와 함께 헤지펀드를 세우게 됩니다. 그게 오늘 다루게 될 웨일 락 캐피털이죠.
S-커브를 노려라
사서도트와 웨일 락 캐피털의 원칙을 정의하자면 ‘세상을 바꿀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는 위대한 기업을 찾아 장기 투자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TMT, 그러니까 Tech/Media/Telecom 섹터에 대한 자신들의 엔지니어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는 장기적인 성장 테마에서 고유한 해자를 기반으로 영속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업들을 발굴하는 것이 특기죠.
이러한 원칙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S-커브 이론인데요. 이것은 어떤 기술이든 초기에는 전환 비용도 높고 적응하는 데에 시간도 상당히 소요되다 보니 더디게 채택되지만, 어느 순간 장벽이 허물어지며 거대한 파도처럼 폭발적인 수요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S-커브 변곡점의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아이폰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이폰 이전에도 스마트폰은 존재했지만, 대체로 기기들이 크고 투박했고, UI도 직관적이지 않았고, 무선 네트워크도 부실했고, 가격도 비쌌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단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죠. 그러던 상황에서 아이폰이 전격적으로 출시되면서 기존의 초기 스마트폰들이 갖고 있던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하게 되었고요. 아이도 쓸 수 있는 터치스크린, 그리고 3G 네트워크 연결, 저렴한 가격 등을 겸비한 아이폰이 시장을 강타하게 되면서 스마트폰 시장의 S-커브 변곡점이 폭발했습니다. 그때부터 최근 AI 트렌드가 부각되기 이전까지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애플은 넘을 수 없는 해자를 바탕으로 승자 독식의 과실을 누렸고요.
그래서 웨일 락은 기술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거대한 S-커브의 변곡점을 포착하고, 그 패러다임에서 가장 선두에 설 기업에 모든 것을 거는 식의 전략을 쓰는데요. 이 때문에 단기적인 변동성이나 분기별 실적 발표에는 그리 연연하지 않는 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웨일 락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상당히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상위 10개 보유 종목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60.13%를 차지하며, 전체 종목은 30개 정도입니다. 주요 보유 종목도 셀레스티카, 앱러빈, 아마존, 메타, 듀오링고, 알파벳, 옥타 등등 대부분 테크주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기술 혁신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죠. 사서도트에 따르면 두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합니다. 바로 '경쟁 우위'와 '시장이 아직 알아보지 못한 장기적인 수익 창출 능력'이죠. 그래서 기술주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를 본인이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사서도트의 요지입니다.
경쟁 우위에도 여러가지 요소가 있는데, 사서도트에 따르면 대표적인 경쟁 우위로는 네트워크 효과, 규모의 경제, 플랫폼 지배력, 핵심 지적 재산권 등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링크드인처럼,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서비스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경우에는 네트워크 효과가 그 자체로 해자로서 작용하면서 후발주자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죠. 또 아마존은 물류 시스템을 압도적으로 비대하게 구축하면서 비용상의 우위를 해자로 갖고 있기도 하며, 아울러 아마존 스토어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소매업자들에게 다른 판로를 찾을 수 없는 유통 환경을 조성했죠. 또 퀄컴이나 ASML처럼 지재권으로 먹고 사는 기업들도 해자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아직 알아보지 못한 장기 수익 창출력, 그러니까 저평가된 성장성의 경우 투자 성과를 극대화 하는 데에 있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S-커브의 변곡점을 지날 때 특정 기업이 방금 설명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을 경우, 기업의 이익은 선형적인 수준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수준으로 증가하게 되면서 어마어마한 장기 현금흐름을 낳게 되죠. 그런데 시장은 이를 즉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면서 비효율이 발생하므로,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투자자라면 여기에서 알파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을 두고 사서도트는 세상은 기하급수적으로 생각하는 데 매우 서툴다(it's very hard for the world to think exponentially)"라고 평가하면서, 바로 여기에서 웨일 락의 강점이 있다고 말하죠.
