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5편입니다. 4편에서 스티븐 미란의 리포트에 대해서는 정리를 마쳤는데요. 5편에서는 최종적으로 미란의 입장에 대해서 논평을 가하면서 트럼프의 플랜이 제대로 작동할지 검토해보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1편: 왜 미국은 강달러를 원하지 않는 걸까? | 초심자를 위한 해설 51
2편: 관세를 올려도 물가는 안 오를 수 있을까? | 초심자를 위한 해설 52
3편: 골칫거리 강달러, 환율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 초심자를 위한 해설 53
4편: 트럼프가 관세를 올리는 이유 총정리 | 초심자를 위한 해설 54
스티븐 미란 리포트 원문: 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
미국만을 위한 멋진 신세계 해설 5편. 미란이 형 전상서
이제 미란이 형은 떠났습니다. 이야기 듣고 나니 어떠세요? 빙의돼서 제 몸을 빌려주고 적기는 했지만... 저는 제 손으로 쓰면서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미란이 형의 논리에 문제가 있다 없다를 떠나서, 아무리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관계라지만, 아무리 미국이 절박하다지만, 전 세계를 겁박하고 위협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가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오만함이 울화의 주요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실세 중의 실세... 변방의 일개 나부랑이의 울화 따위는 안중에도 없죠. 어쨌든 기왕 혼이라도 왕림해 주셨으니,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핑계로 딴지를 좀 섞어 형에게 답신을 보내봅니다.
이하 내용은 철저하게 작성자의 사견임을 감안하시구요.
왕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오지 마세요.
형님. 먼저, 공사다망하신 와중에 혼이나마 왕림해 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다녀가신 후 왠지 모르게 두피 한 켠이 시원해진 느낌이지만 그저 기분 탓이겠죠?
형님이 며칠 빌려가신 이 몸뚱아리는 미국의 우방 중 우방인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목적에서였든 수많은 미국 군인들이 6.25 전쟁에서 흘린 피, 미국이 제공해준 원조 덕에 오늘날 이 나라가 안정적인 민주주의와 번성한 자본주의를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항상 마음 깊은 곳에서 미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아마도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이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형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저를 포함해 이곳 커뮤니티 사람들의 마음 속에 미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얼마나 남아있을 것 같아요? 매우 약해졌다고 봐야죠? 그러니... 어렵게 왕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어지간하면 다시 오지마시고 백악관에서 건승하셔요.
소프트 파워 상실의 댓가는 크다
그깟 감사의 마음 따위 아무 의미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아우가 청컨데 앞으로 절대 외교나 정치는 하지 마세요. 모든 정치자산 중에 가장 강력한 자산이 부채 의식이라는 것도 모르고 정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전 세계 달러 공급자 역할을 수행하느라 미국이 손해만 봤고, 동맹은 미국을 등쳐먹기만 했다... 형과 트럼프의 주장이 옳다고 쳐도, 미국이 표면적으로 공동의 선을 추구함으로써 전 세계인들에게 미국에 대한 부채의식을 안겨 주었고, 그 부채의식이 미국의 소프트 파워의 근간이 되었으며, 소프트 파워가 있었기에 미국으로 자본과 인재가 몰려들어 오늘날 미국이 어느 국가도 넘보기 힘든 차별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는 생각은 못하시는 건가요, 애써 안하시는 건가요?
독일이 2차 대전 이후 나치 전쟁범죄에 대해 무한 사죄 모드를 수 십 년째 유지해 오고 있는 이유가 진심으로 미안해서일까요? 하버드 나오고 공부 많이 하신 분이니 잘 아실 거 아닙니까. 사죄모드를 취함으로써 전범국이라는 도덕적 열위에서 벗어나고, 결국은 독일의 소프트 파워를 확보하려는 판단에서 취한 전략이라는 것을 말이죠.

< 미국 친화적인 파란색 영역이 좁아지면 과연 미국이 얻는 것이 더 클까? >
형님의 주장을 스스로 한 번 살펴 보세요. 단 한 문장도, 단 한 단어조차도 미국의 도덕적 리더쉽과 소프트 파워 약화에 따른 부정적 임팩트에 대한 고려는 없잖아요.
유형자산보다 무형자산의 가치가 더 높게 평가받는 세상에서 소프트 파워가 가지는 의미를 너무 경시하시는 것 아닙니까? 도덕적 리더쉽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한낱 계량할 수 없는 뜬구름으로 치부하신다면, 브랜드 평판을 관리하고 개선시키기 위한 수많은 기업들의 가열찬 투자와 노력은 아무 의미없는 몸부림에 불과한가요? 젤렌스키와 트럼프의 백악관 쇼다운 이후 젤렌스키의 지지율은 두 자리 수 넘게 폭등하고, 트럼프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시장에 불안이 팽배하기 시작한 것이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세요? 바이든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질서하게 철수한 이후 급락한 지지율을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는 점의 교훈은?
형님에게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 내에서 트럼프 정권의 평판이 나빠지는 겁니다. 그러다가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구요. 지금처럼 제 힘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횡포를 부리는 건달같은 이미지의 트럼프를 보고, 도덕성에 민감한 중도층이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현재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공화당의 다수당 지위를 2년 뒤 중간선거 이후에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연임을 못하는 트럼프의 임기는 앞으로 4년뿐인데,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면 트럼프는 사실상 2년 짜리 대통령이 될텐데?
형님이 스스로 이야기한 것처럼 집권 후반기에 본격적으로 환율정책을 동원해 강펀치를 날려야 할텐데, 2년 짜리 대통령에게 무슨 협상력이 있습니까? 2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지 못하면 형님의 거창한 계획도 다 허사가 되는 것 아닌가요?

< 좋은 평판을 만드려면 20년이 필요하지만, 망치는 데에는 5분이면 충분하다. >
신뢰와 평판은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쉬우며, 한 번 잃은 후 다시 얻기는 훨씬 어렵죠. 형님의 미국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이 다 옳다고 쳐도 미국은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신뢰와 평판을 잃고, 그로 인한 장기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당장 조기 레임덕으로 형님의 해결책을 제대로 실행조차 못해 볼 가능성도 있다... 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혹시 이런 멜랑콜리한 이야기는 본인의 관할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정치 1번지 중의 1번지인 백악관에 가실 분이? 정말 그렇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심각한 문제지만 일단 넘어가고, 형이 좋아하는 계산기 두드리는 영역을 한 번 생각해 보죠.
달러, 이미 약해지고 있지 않나?
형님이 얼마나 달러 약화에 진심인지는 아주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달러... 이미 약해지고 있지 않나요? 소프트 파워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소프트 파워와 연관해서 이야기를 이어보면...

22년 기준, 미국에 대한 전 세계 국가들의 호감도와 신뢰도는 전반적으로 매우 높죠. 형님은 전 세계의 달러에 대한 강한 수요를 그저 경제적 이득 관점에서만 따졌지만, 사실 미국에 대한 높은 호감도와 신뢰도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으세요?

2020년 기준, 좌측은 주요국들의 미국에 대한 호감도 추이, 우측은 외환 보유고 내 달러 비중 추이... 미국에 대한 호감도와 달러 준비금 모두가 하락세네요? 이 둘 간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고 입증할 수 있냐... 고 물으신다면 사실 저도 할 말은 없어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가 낮아지면, 미국 화폐의 신뢰도를 낮추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임은 당연한 수순 아닌가요? 그러니, 달...