이렇게 시장이 놓친 기업의 수익 창출력을 예리하게 감지하는 웨일 락의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면 테슬라 투자가 있습니다. 웨일 락은 2019년 말 테슬라 신규 매수를 시작으로 2020년에 테슬라를 집중 매수했는데, 그 결과 2020년 4분기를 기준으로 테슬라를 들고서 600%가 넘는 수익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테슬라가 전체 포트폴리오를 캐리하면서 2020년 웨일 락의 연간 수익률은 71%를 기록하게 되었고요. 즉 전기차와 테슬라의 S-커브 변곡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을 정확히 포착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죠.
이와 관련해서 사서도트가 팟캐스트에서 내막을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일론 머스크가 모델 3의 가격을 4만 달러로 낮추면서 전기차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는데, 사서도트는 테슬라의 생산량은 200만 대, 평균 판매 가격은 5만 달러, 총 마진이 X%일 때의 운영비용을 파악한 다음 이를 토대로 수익을 계산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검토를 해 보니 테슬라의 경쟁 우위가 너무나도 명확해 보였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사서도트는 테슬라에 베팅을 했고, 그리하여 매우 낮은 평단가로 테슬라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죠. 사서도트의 계산에 따르면 당시 기준으로 테슬라의 주가는 테슬라가 3년 뒤 달성할 수 있는 주당 순이익의 4배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시장이 테슬라의 수익 창출력을 완전히 오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웨일 락의 혁신 기업 집중 전략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이어진 기술주 중심의 강세장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는데요. 웨일 락은 스마트폰 어플이나 모바일 마케팅, 클라우드 컴퓨팅, 이커머스, 소셜 미디어처럼 당시에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던 업계에 집중 투자를 했고, 그 덕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2007년부터 2019년 10월, 그러니까 코로나 직전을 기준으로 만 13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은 17.1%, 누적 수익률은 641%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S&P 500의 연평균 수익률이 약 7.7%, 누적 수익률은 159.51% 정도인데, 웨일 락의 수익률이 4배가 넘어가죠.
최근 10년으로 보더라도 주요 지수들보다 훨씬 압도적인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는 AUM이 2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거대 펀드로 성장하게 되죠.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볼 부분이라면 웨일 락은 궤도에 오른 이후 꽤 오랫 동안 신규 투자를 받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2017년 12월에 AUM이 25억 달러 정도로 올라온 이후 웨일 락은 신규 자본 유치를 중단했습니다. 그러니까 2019년부터 최근까지는 신규 고객 없이 운용 수익만으로 성장을 했다는 것이죠(물론 올해 초에 다시 펀드를 재개방하기로 결정하면서 2-3억 달러의 신규 자본을 유치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아마도 AI와 관련된 투자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웨일 락은 S-커브의 각도가 가팔라지는 변곡점도 주목하지만, 그 못지 않게 S-커브의 각도가 평평해지는 변곡점 역시 염두에 둡니다. 즉 매도 전략에 있어서도 S-커브의 각도를 중점적으로 확인한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서 위에서 언급했듯이 웨일 락은 19-20년 사이에 테슬라를 대거 매수하면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냈지만, 불과 2년 정도 시일이 흐른 22년에는 테슬라를 전량 매도한 다음 지금까지 보유하지 않고 있는데요. 사서도트에 따르면 전기차 업계의 S-커브는 미국 시장 보급률이 10%에 도달한 다음부터 각도가 평평해졌다고 합니다. 즉 성장률은 둔화된 것인데, 이미 테슬라의 주가는 비쌀대로 비싸진 상황이었죠. 여전히 테슬라가 다른 기업들 대비로 해자는 있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테슬라 투자의 핵심 논리였던 ‘시장이 놓친 저평가된 수익 창출력’은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일런 머스크가 트위터에서 어떤 구설수를 낳고 다니는지와 아무 상관 없이 테슬라 주식은 처분하는 게 맞았다는 평가를 하죠. 웨일 락이 어떻게 매도 타이밍을 잡는지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S-커브의 평탄화는 공매도 전략에도 응용되는데요. S-커브가 평탄화 된 기업이라고 한다면 전형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된 성숙 기업이 있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기업 가치가 실시간으로 파괴되고 있는 기업들도 있겠죠. 대표적으로 넷플릭스에 의해 붕괴되고 있는 전통 미디어가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의 경우에는 역으로 ‘기하급수적’인 가치 저하를 겪고 있지만, 아직 시장은 이를 지수적으로만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혁신 기업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비효율이 있기 때문에, 공매도하기에 적합한 대상이라는 것이 사서도트의 논리입니다.
또한 S-커브가 가팔라지고 있는 와중에도 역설적으로 공매도 대상은 넘쳐날 수 있는데요. 한 마디로 특정 섹터가 S-커브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테크업계의 특성상 시장은 승자 독식 형태로 재편되기 때문에 S-커브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런 기업들을 오해한 시장은 이들을 과대평가해서 밸류에이션을 극단까지 올려버리기 때문에, 이런 시점에 공매도의 기회가 있다는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S-커브 변곡점을 함께 했지만 경쟁 우위가 없었던 림이나 노키아 같은 경우가 딱 적절한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밀물이라고 모든 배가 뜨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안 뜨는 배들은 저격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또 S-커브가 아직 가팔라지기 전, 그러니까 커브의 초기 단계에서도 공매도 전략은 유효할 수 있는데, 한 마디로 ‘너무 시대를 앞서간 종목’들이 저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VR 헤드셋이라든지, EV 배터리의 초기 단계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커브의 변곡점을 맞이하기 전에 이런 기업들은 왕왕 과대평가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커브의 각도가 가팔라지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평가합니다.
절망의 2022년 이후
하지만 많은 기술주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웨일 락 역시 2022년의 하락장에서 직격탄을 맞게 되는데요. 2022년 한 해 동안 웨일 락은 45% 하락이라는 치명적인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전고점 대비로 보면 MDD가 무려 51.75%에 달했죠. 그러니까 1년 여만에 AUM이 반토막도 안 되는 수준으로 날아가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에서 웨일 락은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과거의 영광을 이끌었던 성장주 투자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기존의 철학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화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던 거죠.
하지만 웨일 락은 바로 다음 해인 2023년부터 다시 반등에 성공하면서 저력을 과시하는데요. 2023년에는 32% 상승을 기록했으며, 그 다음해인 2024년에는 이를 상회하는 54.1% 상승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을 알렸습니다. 물론 2022년의 낙폭이 워낙 컸기 때문에 이 정도의 수익률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운용규모는 회복하지 못했죠.
이같은 2023년의 반등 역시 남들보다 기민하게 S-커브의 변곡점을 겨냥하는 웨일 락의 투자 전략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데요. 웨일 락은 2023년부터 AI 테마를 확신하고서 M7, 셀레스티카, 앱러빈, 듀오링고 같은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매수하게 됩니다. 특히 엔비디아의 폭등을 예견한 것이 보기 좋게 적중했는데요. 2022년 4분기에 웨일 락은 엔비디아가 향후 테마를 이끌어 갈 종목이라고 생각하고 진입했고, 2023년 1월에 ChatGPT가 출시 되자마자 엔비디아 추가 매수에 나서면서 단 두 개 분기 만에 포트폴리오 비중을 6%까지 끌어올립니다. 그리고는 2024년 1분기까지 11%까지 비중을 늘리면서 불타기의 교과서적 사례를 남기게 되죠.
이 23-24 AI 투자를 복기하면서 사서도트는 AI처럼 새로운 컴퓨터 사이클이 도래할 경우, 밸류 체인의 심층 기저에 있는 영역, 즉 인프라 영역부터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왜냐하면 인프라가 AI 테마주 전체에서 가장 먼저 변곡점을 맞고, 생태계도 분석하기 용이하고, 상층에서 어떤 서비스가 승자가 되더라도 수요가 보장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한 마디로 골드러시 시대에 곡괭이와 삽을 파는 전략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사서도트는 AI 인프라 시장이 S-커브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본인이 그린 그림대로 되긴 했지만, 실제 정도는 자신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고 밝힙니다. 이 정도로 AI 영역이 현격한 성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는 것이죠. 이때 그는 ‘동적 S-커브’라는 개념을 적용하는데요. 자신이 처음에 견적 잡은 것보다 훨씬 커브가 가파르게, 그리고 더 길게 이어지니까, 이건 S-커브의 크기 자체를 상향 조정해서 밸류에이션을 해야한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이렇게 2022년의 실패를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만회하면서 웨일 락은 다시금 굴지의 성장주 투자 그룹으로서 입지를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됩니다.
다시 위기, 2025년 1분기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지난 2년 간의 호조에도 제동이 걸린 상황인데요. 2025년 1분기 석 달 동안, 웨일 락의 포트폴리오는 무려 -20%라는 궤멸적인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3월 한 달에만 -15%를 찍어버렸죠. 물론 이 시기에 전반적으로 주식 시장이 부진했고, 트럼프로 인한 관세 분쟁 같은 것들이 발목을 잡기는 했는데요. 하지만 같은 기간 S&P 500 지수가 4.6% 하락하는 데에 그쳤다는 점에서, 사서도트가 선택한 고성장 기술주 포트폴리오가 시장의 하락 충격을 전혀 방어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오히려 하락을 증폭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 붕괴는 곧바로 펀드의 규모, 즉 AUM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2024년 말 84.4억 달러에 달했던 13F 공시 기준 AUM은 불과 3개월 뒤인 2025년 3월 31일, 57.6억 달러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무려 AUM의 3분의 1이 석 달만에 사라져버린 거죠. 문제는 이 AUM의 감소가 운용 실패만이 아니라 자금 유출까지 동반했다는 것입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는데요. 84.4억 달러 규모의 포트폴리오가 20%의 손실을 입었다면, 자산 감소액은 약 16.9억 달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 AUM 감소액은 그보다 10억 달러나 많았죠. 이 차액, 즉 약 10억 달러는 시장의 등락과 무관하게, 투자자들이 "더 이상 당신을 믿지 못하겠다"며 돈을 빼내 가면서 발생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서도트는 더 이상 차분하게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면서 천천히 다음 기회를 노릴 여유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밀려드는 환매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당장 포지션을 청산하고 현금을 마련해야 하니까요. 이것은 장기적인 비전을 보고 투자했던 우량 자산을, 가장 팔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점에 헐값으로 내던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더 나쁜 것은 포트폴리오가 원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뒤죽박죽 상태가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강제 매각에 따라 손실폭은 더욱 커지게 되는데, 이렇게 악화된 수익률은 투자자들의 공포를 더욱 증폭시키면서 추가적으로 환매가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또다시 강제 매각을 유발하고, 강제 매각이 다시 손실폭을 증폭시키는 식으로 수익률은 악순환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고요. 이러한 파멸적인 악순환은 펀드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죠.
실제로 웨일 락은 1분기 동안 무려 18억 달러 규모의 주식을 순매도했으며, 포트폴리오 회전율이 37.21%나 되었는데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분기에 자산의 3분의 1 이상을 갈아엎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높은 회전율은 그가 차분한 전략적 판단 아래 자산을 교체한 것이 아니라, 밀려드는 환매 요구 때문에 일단 보유 주식을 시장에 내다 던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2025년 Q1 포트폴리오의 격변
그래서 1분기 웨일 락의 포트폴리오는 대격변을 겪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일단 전량 매도한 종목이 11개나 됩니다. 이전 분기에 보유하고 있던 종목이 43개였는데 이게 32개로 줄었으니까 4분의 1이 넘는 종목들을 처리해버린 것이죠. 결정적으로 현재 시장의 대장주라고 할 수 있는 엔비디아의 지분을 꽤 크게 덜어냈습니다. 이전 분기를 기준으로 웨일 락의 포트폴리오에서 엔비디아의 비중은 4.65%였는데, 이번 분기에는 3.38%만 남기면서 약 38% 정도를 처분했죠. 게다가 엔비디아와 비슷한 영역에 있는 브로드컴도 대량으로 매도 되었고, M7에서 아마존과 메타도 상당히 정리되었으며, 애플은 아예 전량 매도를 해버렸습니다.
직전 분기인 2024년 4분기 말의 포트폴리오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데요. 전분기의 웨일 락의 포트폴리오는 지난 10여 년간 그러했듯 기술주 투자의 성공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전형적인 TMT 성장주 펀드의 모습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